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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어라? 몸을 쓰네 몸을···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사무직 사이에 복싱·춤 등 격한 취미 인기, 기업은 TV광고, 행사 등의 소재로 적극 활용



하루에도 거액이 오가는 서울 여의도 증권타운. 최근 이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취미활동이 있다. 바로 ‘복싱’이다. 멋지게 정장을 차려 입은 증권맨·증권우먼들이 다소 과격한 운동을 취미로 삼는다니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격렬한 운동을 하면서 극도의 업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려는 심정이 이해도 된다. 몸에 집중하는 순간, 잠시나마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의 시간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에 집중하는 트렌드가 시장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여의도에서만 발견되는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다. 트렌드 변화를 재빠르게 수용하는 TV 광고를 보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멋있는 모델이 주로 등장하던 금융권 광고에선 이미 일찍부터 ‘춤바람’이 불고 있다.

배우 유준상을 앞세워 판타스틱 댄스 열풍을 이끈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KEB외환은행의 광고에선 ‘날개춤’이, 신한은행 광고에선 시장상인, 중소기업 직원, 서민들이 ‘손에 손잡고’ 노래에 맞춰 단체로 춤을 춘다. 현대증권 광고는 마치 한 편의 뮤지컬 같다.

목공예·집짓기도 관심 커져

일반인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몸을 사용하는’ 소비 트렌드에 동참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달리기’다. 지난해 10월에는 전국에서 무려 80개의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과거처럼 막무가내로 달리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웨어 브랜드들이 대거 주최한 달리기 행사는 훨씬 더 감각적이다. 가령, 직장인들이 퇴근 후 서울에서 가장 핫(hot)하다는 이태원으로 모인다.

멋진 런닝복으로 갈아입은 후 주변 사람의 시선을 즐기며 함께 거리를 달린다. 밤에 헤드렌턴을 끼고 서울대공원을 달린 후 다양한 문화행사를 즐긴 ‘2013 푸마 나이트런’ 행사나, 달리기를 하면서 서로에게 색깔 풍선을 던지는 세계적인 마라톤 축제 ‘color me red’ 같은 행사에선, 달리는 행동 자체가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차별화 포인트가 된다.

손을 직접 사용하는 취미활동도 부쩍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목공예 작업실이나 공방이다. 본래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나무를 자르고 가구를 만든다. 아예 취미로 집을 짓는 사람들도 있다. 경기도 화천의 ‘한옥학교’에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옥집을 짓기 위한 여러 가지 기술을 가르친다. 목공예처럼 전문적인 실력을 요구하지 않는 취미활동도 있다.

최근 소셜시장을 중심으로 ‘명화 따라 그리기’ 키트가 인기를 얻고 있다. 밑바탕에 숫자가 적혀있어 숫자대로 색을 칠하기만 하면 그림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도 고흐의 ‘파란 화병의 꽃’을 멋지게 그려낼 수 있다. 한 번 시작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빠져드는 몰입형 취미활동이다.

사실 현대인들은 ‘몸 쓰는’ 일에 썩 호의적인 편은 아니다.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학원을 다니는 식의 학습형 취미활동을 즐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 무엇인가 배우는 행위, 즉 ‘머리’를 쓰는 활동을 가장 바람직한 지적활동의 표본으로 받아들인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춤을 추는 행위’는 다소 가벼운 취미로 폄하되기도 했다. 이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몸을 쓰는 행위’가 가장 트렌디한 활동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몸’ 자체가 갖는 특징에서 비롯된다. 몸을 쓰는 동안 사람들은 머리를 비운다. 아무리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라도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잠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여백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마라톤에 빠져든 사람들이 달리는 동안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지는 것과 같다.

가족도, 사회적 역할도, 지위도 모두 버거워하는 현대인들이 1년 중 단 며칠, 아니 하루 중 단 몇 분이라도 스위치를 완전히 끄고 나만의 공백기를 갖고자 하는 것이다. 2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불기 시작한 ‘힐링’ 열풍에 대한 대답으로 몸을 사용하는 ‘노동 테라피(labor therapy)’가 수많은 답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단 의미다.

몸을 사용하는 행위에는 단시간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이 많단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흔히 21세기를 일컬어 새로운 ‘문명병(civilizational disease)의 시대’라 부른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삶은 편리해졌지만, 우리의 몸 쓰는 방식은 점차 퇴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커진다.

지금 열심히 작성하고 있는 보고서 내용이 언제쯤 신제품으로 출시돼 나올지 확신하지 못한 채, 그저 ‘문서작업’에만 몰두한다. 하지만 노동은 다르다. 일주일, 한 달만 집중하면 몸을 사용해 만든 것이 실현돼 눈앞에 나타난다. 요리, 나무 선반, 멋진 그림이 완성돼 나오는 것이다. 가장 적은 투입으로 가장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행위가 바로 ‘몸 쓰는 일’이다.

이런 변화를 지켜볼 때, 앞으론 ‘몸’ 관련 활동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불필요한 노동이 아니라, 오히려 돈이 많이 드는 고급스러운 취미활동으로 변화해나갈 것이다. 각종 스포츠웨어 브랜드가 트렌디한 마라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 가장 값싼 취미활동이었던 달리기를 멋진 런닝복과 런닝화를 구매해야 하는, 그야말로 자본화된 취미활동으로 새롭게 포지셔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올해 한국 사회를 기다리는 대형 스포츠 행사들은 이런 변화를 더욱 앞당기는데 기여할 것이다. 당장 2월에 열릴 소치동계올림픽과 6월의 브라질월드컵, 9월의 인천아시안게임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몸’ 사용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구상할 것이다.

블루칼라 직종에 뛰어드는 고학력 브라운칼라

몸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 변하면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도 기대해볼 수 있다. 가령, 몸 쓰는 직업인 ‘블루칼라(blue color)’ 직업군이 재조명 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미 미국에선 2010년부터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블루칼라’ 직종에 뛰어드는 ‘브라운칼라(brown color)’ 직업군이 확대되고 있다.

육체노동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생업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브라운칼라 직업군이 다양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취업난의 시대에 시달리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인생의 이모작을 꿈꾸는 노년층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무기력한 일상을 스스로 박차고 나와 건강한 노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소비자들은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행복의 근원을 묻고 있다.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그들이 던진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몸이 답이다”.

1223호 (201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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