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바티칸에서 새 교황이 선출되면서 콘클라베(Conclave, 라틴어로 ‘열쇠로 잠그다’는 뜻)라는 독특한 교황 선출방식이 이목을 끌었다. 교황이 되려면 카톨릭 추기경단의 3분의 2인 77명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콘클라베는 교황 선출이 무한정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표기간 추기경들을 외부와 단절된 방에 가두고 일정량의 빵과 포도주만 제공하는 방식이다. 합의에 이를 때까지 음식의 양을 점점 줄여가다가 나중에는 물만 제공한다고 한다.실패 존중 말처럼 쉽지 않아구태여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그랬을까 수긍이 간다. 비즈니스에서도 중요한 의사결정 앞에서 머뭇거리다 실기(失機)하는 일이 다반사다. 특히 작지 않은 신사업 실행 단계에서 그렇다. 투자 승인은 받았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엄두가 나지않아 이리저리 재다가 결국 실행 타이밍을 놓치고 선수를 뺏기게 된다. 일명 ‘햄릿(Hamlet)’ 바이러스다. 비극의 주인공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갈등했다면 신사업 담당자는 ‘할 건가 말 건가’를 놓고 주저한다.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손실회피(Loss aversion) 성향 때문이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개개의 실패 사안에 대해 용인 여부와 그 범위를 정하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결국 실패에 대한 용서는 예외적일 수밖에 없으며, 햄릿 바이러스는 만연하게 된다.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사방에 정보와 지식이 흘러 넘치며 당신의 손가락 끝에 정보가 모여든다 (Information at your fingertips, 빌 게이츠가 1990년 컴텍스 쇼에서 한 말). 이렇게 정보가 많으면 의사결정의 질(質)이 높아질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의사결정 자체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긴다. ‘아는 게 병’이라고 정보의 홍수 앞에서 당신은 햄릿이 된다. 정보의 바다에 빠져 익사하지 않으려면 과감한 실행이 필수다.GE의 전 CEO였던 잭 웰치는 말한다. “실수를 하려거든 지나치게 늦게 결정 내리는 실수보다는 지나치게 빨리 결정 내리는 실수를 하라”고. 그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영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실행 중심의 행동 철학 덕분이었다. 실제로 그는 18년 재임기간 동안 1700여개의 사업을 인수하고 400여개의 사업에서 철수하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GE를 키웠다.큰 기업일수록 내부의 관료주의 탓에 구성원이 햄릿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한때 유행한 증권가 유머 하나. 당신의 사무실에 뱀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A사는 앞뒤 가리지 않고 먼저 뱀을 때려 잡고 본다. B사는 사장께 보고부터 하고 지침을 받아 처리한다(햄릿의 조짐이 약간 보인다). C사는 위원회를 열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서 뱀 처리 방안을 협의한다(완벽한 햄릿의 후예들이다). 당신의 회사는 과연 어느 부류인가?신사업 실행 타이밍을 놓고 고민하는 햄릿은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더 큰 문제는 부실사업 처리를 놓고 벌어진다. 손해가 뻔히 보이는데도 이미 지불한 비용이 아까워서 오도가도 못하고 애를 태우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일명 ‘흰 코끼리(White elephant)’ 바이러스.옛날 시암 왕국(현 태국)의 왕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에게 하얀 코끼리를 하사했다고 한다. 하루에 수백 킬로그램의 먹이를 먹어 치우고 70년 가까이 사는 코끼리를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왕이 선물한 영물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노릇. 한마디로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고 등골이 휘었을 법하다.계속할지 수시로 점검하는 ‘스테이지 케이트’ 시급흰 코끼리 바이러스는 경제학의 매몰비용(Sunk cost), 즉 과거에 이미 지출되어 회수하기 어려운 비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현재의 선택이 왜곡되는 현상이다. 투자를 계속할수록 매몰비용은 더 커지게 되고 중단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신사업은 처음에는 적은 돈으로 시작하지만 서서히 돈 먹는 하마가 될 수 있다.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접어야 한다.실패한 신사업에 계속 미련을 갖는 것은 나쁜 돈을 좇아 좋은 돈을 버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throwing good money after bad). 워런 버핏의 말처럼 ‘구멍에 빠졌을 때 최선의 방책은 계속 파는 것을 멈추는 것’이다. 본전이 아쉽기는 하겠지만 과감히 중도 포기하고 손절매(Stop loss)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추진한 콩코드 프로젝트는 흰 코끼리 바이러스에 희생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1968년에 처음 선보인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평균 속도는 2000km/h (마하 1.7). 대서양을 2시간 50분에 횡단하면서 전 세계의 박수갈채를 받았다.그러나 곧이어 닥친 오일쇼크와 음속 돌파 때의 소음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영국과 프랑스 모두 콩코드의 사업성이 약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양국의 체면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투자를 멈출 수 없었고 1972년까지 20기나 제작하게 된다(콩코드는 2003년 런던-뉴욕 비행을 마지막으로 역사에서 사라진다).현실에서는 과거 의사결정에 대한 미련과 집착,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중지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실수를 은폐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정보를 왜곡하고 불필요한 자원이 더 투입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한때의 ‘성공신화’에 취해 있는 국내 기업들은 실패를 인정치 않고 갈 때까지 가보려는 경향이 강하다.실행 없는 비전은 백일몽일 뿐이다. 신사업에는 ‘통로원리(Corridor principle)’가 작용한다. 통로 밖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일단 통로 속에 들어가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실행을 두려워하는 햄릿에게 남는 건 뒤늦은 탄식뿐이다. 한 방에 대박을 바라며 지나치게 뜸을 들이기보다 우선 손에 닿는 열매부터 따는 작고 빠른 승리(Quick win)를 노려야 한다. 준비→조준→발사에서 준비→발사→조준으로의 사고방식 전환, 즉 실행중시형 체제 확립이 요구된다.아울러 프로젝트의 중간 진도를 체크하고 그 결과에 따라 고·스톱(Go·Stop)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스테이지 게이트(Stage gate)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열정으로 시작한 신사업 프로젝트를 중도에서 그만두기는 조직 정서상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 기회를 달라는 쪽과 밑 빠진 독이라는 쪽이 팽팽히 대립한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어떤 결정이 나도 수긍하지 않는 쪽이 생기게 된다. 스테이지 게이트라는 규칙(Rule)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