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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의 절반은 빛을 보는 일 

주기중의 사진노트 

주기중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포토디렉터
셔터타임으로 빛 조절 어둠 있어야 빛의 효과 극대화



컴퓨터로 사진 작업을 하다가 문득 흑백 필름을 사용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20년이 채 안됐지만 까마득한 옛 일처럼 느껴집니다. 필자는 신문사에서 뉴스사진을 다뤘습니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어서 촬영과 현상·인화를 직접 했습니다.

취재가 끝나고 들어오면 곧바로 암실로 들어갑니다. 필름 통 옆에 튀어나온 부분을 책상에 톡 내려치면 뚜껑이 열립니다. 필름을 꺼내 철사로 만든 감개로 감습니다. 이때 필름 양쪽 가장자리가 돌돌 말린 철사 사이로 고르게 들어가야 합니다. 그 틈으로 현상액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잘못 감으면 필름끼리 달라붙어 현상을 망치게 됩니다. 다 감은 필름을 현상 탱크에 넣고 뚜껑을 닫습니다. 이렇게 해서 1단계가 끝납니다.

암실작업의 추억, 눈 감고 훈련

현상에 필요한 몇 분의 시간이 지나면 탱크에서 필름을 꺼내 정착액에 넣습니다. 현상이 끝나면 필름 막 면에 묻어있는 은염화물이 빛의 강도에 따라 흑백의 농담으로 변합니다. 정착은 현상 과정에서 남아 있는 화학물질을 빼고 흑백의 화상을 고정하는 과정입니다.

암실 작업은 손끝의 감각에 의존해야 합니다. 암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검은 색 커튼을 치면 일순간 온 세상이 멈춘듯한 적막감이 듭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발걸음도 조심스럽습니다. 손은 곤충의 촉수가 됩니다. 천천히, 세심하게 현상도구를 만져야 합니다. 어쩌다 실수로 필름 감개를 떨어뜨리면 바닥을 기어 다니며 찾아야 합니다. 처음 신문사에 입사했을 때 근 한 달 동안은 눈을 감고 암실작업 훈련을 했습니다.

사진을 인화하는 과정은 훨씬 더 흥미롭고 극적입니다. 음화로 된 필름을 확대기에 걸고 빛을 비추면 사진이 비춰 집니다. 인화지를 바닥에 깔고 빛을 줍니다. 어두운 부분은 손으로 살짝 가려 빛을 덜 먹게 하고, 너무 밝은 부분은 집중적으로 빛을 더 줍니다. 이른바 손으로 하는 ‘뽀샵질’이 보태집니다.

빛을 받은 인화지를 약품에 담그면 그야말로 신‘ 천지’가 열립니다. 빛을 많이 받은 부분부터 검게 변하며 사진이 나타납니다. 렌즈로 통해 봤던 그 ‘결정적인 순간’이 서서히 눈앞에서 재현됩니다. 황홀한 순간입니다. 이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디지털 세상이 열리면서 필름의 현상과 인화는 옛 일이 됐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도 그 깜깜한 암실과 빨간 등이 켜 있는 작업실을 떠올리곤 합니다. 지금도 사진을 찍으면 편집 프로그램에서 사진을 흑백 음화로 바꿔놓고 빛을 살핍니다. 추억 때문만은 아닙니다. 빛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진은 빛을 보는 것이 반’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진을 시작하면서 늘 ‘빛’이라는 말을 화두처럼 지니고 다녔습니다. 빛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은 뜻밖에도 빛 한 점 없는 암실에서 찾아왔습니다. 병아리 기자 시절, 아주 바쁜 날이었습니다.

초 단위로 움직여야 할 정도로 마감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평소에는 필름을 현상 탱크에 넣고 암실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가 타이머의 벨이 울리면 다시 들어가 작업을 이어 갑니다. 그러나 이날은 암실에 그대로 머문 채 기다렸습니다. 동선을 줄여 몇 초라도 아끼겠다는 생각이요.

암실은 칠흑 같이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나자 암실에 있는 소품들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암실 문이 덜 닫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확인해보니 문도, 문 위에 덧댄 커튼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 빛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하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암실 한쪽이 밝게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야광 온도계가 미미하지만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밝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어두운 곳에 들어가니 암실이 완벽한 어둠의 공간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공이 확대되고 눈이 어둠에 적응한 것이지요. 그날 이후 야광 온도계를 마치 랜턴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둠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빛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빛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암실에서의 깨달음은 ‘어두워야 빛이 잘 보인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를 사진으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일입니다. 사진에서 빛을 강조할 때는 반드시 어두운 부분이 받쳐줘야 그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카메라가 사람 눈보다 빛 잘 흡수

사진은 부산 문현동 돌산마을의 풍경입니다. 한국전쟁 난리통에 공동묘지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아직도 동네 곳곳에 오래된 무덤이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낮이면 사람들이 일터로 나가고 텅 빈 동네에 고양이가 우글거립니다. 빛이 강하면 어둠도 깊습니다. 암실 경험을 통해 또 하나 느낀 점은 카메라는 사람의 눈보다 빛을 더 잘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카메라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도구는 조리개와 셔터타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의 동공역할을 하는 조리개는 일정량 이상의 빛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셔터타임이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기 마세요. 캄캄한 밤이나 어두운 곳에서 삼각대를 이용해 셔터타임을 길게(장노출) 설정하고 사진을 찍어 보세요. 피사체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밝고 자세하게 나옵니다. 자연상태에서 완벽한 어둠이란 없습니다. 달빛도, 별빛도 훌륭한 조명이 됩니다.

1197호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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