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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 켄지 소니코리아 사장 - “엑스페리아는 소비자의 선택의 폭 넗혀” 

한·일 민간 교류 깊이 얕아져 … 스시·온천·쇼핑하고 일본 다 봤다는 식 

김태진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 tjkim@joongang.co.kr

사카이 켄지 소니코리아 사장이 엑스페리아 Z3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 사진:전민규 기자



“한국의 소비재 시장은 점점 갈라파고스(세계 추세와 달리 혼자 동떨어진 것) 현상이 심화된다. 자동차에선 현대·기아차 점유율이 70%를 넘고 휴대폰도 삼성·LG가 거의 대부분 이다. 전 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는 현상이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은 소니 같은 외국 업체에 호재다.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불법 보조금 차단과 소비자 이익 증대를 목표로 한 단통법이 10월 1일부로 시행됐다. 시행에 앞서 지 난 9월 30일 서울 여의도 소니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사카이켄지(坂井賢司·59) 사장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외산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소니의 엑스페리아 Z 판매도 조금씩 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소니코리아는 단통법에 맞춰 기능을 보강한 엑스페리아 Z3를 9 월 29일부터 판매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2012년 4월∼2013년 3월) 매출 1조2732억 원에 영업이익 145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역시 소폭 성장이 예상된다. 이런 호실적은 시장에서 압도적인 인기 제품이 뒷받침한다. 국내 미러리스 카메라 1위를 비롯, 이어폰·헤드폰·오디오(주변기기) 시장에서 4년 연속 1위다. 방송용 카메라 시장은 10년 넘게 부동의 1위다.

사카이사장은 최근 두드러진 엔저 현상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상당수가 달러로 결재해 엔저 효과는 크지 않다”며 “본사도 여러 사업에 대해 구조조정 중이라 아직까지 엔저를 바탕으로 마케팅 예산을 늘려 잡는 공격 경영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소피아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일본제강에 입사, 독일 뒤셀도르프 주재원을 지내다 1982년 소니에 합류했다. 이후 주로 해외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하면서 독일·러시아 등에서 주재원으로 일했다. 필리핀·타이완 지사장을 끝내고 소니 일본 본사에서 글로벌 영업·마케팅 부본부장을 맡다 2012년 8월 한국에 부임했다. 그는 언어 능력이 탁월하다.

15년 넘는 해외 근무로 영어뿐 아니라 독일어· 중국어까지 4 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한국어 학습에 대해선 “이제 나이도 있고 외국어 관심이 줄어 생활 회화만 할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렌즈 일체형 카메라 시장 1위인 소니 RX100Ⅲ(위쪽 ). 5년째 국내 시장에서 1위인 소니의 헤드폰 MDR.
올해 스마트폰 시장에 재진출 했는데.

“한국은 휴대폰 판매 장려금이라든지 판매 네트워크(대리점) 의 수많은 요구 사항 등 진입장벽이 높아 재진출 결정이 쉽지 않았다. 올해 1월 엑스페리아 Z1 출시를 시작으로 5월 기능을 보강한 Z2까지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했다. 소니 특유의 디지털 이미징 기술과 업계 최고수준의 방수·방진 기능이 주효했다. 여기에 오디오·영상 파일 재생에 편리성을 더한 NFC 기능이 젊은 소비자에게 호응을 얻었다. 신형 Z3의 2000만 화소는 삼성전자 스마트폰보다 뛰어나다. 소니의 역할은 한국 소비자에게 삼성·LG 이외에 다양한 선택을 제공하는 데 있다.”



올해 9월 일본 본사는 상장 이래 처음으로 무배당을 선언했는데.

“소니 에릭슨 지분을 인수하면서 반영된 자산 가치를 중장기 전망을 조정하면서 장부에 반영한 것이다. 현금 흐름이나 운용에 영향은 거의 없다. 이익에 초점을 맞추면서 제품 포트폴리오와 중국 시장에서 고가스마트폰 재고를 정리했다고 보면 된다. 배가 나와 건강이 나빠지면 살을 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래의 손실을 줄이고 조직을 재정비한 발전된 방향이다.”



소니는 1995년 4대 CEO인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이 취임하면서 영화·음악·게임 같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했다. 그러면서 기존 사업이 부진에 빠졌다. LCD패널 투자 시기를 놓치고 워크맨은 애플 아이팟에 밀렸다. 이후 TV와 스마트폰, PC 등 주력 사업이 줄줄이 나빠졌다. 공통점은 이데이 사장부터 지금 6대 사장까지 모두 문과 출신에 관리통이다.



소니의 지배구조 문제가 자주 지적된다.

“창업자라는 강한 지도자가 사라진 후에 승계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소니는 전문 경영인을 CEO 후계자로 선정한다. 이데이 사장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그의 공적을 간과해선 안된다. 현재 이익이 많이 나는 엔터테인먼트로 방향을 잡았고, TV·비디오와 같은 전통적인 가전에서 PC를 선보이며 디지털 시대로 이끌었다. 하워드 스트링거 사장은 할리우드 비즈니스에 밝았다.”



본사와 달리 소니코리아 실적은 호조인데.

“지난해만큼의 큰 성장을 자신할 수는 없지만 현재 미러리스 카메라나 하이엔드 카메라 같은 디지털 이미징 비즈니스와 고급 오디오와 이어폰·헤드폰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다. 특히 렌즈 일체형 카메라(콤팩트 카메라)에선 단연 ‘RX 100Ⅲ’가 돋보인다. 이 제품은 나 같은 일반인이 별다른 조작 없이 사진을 찍어도 렌즈를 교환하는 DSLR 카메라에 못지않은 작품을 얻을 수 있다(그는 사진이 취미로 늘 카메라를 휴대한다. 인터뷰 도중에 틈나는 대로 찍은 한옥마을과 신라호텔 위의 구름 사진 등을 보여줬다). 스마트폰도 점차 좋은 반응을 얻어 PC 사업을 대체할 성과를 올리고 있다. 방송용 카메라 시장은 이미 10 년 넘게 90% 이상 점유율로 압도적이다.”



삼성과 디스플레이 합작이 깨진 뒤 협력 관계는 어떤가.

“삼성뿐 아니라 많은 한국 기업과 협력하는 공생 관계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게 전자업계다. 삼성과 당장 조인트벤처 가능성은 보이지 않지만 반도체 등 여러 분야에서 협업을 하고 있다. 합작이 깨진 뒤 본사에서는 ‘신뢰’라는 부분에서 예전보다 거리가 멀어진 것은 사실이다.”



33년 소니 생활에서 얻은 경험은.

“가장 큰 가치는 좋은 상사와 동료였다. 창업자인 모리타·이부카와 함께 일을 했고 이데이 회장은 내 보스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입사 당시 소니는 일본 대기업 가운데 글로벌 진출의 선두였다. 동양인으로 구미·유럽뿐 아니라 동남아에 진출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런 경험이 유전자로 남아 있다. 바로 이(異) 문화에 대한 갈등 해결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조직 문화다. 이런 것들은 압축 성장한 한국 기업에 참고가 될 만하다. 내가 체험한 소니는 단순히 제품 스펙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한국 소비자는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고가 제품이라도 먼저 쓰고 평가를 하고 싶은 얼리 어댑터 기질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제품에 대한 안목이나 문제점도 대단히 잘 짚어낸다. 한국에서 성공하면 세계에서 성공하는 제품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다. 단, 대단히 조급하다. 애프터서비스 같은 경우에는 오늘 신청해 당장 오라고 한다. 내일이나 2,3일 후에 가능하다고 하면 참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제품을 바꿔 버린다. 해외에서 극히 드문 경우다.”



요즘 한·일 관계가 꼬여 있는데.

“얼마 전 일본에 다녀 왔는데 엔저 효과로 한국 관광객이 비행기에 꽉 찼다. 올해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급증할 거다. 2,3년 전 엔고 때는 명동에 일본인이 넘쳐났다. 문제는 한·일 민간 교류의 깊이가 점점 없이 얕아진다는 데 있다. 한국인은 도쿄나 오사카에서 쇼핑하고 회전 스시를 먹고, 규슈 온천을 다녀오고 는 일본을 다 본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그저 그렇다’고 평가 한다. 일본의 역사와 깊이는 보지 못한다. 일본인도 마찬가지 다. 명동·경복궁을 보고 김치와 삼계탕·빈대떡을 먹고 한국은 별 게 없다는 식의 얕은 이해를 한다. 예전에는 양국이 깊이 있는 교류가 꽤 있었다. 이런 점이 아쉽다.”



요즘 정치뿐 아니라 한국 경제계도 일본은 없다는 식의 ‘재팬 패싱 (Japan-Passing. 일본에 관심이 낮아 그냥 지나치는 현실)’이다.

“일본도 비슷한 분위기다. 지금 문제는 양국이 서로를 알려 하지 않는 것이다. 한때 한국의 경쟁 상대였던 타이완만 해도 일본 경제를 탄탄하게 받치고 있는 부품소재 중소기업을 포함해 일본 산업의 경쟁력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다. 서로 긴 안목을 갖고 서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끝없는 소니의 몰락 왜?

비전+기술의 DNA 사라져

일본 전자업체를 대표했던 소니의 몰락이 심상치 않다. 소니는 지난 9월 17일 일본 도쿄 본사에서 2014년 회계연도(2014년 3월∼2015년 3월) 실적 예상치를 발표했다. 연초 500억엔 적자에서 2300억엔(약 2조1900억 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아울러 1958년 도쿄 증시에 상장 한 이래 처음으로 무배당 결정을 내렸다. 주력 상품인 스마트폰이 중국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연간 손실 1800억엔을 기록한 것이 원인이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이후 공격적인 엔저 정책으로 수출 중심의 자동차와 전자업체들이 사상 최대치 실적에 근접 한 것과는 정반대다.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소니의 몰락’이라는 제목을 커다랗게 뽑았다. 이어 소니의 무배당에 비판을 쏟아냈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는 소니의 신용 등급을 현재 투자적격 최저등급(BBB-) 에서 투자부적격(정크) 등급으로 강등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2012년 4월 신임 사장에 오른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며 스마트폰 등 전자 부문 강화를 회생 전략으로 제시했다. 2013년에는 스마트폰 매출을 전년 동기 대비 55% 증가한 1조1918억 엔으로 늘리면서 부활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올해 삼성전자·애플 에 이어 고가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3위를 차지하겠다는 목표까지 내걸었다. 고객 확보를 위해 음악·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강화 한 프리미엄 스마트폰 엑스페리아 신제품을 비롯, 가격을 2만 5000 엔(약 23만 원) 수준으로 낮춘 초저가 상품까지 출시했다.

그러나 고가 시장에서는 삼성과 애플에, 저가에서는 중국의 레노버·샤오미 등에 밀리면서 소니의 예상은 빗나갔다. 지난 2분기 소니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후발주자인 샤오미에도 밀린 4.4%에 그쳤다. 결국 소니는 올해 스마트폰 판매 목표치를 5000만대에서 700만대 줄였다. 아울러 7000명의 스마트폰 부문 종업원 가운데 15% 정도인 1000명을 명예퇴직 형태로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소니의 창업 유전자는 비전과 기술의 결합이다. 시대를 앞선 혜안으 로 조직에 비전과 활기를 불어 넣었던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와 천재 기술자 이부카 마사루(井深大)의 공동 작품이다. 이들은 1980년 대 말까지 소니를 이끌면서 세계 최강 소니를 완성했다. 문제는 후임 CEO를 선정하는 지배구조다. 2000년대 이후 10년 넘은 소니의 부진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배구조의 문제’를 꼽고 있다. 강력한 오너 리더십을 바탕으로 하는 삼성전자나 비전과 리더십을 중심으로 차기 CEO를 뽑는 애플에 비해 소니는 자신만의 지배구조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코하마국립대 조두섭(경영) 교수는 “소니는 1995년 취임한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사장 때부터 차기 CEO에 대한 선정 절차와 검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예상대로 후임 CEO들이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이런 지배구조가 소니의 최대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소니와 비슷한 창업 역사지만 특유의 지배구조를 갖춰 막강한 경쟁력으로 무장한 혼다자동차와 비교된다.

혼다의 창업은 기술 개발과 관리라는 두 분야를 나눠 책임진 ‘콤비’ 경영이다. 혼다도 소니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 창업 일가가 퇴진하면서 대주주 지분은 희석됐다. 오너 경영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미국 기업과 비슷하게 전임 사장이 후임을 길러내고 이사회에서 이를 승인하는 방식이다.

혼다는 ‘기술만이 경쟁력’이라는 창업 유전자 아래 지금까지 7대 사 장까지 모두 연구소 출신이 맡았다. 대신 부사장이 재무와 인사 등을 챙기는 혼다 만의 지배구조를 확보해 치열한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전직 소니 임원의 말을 인용해 “소니 경영진이 안이한 경영 판단을 연발했다”며 “당시의 위기만 넘기기 위해 중장기 비전 없이 판매 전망치만 높이는 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또 히라이 사장이 “중국 업체들이 약진해 판매가 부진했다”고 설명한 것에 대해서도 “중국 기업의 강세는 이미 예상됐던 상황에서 변명만 늘어놨다”고 비판했다. 창업 초기 소니 유전자를 만들었던 명확한 비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1256호 (201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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