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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도중 면접관이 갑자기 쓰러지고, 회사에는 큰 불이 난다. 자살 소동까지 벌어지니 지원자로서는 어안이 벙벙하다. 영화에서나 일어날 일처럼 보이겠지만 올해 초 글로벌 맥주 회사인 하이네켄 채용 과정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하이네켄 측은 일부러 상황을 연출해 지원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는 방식으로 합격자를 뽑았다.훌륭한 인성을 갖추고, 행동할 줄 아는 인재를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1734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주인공은 가이 러팅. 자살 소동이 벌어졌을 때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방관의 요청을 듣고 가장 빨리 뛰어나가 구조용 매트를 든 사람이었다.하이네켄은 이 과정을 모두 영상에 담아 자신들이 후원하는 유럽 챔피언스리그 축구 경기를 통해 공개했다. 전광판에 ‘당신은 채용됐습니다(You got the job!)’라는 문구가 새겨지자 그제야 러팅은 자신의 합격 사실을 알았다. 수만 명의 기립 박수와 수백만 시청자의 축하 인사를 받았으니 역사에 길이 남을 입사라 할 만하다.하이네켄이 이 채용 과정을 담아 제작한 ‘후보자(The Candidate)’라는 이름의 동영상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 숨어있는 단기 프로젝트였지만 판에 박힌 채용문화에 길든 전 세계 기업에 주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지원자에 ‘구글 문화’ 심는 다단계 인터뷰충분한 기간을 두고 직무적합성을 검증하기 위해 인턴십 프로그램이 잘 갖춰진 것도 서구기업의 특징이다. 이런 채용문화가 지속되면서 기업별로 나름의 브랜드가 정착돼 있다. ‘세계 최고의 인재풀’이란 자부심을 갖고 싶다면 애플, 즐겁고 유쾌한 직장을 원한다면 사우스웨스트항공,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고 싶다면 골드먼삭스를 선택하는 식이다.삼성경제연구소 김봉재 수석연구위원은 “인재들이 자발적으로 회사를 찾아올 수 있도록 장기간에 걸쳐 구축한 브랜드”라며 “단순히 슬로건에 머물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일하는 방식 등에 깊이 스며들어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스펙 좋은 대학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입사를 준비하는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한번에 많은 인원을 뽑아야 하는 공채시스템에서는 창의적인 채용방식을 도입하는 게 쉽지 않다. 서구기업에 다양하고, 도전적인 채용방식이 일반화된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광고대행사인 TBWA는 독특한 채용방식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약 500명의 인턴십 지원자들에게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광고를 보여주고 지원자의 뇌파를 측정해 최종 합격자를 뽑았다. 열정이란 추상적인 언어 대신 뇌의 반응을 보고 뽑겠다는 취지였다. 정확성에는 의문이 있지만 광고회사다운 참신한 시도였다는 평가가 많았다.최근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채용에 활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간단하게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채용 정보를 알리는 것부터 지원자의 평소 성격과 활동성 등을 파악하는 도구로 쓰는 것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인텔은 헤드헌팅 업체 대신 링크드인을 활용해 연간 수백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애플은 지난해 10월 블랙베리 직원들을 상대로 대규모 채용설명회를 열면서 초대장을 링크드인 메시지로 발송했다. 메리어트호텔은 입사 희망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가상으로 직무를 체험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을 운영한다. 트위터·페이스북·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을 얼마나 잘 표현하고,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내는지를 평가해 인턴사원을 뽑은 SK텔레콤과 수행과제를 SNS에 올리는 것으로 서류 전형을 대체한 한국남동발전 등은 이런 영향을 받았다.일본의 사정은 우리와 비슷하다. 리쿠르트 워크스 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올해 신규 졸업 구인자 비율은 1.28이다. 구인자 비율은 민간기업 취업 희망자 수와 기업의 채용 예정자 수의 비율을 나타낸 것으로 1은 전원이 취직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1보다 낮으면 희망자가 채용 예정자보다 많다는 의미다.기업 규모별로는 종업원 5000명 이상인 회사가 0.54, 1000~4999명 이하 기업은 0.79였다. 300명 미만인 중소기업은 3.26이었다. 졸업에 맞춰 공채시험을 준비하고 도요타·소니·닌텐도·메이지·전 일본공수 등 인기 대기업에 인재가 몰리는 건 일본도 마찬가지란 얘기다.더 활발해지는 ‘소셜 리쿠르팅’물론 일본에도 특이한 채용시스템으로 널리 알려진 기업이 있다. 플라스틱 정밀 부품을 생산하는 주켄공업은 직원수가 100명에 불과하지만 해외 12곳에 지사를 둔 강소기업이다. 기술력도 뛰어나지만 이 회사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국적·성별·학력을 무시한 ‘선착순 채용’ 때문이다.입사시험 따윈 없고, 회사가 낸 공고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지원자가 곧 합격자가 된다. 가장 먼저 온 사람이 더 의욕적인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과거에 어떤 일을 했든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 개성이 회사를 더 강하게 만들고, 회사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만 제공하면 빠르든 늦든 재능을 발휘한다는 믿음이 있다.해충 방제회사인 아산테는 충격요법을 써 회사에 더 적합한 직원을 채용한다. 채용 설명회 때 입사 2~3년차 직원들이 나와 회사 생활의 어려운 점을 적나라게 발표하는 ‘본심 세미나’를 연다. ‘영업하러 갔다가 개에게 물렸다’ ‘일을 끝내고 나왔더니 옷에 뱀이 들어가 있었다’와 같은 끔찍한 경험담을 전해주는 식이다. 포기할 사람은 이 단계에서 포기하지만 오히려 더 의지를 불태우는 지원자도 많다. 이런 채용방식으로 아산테는 30~40%에 달하던 신입사원 이직률을 10%대로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