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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리더의 시각이 바둑학과의 부침 갈라 

정수현의 바둑경영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바둑학과 탄생·성장 과정에서 총장들 생각 제각각 … 장점 키우는 리더십 필요



기업의 CEO나 국가 지도자가 어떤 시각과 관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기업과 나라가 성하기도, 쇠하기도 한다. 세종대왕은 문자가 없어 백성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걸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많은 반대와 어려움을 무릅쓰고 학자들을 독려하며 한글을 창제했다.

세종대왕은 국민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먹고 사는 문제 못지 않게 중요시했다. 마오쩌둥과 화궈펑 이후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된 덩샤오핑은 공산주의 이념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많이 잡으면 된다’고 봤다. 이런 철학에 따라 그는 경제개혁을 단행했고 오늘날 중국을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올리는 초석을 다졌다.

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리더의 시각과 관점 또는 철학이 학교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필자는 1997년 명지대에 세계 최초로 바둑학과가 탄생하면서 교수로 부임했다. 당시 바둑학과를 만든 이는 국무총리를 지낸 고건 총장이다. 대학의 학과는 거의 대부분 서양의 학문을 따라서 만들었다. 그러나 바둑학과는 서양에도 없고 국내에도 없었다. 한국에서 이런 학과를 독창적으로 만들었다는 게 특별하다. 고건 총장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바둑학과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바둑학이라는 독창적 학문의 탄생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학과였기 때문인지 바둑학과는 보는 이에 따라 평가가 엇갈렸다. 바둑학과가 바둑최강국인 한국의 강점을 살린 의미 있는 학과라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둑이 학문이 되기 어렵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역대 총장들도 바둑학과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바둑학과가 명지대의 가장 내세울만한 학과라고 보는 총장이 있는가 하면, 무가치한 학과로 바라본 총장도 있었다. 리더가 갖는 양극단의 시각 차이 때문에 바둑학과 교수들은 곤혹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교육 마케팅 입장에서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려던 A총장은 바둑학과를 주목했다. 그는 명지대의 특별한 점을 부각시키는 차별화 전략을 고심했다. 그러다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바둑학과를 눈여겨 봤다. 그는 입학식 연설에서도 바둑학과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총장의 관심이 크니 학과 교수들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장의 기대에 부응해 색다른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예컨대 국제 바둑학 학술대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Baduk)같은 것이다. 삼성화재와 사이버오로에서 후원한 이 행사에 여러 나라 25명의 발표자가 참석해 바둑에 관한 토론을 벌였다. 이 행사는 명지대를 국제사회에 알리면서 한국 바둑이 국제무대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양의 지식인이 이 행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학술대회 논문집을 미국을 비롯한 여러나라에 소개했다.

이 무렵 한국은 프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최강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서양의 바둑팬들은 한국 바둑을 잘 알지 못했다. 일본이 해외에 바둑을 보급하며 글로벌 바둑시장을 장악했다. 하지만 학술행사를 계기로 달라졌다. 한국 바둑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학술발표자 중 상당수는 일본식 발음으로 된 바둑용어를 행마·정석 등과 같은 한국식 영어로 바꿔 표기했다.

이 학술 행사에 이어 러시아에서 열린 유럽 바둑 콩그레스에서 두 번째 국제 학술대회가 열리며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이 대거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해마다 유럽 바둑행사에 한국인이 참석하며 ‘코리언 돌풍’을 일으켰다. 태권도 사범처럼 유럽에 나가 바둑을 보급하는 학생도 있었다.

이렇게 한국 바둑이 알려지면서 명지대에 독일·프랑스·러시아·헝가리·벨기에·미국·브라질 등 학생의 유학을 줄을 이었다. 바둑학과를 방문하는 외국인도 늘었다. 일본 NHK에서는 두 번이나 취재했다. 요즘은 중국 대학과 교류하는 행사가 늘었다. A 총장이 기대한 것처럼 바둑학과가 글로벌 학과가 된 것이다.

그런데 리더가 바뀌면서 학과의 분위기는 돌변했다. 이공계 중심으로 학교를 발전시키려던 B총장은 바둑학과를 보고 “대학에 무슨 이런 학과가 다 있나?” 하는 질문을 던졌다. 세계 어느 대학에도 없는 학과이니 이런 반응을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리더의 이런 시각은 학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총장을 보좌하는 참모진도 덩달아 바둑학과를 폄하했다. 학교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바둑학과를 지목하며 심지어는 구조조정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학교를 널리 홍보하고 빛내는 학과였지만 정작 학교 내부에서는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가 학과 교수에게 좋은 영향을 줄 리 없었다. 잘 하는 점을 인정하고 고무해야 동기가 유발되는 법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의욕이 감퇴될 수밖에 없다. 학과에서는 유명 경영 컨설턴트를 초청해 자문을 받으며 발전 전략을 짜기도 했다. 그러나 바둑학과 관계자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섭섭함이 남아 있었다.

바둑학 종주국으로 해외에 이름 알려

리더의 시각과 관련된 바둑학과의 일화를 들어봤다.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 리더는 조직의 어떤 부분이나 사태에 대해 편파적인 시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가치 기준에 따라 편향된 정책을 펼치면 직원들의 동기 유발을 방해할 수 있다. 미래의 잠재력 있는 무형의 가치도 간과할 수 있다.

둘째 약점보다는 강점을 강조하는 게 바람직하다. 사람은 누구나 강점과 약점이 있다. 약점을 주로 거론하면 비난으로 비춰져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강점을 추켜세워 조직에 공헌하도록 유도하는 게 현명한 전략이다. 셋째 리더는 조직구성원의 작은 공훈이라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공을 세웠데도 리더가 인정하지 않으면 불만을 품게 되고 충성심이 줄어들게 자명하다. 조직의 운영은 물론 일상의 삶에 대한 자신의 시각과 관점이 올바른가를 점검해 보자.

1200호 (201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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