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 자동차 시장은 ‘해치백의 무덤’이라는 말이 정설이었다. 트렁크가 분리된 세단 이외에는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이 공식은 2005년 디젤 승용차 판매가 허용되면서 깨졌다. 유럽형 해치백 푸조 307과 폴크스바겐 골프가 스타일과 연비를 앞세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다. 수입 해치백에 자극을 받은 현대자동차가 2006년 해치백 i30을 내놓으면서 저변을 넓혔다.

해치백은 2열 시트를 접으면 자전거 같은 큰 짐을 실을 수 있고 꽁무니가 납작해 주차할 때 편하다. 차를 처음 구입하는 젊은층이 선호해 자동차 업체마다 해치백 모델에 신경을 쓴다. 유아를 둔 부모라면 해치백이 세단보다 편할 수 있다. 요즘 유모차는 비싸기도 하지만 덩치가 크다. 세단은 트렁크 턱 때문에 허리를 숙여야 하지만 해치백이나 왜건은 입구가 편평해 던져 넣을 수 있다. 실용성을 많이 따지는 유럽에서는 세단보다 해치백이 더 잘 팔린다.

올 하반기 수입차 시장은 배기량 2.0L 이하 해치백이 달굴 전망이다. 한국수입 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신차 가운데 2L 이하 비중은 54%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49%에 비해 늘었다. 이 가운데 해치백이 약진했다. 7월 출시된 폴크스바겐의 해치백 7세대 골프는 대박을 기록했다.

골프 2.0 TDI는 7월 한 달만 688대가 팔려 벤츠의 인기차인 E300을 제치고 베스트 셀링카 2위를 꿰찼다. 가격이 저렴한 골프 1.6 TDI도 353대가 판매됐다. 폴크스바겐은 골프로만 1000대 이상 팔아 수입차 순위에서 벤츠를 제치고 처음 2위에 올랐다. 이 회사는 앞으로도 골프를 월평균 700대 이상 팔 것으로 전망한다.

벤츠까지 해치백으로 젊은층 공략

수입차 부동의 1위인 BMW도 소형 해치백으로 저변을 넓힌다. 올해 1∼7월 5도어 해치백인 118d 어반이 639대, 3도어인 120d 스포츠가 156대가 팔리면서 가지치기 모델로 인정을 받았다. 118d는 3000만원대 중반 가격으로 국산차에서 BMW로 넘어오는 엔트리 모델 역할을 한다.

BMW을 추격하는 벤츠는 국내 시장에서 이렇다 할 해치백 모델이 없어 열세를 면치 못했다. 국내에서 ‘벤츠=성공한 중장년의 차’라는 인식이 강해 해치백을 들여 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수입차 구입층이 30·40대로 이동하면서 소형 해치백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 8월 중순 프리미엄 해치백 ‘A클래스’를 내놓고 하반기를 기대한다.

브리타 제에거 벤츠코리아 사장은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열린 ‘A클래스’ 시승회에서 “프리미엄 해치백 시장에서 BMW 1시리즈와 경쟁하겠다”고 말했다. A클래스는 우선 디자인이 기존 벤츠의 이미지처럼 무겁지 않다. 휠베이스(앞뒤 바퀴간 거리)가 길어 실내는 넓고 차체가 낮아 날렵한 디자인이다. 기존의 몽땅한 느낌을 찾아 볼 수 없다.

배기량 1796cc 디젤 엔진은 136마력에 최대토크 30.6kg.m/1600~3000rpm을 낸다. 운전자가 주로 사용하는 엔진 회전수에서 최대토크가 꾸준히 나오는 게 강점이다. 연비를 좋게 하는 7단 듀얼클러치(자동변속기)를 달아 1L로 18km를 주행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골프 2.0 TDI는 최고 150마력, 1시리즈 118d가 143마력인 것을 감안하면 A200 CDI는 힘보다는 편안한 주행과 연비에 초점을 맞췄다. 시동을 걸었을 때 정숙성은 단연 최고 수준이다. 가격은 보급형 ‘A200 CDI’가 3490만원으로 골프 2.0 TDI(3290만원)와 불과 200만원차이다.

볼보의 5도어 해치백 V40과 3도어 시트로엥 DS3는 주식 시장에서 말하는 저(低) 주가수익비율(PER) 주다. 독일 브랜드가 아니라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경우다. 감각적인 디자인이 눈길을 자극하는 V40은 문을 닫아보면 무겁고 두터워 안전성이 느껴진다.

성능·옵션·마감재 경쟁

차선 유지 보조시스템도 돋보인다. 시속 65㎞ 이상 주행을 할 때 졸음 등으로 차선을 이탈하면 스스로 스티어링 휠을 조작해 방향을 바로 잡는다. 여기에 진동까지 줘 주의를 환기시킨다. D4 모델은 1984cc 배기량의 5기통 디젤 엔진을 얹고 177마력의 출력과 40.8㎏·m의 토크를 낸다. 연비는 L당 15.4㎞. 가격은 3690만∼4590만원.

볼보자동차코리아는 해치백 붐을 이어가기 위해 하반기 가격과 배기량을 낮춘 V40 D2를 출시한다. 최고 115마력에 27.5㎏.m의 토크를 내는 1.6L 디젤로 다운사이징해 연비(유럽 기준)가 L당 시내 22.7㎞, 고속도로 27.8㎞로 동급 최고다. 가격은 3000만원대 초반으로 알려졌다.

시트로엥 DS3는 톡톡 튀는 디자인과 동급 최고의 연비가 강점이다. 실내 인테리어는 프랑스만의 개성과 자유가 풍긴다. 원뿔 모양의 조작 다이얼과 몸을 감싸는 시트는 이 차만의 매력이다. 달리기 성능은 민첩하고 날렵하다. 폭이 3.95m로 넓어 여유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1.4L 디젤 모델의 연비는 무려 20.2km/L다. 1.6L 디젤은 1750rpm의 낮은 엔진 회전수에서 23.5kg.m의 토크를 내 넉넉한 힘을 보여 준다. 연비는 L당 19km다. 모두 수동 겸용의 자동변속기를 달았다. 가격은 각각 2890만, 3190만원.

혼다의 5도어 해치백 ‘시빅 유로’는 가솔린 모델이란 점이 특징이다. 혼다 특유의 연비 절감장치를 달아 공인연비(L당 13.2㎞)와 차이가 없는 실주행 연비가 특징이다. 작고 탄탄한 차체에 유럽 스타일의 핸들링이 일품이다. 가격은 3150만원이지만 요즘 10% 정도 할인해 팔고 있다. 국산 해치백의 대표인 현대자동차 i30은 화려한 옵션과 저렴한 가격이 매력이다. 2095만원의 최고급 디젤 모델에는 동급 수입차에 없는 스마트키·냉방시트·하이패스 같은 옵션이 다 달려 있다.

마감재도 한 수 우위다. 유럽산 해치백에 비해 고속 주행감이 다소 뒤진다는 평도 있지만 30% 이상 저렴한 가격에 고급편의장치를 고려하면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차’다. 국내보다 유럽에서 인기가 높다. 유럽 언론에서는 곧잘 골프와 비교한다. 128마력에 26.5kg.m의 토크를 내는 1.6L 디젤 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렸다. 연비는 L당 16.2km다. 현대자동차의 차량 가운데 하체가 가장 탄탄해 핸들링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자동차는 수입 해치백 공세에 맞서기 위해 3년 뒤 i30 중고차 잔존가치를 최고 62%까지 보장해주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2000만원인 i30를 36개월 유예할부로 구매하고 3년 뒤 차를 팔면 1240만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해치백과 세단 세단은 엔진룸(보닛)·실내·트렁크룸으로 공간이 나뉜 ‘3박스’ 형태를 말한다. 해치백은 2열 시트가 트렁크룸과 연결된 ‘2박스’다. 꽁무니가 짧아 주차가 편한데다 뒷모습이 세련된 게 특징이다. 잠수함의 도어(해치)처럼 뒷 도어를 위에서 아래로 여닫는 방식이라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