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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은밀하게 위대하게’ 익명 SNS 뜬다 

검열·유출 불안감에 폐쇄형 서비스 늘어 정보의 품질 높아지는 효과도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 공간이 갖는 강점 중 하나는 바로 ‘익명성’이다. 온라인에선 마음만 먹으면 ‘아이디’란 장치 뒤에 숨어서 성별이나 나이 같은 개인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최근 온라인에서의 개인정보 검열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다시 한 번 익명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자주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의 ‘익명성’이 화두다.

SNS의 익명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건 ‘페쇄형 SNS’의 등장 때부터다. 폐쇄형 SNS는 글을 쓰거나 읽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서비스다. 캠프모바일의 ‘밴드’나 다음카카오의 ‘카카오 그룹’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런 폐쇄형 서비스에서 유통되는 정보조차 정부 기관의 검열을 피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아예 누가 어떤 아이디로 로그인 했는지 기록조차 남지 않는 ‘익명 SNS’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트위터도 공개·개방성에서 익명성으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대표 SNS인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두 서비스는 사실 익명성보다는 ‘공개’와 ‘개방성’을 무기로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두 서비스 모두 ‘익명성’을 강조하는 공간으로 변신 중이다. 페이스북에선 ‘대신 전해드립니다’란 익명 페이지가 약 420여 개 정도 운영되고 있다.

대학교의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에는 길가다 마주친 여자 학우에게 바치는 사랑 고백이 올라온다. 특정 동네의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에는 동네에서 발생한 사건사고가 중계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8월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부산 북구 덕천동의’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에선 실시간으로 침수 상황을 전해 피해를 줄이기도 했다.

트위터에서는 한 개의 아이디를 회원들이 공유하는 방식으로 익명 페이지를 운영한다. 트위터의 대표적인 익명 페이지는 ‘대나무숲’이다. 마치 아무도 없는 대나무숲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쏟아내란 뜻이다. 여기서도 처음엔 주로 대학교를 중심으로 대나무숲 페이지가 생겼다. 그러다 지금은 ‘출판사 옆 대나무숲,’ ‘시댁 옆 대나무숲’처럼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익명 게시판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의 토종 서비스도 인기다. 국내 익명 페이지는 주로 직장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블라인드’가 대표적이다. 블라인드는 회사 e메일 인증을 거쳐 재직 중인 직원만 가입할 수 있는 익명 SNS다. 사내 연애나 연봉 협상처럼 공개적으로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를 익명의 힘을 빌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인기다.

해외에서도 익명 SNS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미국의 익명형 SNS인 ‘시크릿’과 ‘위스퍼’는 설립된 지 1~2년이 되지 않은 신생 기업임에도 기업 가치는 각각 4000만 달러(약 420억 원), 2억 달러(약 2100억 원)에 달한다. 시크릿은 페이스북처럼 지인의 글이 실시간으로 내 뉴스피드에 올라오지만, 해당 글을 쓴 사람은 익명으로 노출된다. 아이디나 이름이 표시되지 않고 접속된 거주지의 도시나 주가 적힌다.

그렇다면 이처럼 ‘익명 SNS’가 가진 이점은 무엇일까. 우선 개인적 차원에서 정보를 생산했을 때 느끼는 불안감을 익명성에 기대 해소할 수 있다. 정부의 검열이니 하는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사실 온라인에 정보를 노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약간의 위험 부담이 있다. 그저 별생각 없이 내뱉은 이야기가 SNS의 파급력을 타고 퍼져 나가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내가 발화한 내용이 이슈가 되기라도 하면 수많은 사람이 거기에 댓글을 달며 회초리질을 한다. 익명성은 그런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한다. 아무리 이슈가 되더라도 누가 한 이야기인지 밝혀지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에 글을 올린 사람조차 자신의 글을 객관화할 수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면, 유통되는 정보의 질은 자연스럽게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 좀 더 솔직한 정보 등이 유통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몇몇 훼방꾼들이 익명을 활용해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기도 하지만 사용자들의 자체 필터링을 통해 충분히 정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하는 기능도

이런 장점을 좀 더 극적으로 해석하면, 익명성은 결국 정보를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사이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기능을 갖는다. 회사의 익명 SNS를 예를 들면 기업이 공개하지 않았던 개인별 임금 격차나 복지 서비스 등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 그동안 기업에 비해 정보가 적었던 구직자나 내부 직원들도 예전에 비해 더 많은 정보를 보유하게 된다.

익명 SNS가 활성화되는 현상이 기업들에게도 무조건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믿을 만한 정보가 유통돼 기업이 소비자를 더 잘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미국의 익명 SNS ‘위스퍼’는 익명성을 새로운 ‘소비자 조사 방법론’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다. 사람들이 오프라인 조사나 일반 설문조사에서 하지 않는 훨씬 솔직한 이야기를 익명의 공간에선 주저 없이 털어놓는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가령 ‘베스트바이(Best Buy)’란 단어가 어떤 지역에서 몇 번 언급됐는지, ‘쾌적하다’ ‘불친절하다’ 등 어떤 단어와 주로 함께 등장하는지를 파악하는 일종의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다.

항상 그렇듯 트렌드는 한쪽 방향의 특성이 강해지면 다른 쪽의 반발과 충돌해 정반합의 모양으로 발전해나간다. ‘개방성’을 중심으로 급격히 성장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다시 ‘페쇄성’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드러냄’과 ‘감춤’의 저울질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현대인의 욕망이 향후 어떻게 소통하게 될 것인지 주목할 만하다.

1258호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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