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의 쓰쓰미 공장에서 직원들이 프리우스를 조립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의 공장 해외 이전이 활발해지면서 일본은 엔저에도 뚜렷한 수출 증가 효과를 못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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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마침내 ‘1달러=110엔’ 시대에 진입했다. 최근 한 달 새 8엔 가까이 더 하락해 엔저 충격이 더해지고 있다. 경제학 입문서에는 이렇게 나온다. 엔저 시기에는 단기적으로 수입액(수입가격X수입량)이 조금 늘고 수출액(수출가격X수출량)은 하락해 무역수지가 악화한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격 경쟁력 변화에 따라 수출 물량 조정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무역수지가 개선된다. 이른바 ‘J커브 효과’다. 책에선 그렇지만 현실에서 이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2012년 초반 1달러=76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은 2013년 중반 100엔을 돌파했다. 그러나 수출량이 증가한 것은 극히 일부 기업뿐이었다. 수출산업의 양대 산맥인 자동차와 전기도 엔저를 이유로 수출 가격을 내리거나, 수출량을 늘리지는 않는다. 일본은행의 통계를 봐도 일본 전체 수출량은 큰 변화가 없다.일본자동차공업협회의 이케 후미히코 회장(혼다 회장)은 “리먼 쇼크 이후 1달러 당 80엔대가 장기간 지속됐기 때문에 단기간에 (엔저로) 돌아서리라는 생각은 못했다. 오히려 (엔저로) 돌아서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일단 2013년 엔저가 큰 폭으로 진행되면서 일본 자동차 제조사 7곳 (도요타·닛산·혼다·스즈키·마츠다·후지중공업·미쓰비시)은 영업이익이 1조8000억 원 증가하는 효과를 봤다. 그러나 엔화 가치가 급락해도 수출 대수는 늘지 않았다. 2013년 수출 대수는 467만대로 2012년보다 오히려 1만 2900만대 감소했다. 올해 들어와서도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수준이다. 약간의 이득이 있었지만 예전만큼 효과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자료: 동양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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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수출 물량 늘지 않아수출이 감소한 가장 큰 이유는 현지 생산의 확대다. 이케 회장은 “궁극의 환율 헤지는 현지에서 재료를 사들여 현지에서 제조하고, 현지에서 판매하는 것”이라며 “현금 흐름을 현지 통화로 꾸려나가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글로벌 시장 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일본 제조업체들은 앞다퉈 현지 생산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마츠모토 후미아키 닛산자동차 부사장은 “2000년 이후 일본 내 공장의 역할은 완성차의 수출 거점에서 노하우와 인재 훈련 방법의 수출 거점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1990년까지만 해도 닛산의 일본 내 생산비율은 약 80%를 차지했다.닛산은 2001년 이후 미국이나 중국·신흥국에서 생산을 급속히 확대했고, 일본에서의 생산은 축소했다. 이 때문에 2013 년 일본 생산비율은 20%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닛산은 엔저의 영향이 강해져도 이런 생산 방침을 바꾸지 않을 계획이다.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회사들도 엔저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소니 익스페리아 Z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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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스포츠 유틸리티차량(SUV) ‘로그’의 생산 기지를 규슈 공장에서 미국 스머나 공장으로 이전했고, 도치기 공장이 거의 전량 생산했던 해외용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도 신형 모델은 미국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앞으로도 신차는 중국이나 멕시코 공장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2013년 일본 제조사의 자동차 수출(467만대)은 2008년 672만대보다 30% 줄었다. 이와 달리 해외 생산은 1673만대다. 해 외에서 일정 수요가 있으면 현지 생산하는 ‘지산지소(地産地 消)’ 원칙이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의 공통된 전략이다. 환율 변동의 영향을 줄이려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더 나은 고용 환경,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점도 중요한 이유다. 게다가 일단 현지 생산을 결심하면 쉽게 철수하기 어렵다.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공장을 건설했고, 부품 제조사를 육성하는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엔저가 진행되면 여러 면에서 이점이 있지만 당장 돌아올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혼다는 그중에서도 수출의존도가 가장 낮은 회사다. 혼다의 2013년 수출은 12만 5478대로 도요타의 15분의 1, 닛산의 4분의 1 수준이다. 사실상 수출 제로 체제를 완성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1982년 일본 최초로 미국에서 자동차 현지 생산을 시작한 혼다는 예전부터 해외 생산에 적극적이었다. 그럼에도 2012년까지는 국내 생산 비중을 30% 선에서 유지해왔다. 그러 나 이제는 달라졌다. 굳이 일본에서 생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각오다.마츠다와 후지중공업은 수출이 증가세다. 두 회사 모두 기업 규모나 재무여력으로 볼 때 큰 회사들에 비해 해외 생산 여력이 떨어진다. 해외 수요가 증가하면 수출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의 수출 증가는 엔저보다 주력 차종의 인기몰이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 마츠다는 최근 디자인 강화, 엔진 성능 향상 등으로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후지중공업 역시 미국 중심의 해외 진출 전략이 맞아 떨어져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인기 행진이다. 두 회사는 수출 증가와 엔저라는 이점을 만끽하지만 중기적으로는 해외 생산을 확대해 환율 리스크를 줄일 방침이다. 과거 엔고 때마다 경영 위기를 경험했던 마츠다는 ‘환율 변동에 휘둘리지 않는 경영을 하겠다’며 2016년까지 해외 생산비율을 현재 약 20%에서 5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맏형’인 도요타 역시 ‘수요가 있는 곳에서 생산한다’는 원칙에 따라 현지 생산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13년 도요타의 해외 생산은 전년 대비 7.2% 증가한 556만대인데 반해 수출은 3.6% 감소한 185만대다. 엔저가 계속돼도 해외 생산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엔저 효과 못 본 도시바·소니·파나소닉
자료: 동양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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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을 비롯한 전자 업계도 엔저에 따른 수출 증가 영향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있다. 공조기기 부문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가정용 에어컨의 수출 대수는 1990년대 초반부터 급감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1990년대 상반기엔저 국면 당시 수출이 일시적으로 늘어나 수량 증가 효과를 봤다. 1992년 엔저 당시 약 180만대까지 늘어난 수출량은 1995년 엔고를 겪으면서 절반 이하인 76만대로 떨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율에 따른 이런 흐름이 적용됐지만 지금 이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제조사가 생산 기지의 대부분을 해외로 이전해왔기 때문이다. 다이킨공업은 업무용 공조기를 일부 수출하지만 가정용 에어컨은 해외 수출이 없다. 미쓰비시나 히타치는 업무용·가정용 에어컨 모두 수출하고 있지만 수량은 매우 적다. 다이킨공업은 최근 엔저 상황을 계기로 해외에서 생산해온 일부 가정용 에어컨을 일본 내 생산으로 돌리고 있다. 엔저가 이보다 더 진행되면 다른 공조기기 제조사도 일본 내 생산을 늘릴 지 모른다.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것 외에도 수출량에 큰 변화가 없는 이유는 또 있다. 기업들이 B2B(기업 대 기업) 판매 비중을 높이고 있는 점이다. 도시바가 그렇다. 도시바는 냉장고·TV 등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B2C 기업이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현재 주 수익원은 원자력 발전 등 사회 인프라와 낸드 플래시메모리 등 전자 부품이다. 두 가지 사업이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B2B 사업은 엔저로 수출이 유리해져도 수출량에 큰 변화가 없다. 전력 관계나 설비는 수주에서 납품까지 길면 5년 이상 걸린다. 엔저라고 해서 바로 수량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이 J커브효과가 제 기능을 못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낸드플래시메모리 역시 대표적인 시장 민감형 상품이다. 스마트폰 수요를 보면서 생산을 전망한다. 엔저라고 단기적으로 가격을 내리고 수량을 늘리는 발상을 못하는 이유다. 다나카 히사오 도시바 사장은 “엔저라고 볼륨을 잔뜩 부풀리면 시장(반도체 시황)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파나소닉과 소니도 마찬가지다. 두 회사 모두 2010년 전후 엔고 여파로 1990년대와 비슷한 생산 기지 해외 이전을 추진했다. 파나소닉은 태양전지의 주재료인 셀과 모듈을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왔지만 2011년 12월 말레이시아에 생산공장을 신설했다. 2012년부터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해외 생산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소니는 엔고였던 2009년 5월 국내 생산체제 재편을 발표했다. 아이치현에 있는 액정TV공장과 휴대전화 카메라모듈을 생산하는 오미가와 공장 등의 생산 종료를 선언했다. 해외 기업의 위탁 생산을 확대한 것도 한 이유다.
日 공작기계업은 엔저 단기 수혜디지털카메라 시장은 세계 점유율의 대부분을 일본 기업이 차지한다. 그러나 이 역시 엔저로 수출이 증가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애당초 디지털카메라는 일본에서 만들지 않는다.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는 구조가 단순해 해외 생산이 용이하다. 가격 인하를 위해 생산을 해외로 돌린 결과 대형 제조사인 니콘 등은 2005년부터 제품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일본을 경유하지 않기 때문에 엔저 혜택을 누리기 힘들다.만일 엔저가 정착한다면 생산기지를 국내로 돌릴까? 그럴 가능성도 낮다. 콤팩트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이미 작아졌기 때문이다. 2013년 일본의 디지털카메라 수출은 2008년 대비 60%나 줄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기능이 좋아지면서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이러한 환경변화로 각 제조사는 저가 카메라 사업을 축소하고 스마트폰과 차별화할 수 있는 고기능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고 있다. 시장이 작아졌는데 환율 이득 때문에 일본으로 유턴할 가능성은 작다.이와 달리 공작기계는 일본 내 생산비율이 높다. 기술 수준이 높아서다. 손끝의 감각이 뛰어난 장인을 확보할 수 있고, 정밀한 공급망을 구축하려면 일본 생산이 유리하다. 가장 대표적 예로 오쿠마는 해외 판매 대부분을 수출로 충당한다. 그만큼 엔저로 인한 이득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시장에서 엔저로 인해 경쟁환경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한 일본계 대형 공작기계 제조사 간부는 “엔고·원저 당시 한국 제조사가 차지했던 점유율을 지금 되찾는 중”이라고 말한다. 이 회사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공작기계의 달러 매매 가격을 낮추고 있다.이 회사의 올해 상반기 미국 수출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0% 신장했다. 최근 1~2년 동안 공작기계 수요에 큰 변화가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엔저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드물다. 공작기계 수출 전체를 보면 엔저가 급속하게 진행된 2013년 수출 대수는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다. 올 들어 급증하고 있지만 이는 엔저 영향이 아닌, 애플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 본체 가공 등에 사용되는 공작기계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력·가스 업계는 엔저에 울상각 사의 사업보고서와 동양경제의 청취 조사를 통해 개별 기업에 엔저가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수출 비중이 큰 기업은 예상대로 올해 실적이 나아질 전망이다. 자동차 업계 이외에는 히타치 제작소나 고마츠·무라타제작소 등 전기 기기 제조사와 종합 상사가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당연히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엔저가 부담스럽다. 전력이나 가스 업계가 대표적이다. 원유·LNG 수입 가격 상승의 영향을 받는다. 가격 조정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단기적인 타격은 불가피하다. 항공·운송 업계도 울상이다. 연료비 대부분을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이다. 단, 영향은 그리 크지 않으리란 예상이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