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Issue - 3억원 이상 소득자 450만원 더 내야 

소득세법 개정안 논란 

전문직·자영업자 탈세 방지책 시급 해외선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



새해를 4시간여 앞둔 12월 3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소득세법 개정안을 놓고 격론을 벌인 여야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소득세 최고세율(38%)을 적용받는 과표 구간을 현행 ‘3억원 초과’에서 ‘1억 5000만원 초과’로 하향 조정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세율은 올리지 않고, 대신 높은 세율을 적용 받는 소득 구간의 범위를 늘려 대상자를 확대하는 방식의 증세에 합의한 것이다. 2011년 최고세율을 38%로 올리고 3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한 이른바 ‘한국판 버핏세’를 도입한 지 2년 만의 소득세 체계 개편이자, 사실상 박근혜정부의 첫 부자 증세다.

세율 오른 납세자 9만1000명

현재 한국의 소득세는 과세표준을 5개 구간으로 나누고 낮은 소득구간부터 6%·15%·24%·35%·38%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최고세율은 38%다. 기존에는 연 소득이 3억원을 초과하는 납세자가 이 세율을 적용 받았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1억5000만원 이상인 납세자도 38%의 세율을 적용 받게 됐다. 3억원 초과자의 세율은 그대로지만 1억5000만 초과~3억원의 소득자는 세율이 3% 오른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세율이 오른 납세자를 9만1000명으로 추산했다. 최고세율 구간 적용 인원은 4만1000명에서 13만2000명으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4700억원의 세수 증대 효과도 예상된다.

개정 소득세법을 토대로 소득세를 계산해보면 소득 1억5000만~3억원 구간의 납세자는 소득 1000만원 당 30만원의 세금을 지난해보다 더 내야 한다.

소득이 2억원인 사람은 150만원, 2억5000만원인 사람은 300만원의 세 부담이 증가한다. 1억5000만~3억원 소득자만 세금이 오르는 건 아니다. 세율 변동이 없는 3억원 이상 고소득자도 올해부터 일괄적으로 450만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우리나라 소득세 구조가 누진세인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의 과세표준이 4억원이라면 38%의 세율이 적용되는데, 4억원의 38%를 세금으로 내는 것이 아니고, 4억원 중 3억원 초과분인 1억원에 대해 38%를 세금으로 낸다. 3억원 이하의 금액은 각 구간에 해당하는 세율을 적용 받는다. 예컨대 전체 소득 중 1200만원까지는 6%, 1200만~4600만원 사이의 경우 1200만원을 초과하는 3400만원에는 15%의 세율을 곱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번 세법 개정에서 과표구간을 조정하면서 38% 세율을 곱해야 하는 소득 구간이 늘었다. 이 때문에 3억원 이상 소득자는 세율 변동이 없는데도 450만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가령 연 소득 4억원 이상인 사람의 기존 소득세는 1억2810만원(9010만+(4억-3억)×38%)이었다. 개정안으로 계산하면 1억3260만원(3760만+(4억-1억5000만)×0.38%)이 된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누진제로 3억원 이상 소득자의 세금도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과표구간 하향 조정의 증세 효과는 굉장히 크다”고 설명했다.

증세를 꺼리던 새누리당이 이 같은 안을 받아들인 건 일종의 고육책이다. 애초 새누리당은 과표기준을 3억원에서 2억원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고수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1억5000만원으로 내리는 안을 고집했고, 대신 당론으로 새누리당의 ‘양도세 중과 폐지’를 수용하겠다는 협상카드를 제시하자 과표기준을 5000만원 더 내리는 쪽으로 입장을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경기회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세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안정된 증세 방안이지만 한계점도 있다”는 평가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한국은 소득세율이 높은 편인데도 개인소득 세수는 적다”며 “주요 원인이 최고세율을 적용 받는 과표구간이 높았던 것이기 때문에 형평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이번과 같은 개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면세자 비율이 높고 탈세자가 많다는 부작용도 서둘러 바로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초기부터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지하경제양성화’가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논란이 더 거세질 수 있다.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로부터 정확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장치가 여전히 허술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숨겨진’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역차별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세금 꼬박꼬박 잘 내는 월급쟁이만 세금 더 내게 생긴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소득세 체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소득세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소득세가 계속 문제가 되는 이유는 과표구간이 물가 수준을 반영하지 못하는 탓이 크다. 1996년 이후 소비자물가지수는 60% 이상 올랐지만 소득세 과표구간의 상·하한선은 큰 변화가 없다.

전반적인 소득 수준은 올랐지만 과표 기준이 그대로 있다 보니 고소득층의 세 부담이 적다는 논란도 생긴다. 결국 2011년 최고 세율구간(38%)을 신설했지만, 이후 갑작스럽게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이 너무 넓어지면서 구간 조정 문제가 지속적으로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중산·저소득층 구간에서는 ‘브래킷 크리프증세효과’도 나타난다. 브래킷 크리프는 물가상승으로 인해 명목 소득이 늘어나면서 납세자의 소득이 좀 더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구간으로 밀려 올라가는 현상이다. 세율 인상 없이도 중산·저소득층 소득세 부담이 증가하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12월 1일 ‘소득세 과세체계의 개편에 대한 쟁점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소득세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해외 주요국의 경우 물가 상승에 따라 소득세 과표구간이 자동 조절되는 물가연동제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독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9개 국가가 과표구간을 물가에 연동한다.

이 보고서는 “각종 공제·감면 제도를 신설·조정하는 등 세법을 개정해 물가상승을 반영하지만, 잦은 세제 개편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보기 어렵다”며 “물가 연동제를 도입해 소득세제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재정위기 대응책으로 일정 이상의 소득에 대해 3~4%포인트의 추가 세율을 매기는 ‘부가세’ 제도를 시행한 바 있다. 임언선 입법조사처 재정경제팀 입법조사관은 “부가세는 대대적인 과세 개편이 필요 없어 한국에서도 탄력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220호 (20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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