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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누가 트렌드를 만드는가?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선도자 아이디어와 대중의 욕망 맞아떨어져야 … 트렌드 제시 타이밍도 중요



사회 전반에 부는 복고 열풍이 예사롭지 않더니, 색채마저도 복고풍이 인기다. 1990년대를 연상시키는 ‘버건디(burgundy)’ 컬러가 립스틱과 같은 화장품은 물론이고 외투·니트·머플러 같은 패션에서도 대세 색상으로 부상 중이다. 버건디 색상은 한 마디로 와인색이다. 프랑스 남동부 부르고뉴산 포도주 ‘버건디’에서 유래했단다. 1990년대 초 브라운관을 주름잡던 여자 연예인들이 마치 ‘뱀파이어’ 같은 입술색을 하고 있던 모습을 떠올리면 쉽다.

한 듯 안 한 듯한 ‘누드톤’ 화장법이 인기를 끄는 가운데, 왜 하필이면 강렬한 ‘버건디’ 색상이 인기를 끄는 걸까? 어쩌다가 이 색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행할 가능성이 큰 색상으로 떠오른 걸까? 왜 사람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립스틱이 수두룩한데도 다소 촌스러운 이 색상이 ‘세련됐다’면서 굳이 사려는 걸까?

이 모든 질문을 종합하면 ‘트렌드는 누가 만드나’에 대한 의문으로 귀결된다.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구매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트렌드란 게 어쩌다가 ‘트렌드’가 된 것인지 말이다. 대답은 제각각일 것이다. 유명 학자, 인기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디자이너·마케터 등 다양한 후보가 트렌드의 최초 유포자 물망에 오른다.

소수의 창조자가 트렌드 만드는 트리클다운 이론

앞서 설명한 컬러 트렌드처럼, 스타일을 만드는 소수의 트렌드 창조자(trend creater)가 트렌드를 만들고 이것이 일반인들에게 확산된다는 이론이 바로 ‘트리클다운 이론(trickle-down theory)’이다. 가령 천재적인 스타일리스트가 ‘버건디’란 색상을 제안하면, 연예인처럼 트렌드를 선도하는 사람들(trend setter)이 이를 따른다.

그러면 유행에 민감한 일반인(early adopter)도 이를 따라하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반 대중(mainstreamer)에게 확산돼 마침내 유행에 둔감한 사람들(late mainstreamer)도 버건디 색상의 화장품을 하나씩 갖게 된다. 마치 물방울이 ‘위’에서 형성돼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는 모양과 같다고 해서 하향 전 파이론 혹은 트리클다운 이론이라고 부른다.

생각보다 많은 제품군에서 이런 현상이 관찰된다. 양털이 덧 대진 신발인 ‘어그(ugg)’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많은 사람이 독특한 디자인에 놀랐다. 유행에 민감한 여성을 중심으로 어그를 신기 시작하자, 남자들은 이 신발이 ‘곰발바닥’ 같다며 강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어그는 1가구에 1컬레 이상씩 구비한 겨울용 필수 신발이 됐다. 심지어 이젠 남성들도 적극적으로 어그 스타일의 신발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도 이 신발을 보고 이상하다거나 신기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낯선 스타일의 유행이 일반 대중에게 확산된 것이다.

전자제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기존과는 다른 개념의 신제품을 제안했을 때, 그것이 초기 얼리어댑터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다가 나중에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수용된다. 물론 트렌드를 창조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트렌드로 성공을 거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 없던 생각이 실현되고, 그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건드리고, 많은 사람이 ‘갖고 싶다’고 욕망하면 하나의 큰 트렌드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기업들이 유명 연예인들에게 ‘협찬’을 제공하거나, 일반인 중에서도 비교적 얼리어댑터라고 할 수 있는 블로거들에게 ‘테스트 제품’을 제공하는 이유는 바로 그 제품이 트리클다운 돼서 대중에게 확산되길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의 트렌드 선택 강조하는 싸이클릭 이론

그렇다면 천재적인 생각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 창조자’의 의도가 항상 트렌드로 성공을 거둘까? 만약 연예인들이 TV에서 버건디 색상이 아니라 분홍빛 색상의 립스틱을 발랐다면, 버건디 대신 분홍이 2013~2014년에 유행하는 색상으로 떠올랐을까?

요즘 소비자들은 트렌드 창조자와 선도자의 선택을 무작정 따라가진 않는다. 일반 소비자라 할지라도 트렌드 세터만큼 제품에 대해 아는 것도 많고 선호도 나름 분명하다. 정보가 쉽고 빠르게 유통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환경이 발달하면서 소비자의 자신감은 한층 더 커졌다. 트렌드 창조자가 제안하는 여러 개의 트렌드 중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트렌드만 ‘취사선택’해 ‘확산’시킬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싸이클릭 이론(cyclic theory)은 소비자가 전문가의 안목을 선택하는 순간을 강조한다. 전문가와 소비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순환관계다. 트렌드 창조가가 혜성처럼 번쩍하고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일방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것을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트렌드 창조자를 강조하는 트리클다운 이론에 비해 일반 소비자의 역할이 더욱 강조된다. 아무리 인기 연예인이 새로운 트렌드를 제안하더라도, 그 시기 대중의 흐름과 맞지 않으면 일시적인 유행으로만 존재하다가 이내 사라지게 마련이다.

버건디 컬러만 해도 그렇다. 사실 경기침체기엔 단조로운 흑백 컬러나, 아니면 사회적 분위기와는 반대로 현란한 원색이 인기를 끌게 마련이다. 하지만 복고풍의 영화나 드라마가 계속 인기를 끌고, 인구통계적으로는 복고의 주역이 되는 40대의 강세가 두드러지면서 소비자들은 다양한 색채 중에서도 따뜻함과 향수를 자극하는 ‘버건디’ 컬러를 ‘선택’한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제안한 색채가 마침 소비자들의 소비 욕망과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트렌드는 타이밍 싸움

세상에 없던 트렌드를 만드는 전문가, 그리고 트렌드를 확산시켜나가는 대중, 사실 누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중요한 건 우리가 트렌드를 대하는 오해나 편견을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트렌드가 중요하다’라고 하면, 우리 기업이, 그리고 우리 부서가 트리클다운 이론에서의 ‘트렌드 창조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소비자들이 수많은 작은 트렌드 중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순간 힘을 받으면 순식간에 엄청난 크기의 트렌드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렌드를 볼 때는 ‘어떤 트렌드를 제안할 것인가’보다는 ‘언제 트렌드를 제안할 것인가’하는 ‘타이밍’의 문제를 늘 고민해야 한다. 소비자들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함께 호흡해야 하는 이유다.

1220호 (20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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