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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5년 전엔 연봉 1억2000만원도 중산층 

고무줄식 중산층 기준 

정책·통계 따라 기준 달라져 … 통념은 연 7000만원 쯤 벌어야



정부가 세제 개편 수정안을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 12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세제 개편안을 원점에서 재검토 하라고 지시한 후 27시간 만의 일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월 13일 “소득세 부담이 커지는 기준선을 연 소득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현 부총리는 “연 소득이 5500만원 이하일 경우 세 부담이 증가하지 않는다”며 “연 소득 5500만~7000만원인 경우도 의료비나 교육비 지출 부담이 큰 점을 감안해 (종전 16만원에서) 연간 2만~3만원 수준으로 세 부담을 낮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세 부담이 증가하는 근로자는 8월 8일 세제 개편안 발표 때 나온 434만명(28%)에서 210만명(13.6%)으로 줄었다. 연 소득 7000만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 또한 종전 세법과 동일한 수준을 적용 받는다.

정부는 예상되는 세수 결손액 4400억원가량을 의사·변호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나 대기업의 세금 탈루를 막는 제도 개선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수정안 발표 후 여야 반응은 엇갈렸다. 새누리당은 대체로 공감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반발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부자 감세를 철회하지 않은 중산층 증세”라며 “조삼모사로 국민을 우롱하는 것일 뿐”이라고 촌평했다.

이번 수정안으로 정부가 중산층 기준을 연 소득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재조정 했다고 볼 수 있다. 종전보다 기준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대체 중산층 기준이 뭐냐”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어떤 기준으로 중산층을 정한 걸까? 우선 기획재정부는 연 3750만원을 ‘중위소득’으로 규정했다.

김낙회 기획재정부 세제 실장은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가구소득 기준으로 중위소득이 연 3750만원 정도”라며 “이것의 150%인 연 5500만원 소득자까지 서민·중산층으로 본 것”이라고 말했다.


중위소득 개념이 중요

중위소득이란 나라 전체 가구를 연 소득 1~100위라고 했을 때 중간인 50위 가구의 소득을 뜻한다. 연 3750만원을 벌어야 100명 중 50등이란 얘기다.

이 숫자는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집계한 ‘5인 이상 사업장 상용근로자의 월평균 임금’ 통계 등으로 산출한 것이다.

정부는 여기서 통상 중위소득 가구의 150% 이하 범위를 서민·중산층으로 분류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계산법을 따랐다. OECD는 중위소득 가구의 소득에서 50~150%의 금액을 거두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정의한다.

결국 정부가 제시한 연 5500만원은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경계 지점이다. 정부는 2009년 4800만원, 2010년 5000만원, 2011년 5200만원, 지난해 5500만원으로 중산층 기준소득을 수정했다.

박근혜정부 첫 세제 개편안에서 나온 연 3450만원이란 숫자는 지난해 전체 근로자에 대한 근로소득세 연말정산 시뮬레이션에서 세 부담이 증가하는 전환점이었다. 지난해 기준 연 소득이 3450만원을 넘는 근로자는 1554만명으로 상위 28%였다.

정부는 세제 개편안 발표 직후 “연 3450만원 버는 월급쟁이가 중산층이란 기준은 턱없이 낮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한 발 물러섰다. 연 소득 5500만원 이상은 지난해 근로자 1인 급여 기준으로 상위 13.2%다. 상위 28%에서 13.2%로 기준점을 대폭 것이다.

하지만 정부로선 세 부담이 증가하는 중산층의 기준을 정하는 데 갈팡질팡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5년 전인 2008년만 해도 정부가 제시한 중산층 기준은 달랐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초기 세법 개정안에서 연간 과세 표준액 8800만원 이하를 중산층으로 규정했다. 과세표준액은 근로자 총 급여에서 소득공제 같은 액수를 제외한 것이라 실제 연 소득으로 치면 1억2000만원이다.

중산층이 지금보다 이렇게 ‘부유했던’ 이유는 뭘까? 당시 정부는 부자 감세 기조에 대한 비판론이 거세지자 감세 혜택이 중산층에게 많이 돌아간다는 걸 강조하려고 했다. 중산층의 연 소득을 부풀려 인위적으로 중산층 숫자를 늘린 것이다. 박근혜정부도 올 들어 4·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땐 연 소득 6000만원까지를 중산층으로 봤다. 정부의 필요에 따라 중산층의 숫자는 늘기도, 줄기도 한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산층을 정하는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어떤 통계를 참고하느냐에 따라 중산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번에 원용한 고용노동부의 ‘5인 이상 사업장 상용근로자의 월평균 임금’ 통계가 국내 전체 근로자의 중위소득을 산정하는 데 타당하느냐는 지적도 있다. 상위 몇 %가 부를 독점할 경우 상위 표본값이 평균을 확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실제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균등화 중위소득(가처분소득 기준)은 2125만원으로 고용노동부 통계와 꽤 차이가 있다. 그런가 하면 홍종학 민주당 의원이 분석한 ‘통합소득 100분위 자료(2011년 국세청이 신고 받은 근로소득·종합소득 과세 자료를 합한 것)’에 따르면 근로자 1887만명의 중위소득은 1688만원에 불과했다.

이러다 보니 통계상의 중산층과 국민이 생각하는 중산층에도 차이가 있다.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선 4인 가구 기준 ‘월 500만원 이상 벌어야 중산층’이라는 응답자가 57%로 가장 많았다. 연소득으로 환산하면 6000만원이다. 올해는 액수가 더 늘었다. 올해 삼성경제연구소 설문조사에선 4인 가구일 때 ‘연 7000만원 이상 벌어야 중산층’이라는 응답이 44.1%로 1위였다. 연 1억원 이상 벌어야 중산층이란 응답도 21.4%나 됐다.

그러나 통계청은 지난해 가계 동향 조사에서 우리나라 4인 가구 중산층의 연 소득이 2124만~6372만원인 것으로 집계했다. 연 소득 2124만원인 근로자의 월급은 177만원에 불과하다. 맞벌이·홑벌이 가구당 소득을 구분하지 않은 채 가구 총소득 개념으로만 집계한 것까지 감안하면 현실과의 괴리는 더 크다.

외국 중산층 개념도 제각각

나라별로 중산층에 대한 정의도 저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처럼 경제적 측면에서 보기도 하지만 비경제적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미국 ABC뉴스는 최근 보도에서 연 소득 3만2000~6만4000달러(약 3580만~7158만원)인 미국인이 중산층이라고 ‘잠정’ 규정했다. 다만 ‘공식적인 중산층의 정의는 없지만’이란 조건을 걸었다. 미국 공립학교들은 ‘자기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 약자를 도우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고, 정기적으로 비평지를 읽는 부류’를 중산층이라고 설명한다.

중국은 다소 다르다. 포브스 중국어판은 올해 3월 ‘중국 대중부유(大衆富裕)계층 백서’를 발표하면서 ‘중국 중산층이 최근 급속히 증가해 지난해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썼다. 백서에 따르면 이들의 투자 가능한 평균 자산은 133만 위안(약 2억4300만원)이다.

1201호 (201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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