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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 독일 이어 스위스 주목하라 

스위스 강소기업의 경쟁력 

‘스위스 창조경영 기업에서 배운다’ 세미나 … 강대국 틈바구니서 ‘창조적 파괴’



‘초콜릿·시계·자연환경’. 유럽의 작은 나라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스위스의 기업들은 정보기술(IT)·제조·서비스·제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특히 히든챔피언이 많다.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이다. 스위스 전체 기업의 99.7%가 중소·중견기업이다. 그중 45%가 직원 10명 미만이다. 한국 중소·중견기업의 성장 모델로 독일을 꼽는 전문가가 많지만 스위스도 만만찮다.

성윤모 중견기업정책국장은 “스위스는 강소국의 전형적인 모델”이라며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적극적 개방·혁신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경영학)도 “동일한 제품이라도 스위스에서 만들면 더 비싸게 팔릴만큼 브랜드 가치가 크다”며 “한국 기업이 배울것이 많은 나라”라고 설명했다.

한국중견기업학회(회장 표정호)와 플레시먼힐러드가 공동 주최한 ‘중견기업 글로벌 경쟁력, 스위스 창조경영 기업에게 배운다’ 세미나가 5월 21일 서울 역삼동에서 열렸다. 중소기업청·중견기업학회와 스위스 기업·주한대사관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했다. 각 분야에서 세계 시장 1위를 달리는 스위스 기업 세 곳의 성공 사례에서 한국의 중견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봤다.

쉰들러 홀딩 아게 - 혁신은 창조적 파괴

쉰들러 홀딩 아게는 1874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엘리베이터 전문기업이다. 10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직원 수가 4만5000명, 지난해 매출은 9조원이다. 엘리베이터에서 2위, 에스컬레이터 세계 1위의 생산 업체다. 홍콩 ICC 타워, 이집트 카이로의 세미라미스 호텔,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등 세계 유수의 랜드마크에 쉰들러 그룹의 제품이 사용됐다.

쉰들러 그룹은 140년 동안 꾸준히 성장했다. 다만 과거에는 지금처럼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은 아니었다. 이 회사는 최근 30년 사이에 급성장했다. 시가총액이 2억 달러에서 600억 달러가 됐다. 비결은 ‘창조적 파괴’다. 이 회사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제품만 만들지 않는다. 제품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디자인하고 기획한다. 사람의 동선, 디자인적 요소, 건물과 조화 등 모든 부분을 고려해 목적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쉰들러 그룹 알프레드 쉰들러 회장은 “제품을 적용하는 모든 과정은 창조적 파괴라 불리는 혁신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제품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와 접목을 시도해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바꿨다. 이 회사는 30년 전 15개 제조 부문 자회사를 분사했다.

대신 엘리베이터와 접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여러 분야의 기업을 인수·합병(M&A)했다. 단, 적대적 M&A는 하지 않았다. 알프레드 쉰들러 회장은 “쉰들러는 70여건의 M&A로 글로벌 리더로 성장했지만 적대적 M&A는 단 한 건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알프레드 회장이 말하는 창조적 파괴는 간단하다. “레코드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CD플레이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CD플레이어를 잘 발전시켜도 MP3플레이어나 아이폰이 되지 않는다. 한가지 제품에 집중하는 것으론 한계가 있다.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가, 또 그 것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생각할 때 혁신적 제품이 나온다. 혁신이야 말로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마게바 - 특허권 보호에도 힘 쏟아야

한국에도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중견 기업이 많다. 하지만 기술력을 가진 모든 기업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가 낭패를 보기 쉽다. 해외에서 특허권 침해를 당하거나, 현지 정부·기업의 악의적인 공세에 시달리기도 한다. 스위스의 강소기업 마게바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1963년 설립된 이 회사는 공공시설·교량에 적용되는 첨단 부품과 기술을 판다. 다리의 상태를 점검하는 솔루션 판매도 마게바의 주력 분야다.

직원 수 450여명의 작은 회사지만 세계 1만개 이상의 구조물에 마게바의 제품이 쓰일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 국내에서는 인천대교에 이 회사의 제품을 사용했다. 마게바는 혁신적인 기술을 많이 보유했다. 대표적인 것이 2.5m까지 늘어나는 ‘모듈형 신축 이음 장치’다. 다리의 주요 부분을 연결하는 장치로 많이 늘어날수록 외부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가 크다. 다리를 받치는 교각을 구부린 형태로 건설하는 기술도 마게바가 최초로 시도했다.

마게바는 그러나 훌륭한 기술력을 갖고도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지적재산권 보호에 애를 먹었다. 토마스 쉬리 마게바 한국지사장은 “수년 전에 혁신적이라 불린 기술이 지금은 세계 수많은 구조물에 사용된다”며 “개발한 기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개발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술·판매·서비스에 특허권 보호까지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작은 기업일수록 한번의 실패에서 받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모든 것을 준비해 해외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것도 필수다. 마게바는 아시아권에서 낮은 가격을 내세우는 회사와 경쟁했다. 무리하게 긴 보증 기간을 받아들이면 제품을 사용하겠다는 국가도 있었다. 마게바는 자사의 입장을 고수했다. “좋은 기술로 튼튼하게 지은 건물은 20~30년 뒤에 그 가치가 드러난다. 당장 조금 싸게 지으면 미래에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나그라비전 - 열린 의사결정이 창조경영 밑거름

스위스에도 IT기업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스위스에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IT기업이 꽤 있다. 스마트TV·데이터 솔루션 기업 나그라비전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스마트TV 제품에 들어가는 운영체제(OS)를 만든다. 연 평균 매출은 1조원이다. 해마다 50조원이 넘는 스마트TV용 콘텐트가 나그라비전의 OS를 통해 거래된다. 비디오 소프트웨어 시장 1위다.

나그라비전은 1961년에 설립돼 혁신 제품을 많이 개발했다. 출발은 작은 레코더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나그라비전이 개발한 레코더로 영화의 동시녹음이 가능해졌고 영화산업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하며 지금은 다양한 IT분야에서 사업을 벌인다.

나그라비전의 힘은 열린 의사결정 과정에 있다. 이인구 나그라비전 한국지사장은 “미국·한국의 크고 작은 회사에서 일했지만, 나그라비전의 기업 문화에서 받은 충격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어떤 안건이든 충분한 토의를 거친다. 한국처럼 복잡한 절차도 없다. 열린 공간에서 지위 여부를 막론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다. 때로는 대화가 격해져 다툼도 생긴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한 친구처럼 지낸다.

열린 의사결정의 가장 큰 장점은 혁신의 밑거름이 되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각에 살이 더해져 거대하고 의미 있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어 조직 결속력에 긍정적이다. 나그라비전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전 세계 지사장이 모두 열람할 수 있는 공간에 제안서를 게시한다. 각 국의 지사장들이 제안서를 보고 의견을 덧붙이고 수정해 최종 선택된 제안서를 낸 사람이 프로젝트를 맡는다. 이 지사장은 “모두가 훤히 보는 상황에서 작업이 이뤄져 의사결정 과정에 공정성을 의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인사평가도 마찬가지다. 인사평가 대상자와 같은 직급, 바로 아래 직급의 사람이 평가를 한다.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평가 대상자가 듣는 가운데서 의견을 낸다. 보안을 최대한 유지해야 속 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식 사고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먼저 평가를 하면 그 사안에 대해서 자유롭게 추가 의견을 낸다. 그 과정에서 평가 대상자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반론할 수 있는 기회도 준다. 업무상에 오해가 있는 부분이 풀리기도 한다. 평가가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야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인사평가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 지사장이 느낀 나그라비전의 힘이다.




1190호 (201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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