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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시장에 감도는 ‘역(逆)오일쇼크’ 공포 - 러시아·동남아·남미 외환위기설 ‘솔솔 

Global Monitor - 통화가치 급락에 디폴트 가능성 오일머니 빠져나갈 수도 

이공순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유가 하락은 소비자에게 일종의 세금 감면과도 같다. 에너지 비용을 덜어줘 다른 소비를 늘릴 수 있게 돕는다. 물론 이는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원유나 원자재를 수출해 먹고 사는 나라에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 만들어진다. 벌어놨던 돈을 까먹거나 내핍에 들어가야 한다. 국제적으로 보면 산유국의 부(富)가 비산유국으로 이전되는 재균형의 과정이다. 이론상 산유국보다는 비산유국이 월등히 많기에 큰 틀에서 유가 하락의 혜택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 최근 유가 하락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서 여기저기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유가 하락의 혜택이 퍼지기도 전에 ‘역(逆)오일쇼크’ 공포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먼저 당도한 것이다.

다급한 러시아, 금리 대폭 올렸지만…


현재 유가가 떨어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경기 부진으로 수요가 부진하다. 이와 달리 공급은 과잉이다. 고유가 시절 늘려놨던 설비와 미국산 셰일오일로 수급 불균형이 단기간 내 해소되긴 어렵다. 여기에다 강해지는 달러가 떨어지는 유가의 등을 밀고 있다. 현재 역오일쇼크의 직격탄을 맞은 나라는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이다. 유가 하락이 장기화하면 중동에서도 위기를 겪는 나라가 늘어날 거다. 유가는 다른 원자재 가격과 동행하기에 주요 원자재 수출국인 브라질·콜롬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도 충격을 받는다.

지난 12월16일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10.5%에서 17%로 대폭 인상했다. 하루 만에 루블화 가치가 10% 넘게 급락하자 환율 방어를 위해 취한 응급조치였다. 가트먼 레터의 편집장인 데니스 가트먼은 혀를 찼다. “단기적으로 루블화 가치를 떠받칠 수는 있으나, 나중에 후회할 결정”이라고 평했다. 가트먼은 루블 환율이 조만간 100루블까지 치솟을 것(루블가치 급락)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가 당장 디폴트에 빠지지는 않는다. 40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이 있고, 1998년 디폴트와 모라토리엄 당시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단기 부채비율은 줄었다. 다만 유가와 루블화 가치의 동반 하락이 장기간 지속되고 서구의 경제 제재가 이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러시아 경제는 점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것이다. 금리 인상이 루블화 급락세를 잠시 진정시킨다 하더라도 급증하는 금융 비용은 러시아 경제의 침체를 불러오게 마련이다.

베네수엘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12월 15일 현재 베네수엘라의 5년물 국채 CDS(신용디폴트스왑) 프리미엄 가격은 베네수엘라의 (5년 내) 부도 가능성이 93%에 달한다고 가리킨다. 외환보유액은 10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5년 내 만기 도래하는 부채의 40%만 충당할 수 있는 상태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11월 중국에 긴급히 도움을 청하는 등 여기저기 급전을 구하러 다니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과격한 재정 지출 감축에 내몰리고 있으며 내정은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다. 현 추세 대로라면 베네수엘라의 디폴트는 불가피해 보인다. 앞서 최근 미국 상원은 베네수엘라의 인권 탄압을 문제 삼아 전현직 관료의 자산 동결 등을 담은 제재안을 통과시켰다. 중남미 좌파모임인 볼리바르 동맹은 이를 미국 제국주의의 공격이라 규정하고 단결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외부 세계인 러시아와 중국·브라질 등이 얼마나 강력한 연대의식을 발휘할지 관심이지만 다들 제 앞가림 하기도 벅차다.

유가 급락으로 미국 셰일산업도 온전하진 못하다. 채산성 악화로 부도가 늘면서 정크본드 시장을 뒤흔들 가능성이 도사린다. 미국 셰일산업의 성장 이면에는 이들에게 싼 값에 밑돈을 댔던 레버리지론과 정크본드시장이 자리한다. 물론 연준이 만들어 놓은 풍족한 유동성 환경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미국 에너지 기업의 레버리지론 잔액은 지난 10월 말 현재 722억 달러로 미국 레버리지론 시장의 10%를 차지한다. 에너지 기업이 발행한 정크본드 잔액은 2250억 달러로 미국 정크본드 시장의 17%에 해당한다. 이들이 레버리지론과 정크본드로 조달한 자금 총액은 5년 전의 3배에 달하고 있다. 유가 하락의 장기화로 셰일오일 업체들이 하나 둘 쓰러지면 정크본드 시장 내 디폴트 우려도 본격화할 것이다. 이는 투기등급 기업 전반의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여파는 글로벌 정크본드 시장으로 옮겨 붙어 신흥국 회사채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불안심리는 비슷해 보이는 것들에 대한 투매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염효과 외에도 신흥국 회사채 시장을 괴롭히는 것은 강(强)달러와 결합된 원자재 가격 하락이다. 1차 충격은 신흥시장 원자재 수출국 회사채에 가해질 것이다. 나아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우려가 가시화되고 달러가 더 강해지면 신흥국 채권시장 전반이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 ABN암로에 따르면 내년(2015년)과 내후년(2016년) 아시아 기업들과 정부가 갚아야 할 외채는 각각 3900억 달러와 3550억 달러다. 2015년의 경우 대부분 2분기와 3분기에 만기가 집중한다. 하필이면 시장이 점치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과 맞물린다. 금융시장 내 불길한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기 좋다.

오일머니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셰일오일 증대와 글로벌 유가 하락은 산유국으로 유입되던 원유매각대금(오일머니)을 위축시켰다. 최근 BNP파리바 보고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산유국으로 순유입되던 달러는 2006년 5000억 달러를 넘어섰지만 작년에는 1000억 달러를 하회했다. 올해 연간으로는 순유입이 아닌 순유출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산유국이 벌어들이는 달러가 줄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씀씀이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중동과 남미 산유국을 상대로 제품을 팔던 기업, 이곳에서 인프라 수주 활동을 벌이던 건설사와 플랜트업계도 부침을 겪는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국제교역은 위축되게 마련이다.

셰일산업 채산성 악화로 정크본드 시장 흔들 가능성

오일머니는 그간 글로벌 유동성 공급원의 한 축을 맡아왔는데, 석유를 팔아 비축했던 산유국의 자금은 국부펀드 등의 형태로 세계 각지의 증시와 채권시장에 들어와 있다. 원유 판매를 통한 달러벌이는 여의치 않은데 외국산 제품 소비(달러 지출)를 조정 할 수 없다면 산유국들은 자산시장에 넣어놨던 돈이라도 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자산시장은 출렁임을 겪을 수 있다. 오일머니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달러 공급(양적완화)을 멈춘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을 통해 달러를 더 빨아들인다면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만으로 구멍난 글로벌 유동성을 다 메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는 본질적으로 달러 유동성 증대와는 무관하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역오일쇼크가 지난 1997년 신흥시장 위기와 같은 대참사로 발전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위기는 지역별·산업별로 차별화돼 나타날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는 염두에 둬야 한다. 역오일쇼크의 충격이 상쇄되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유가 하락이 주요 경제대국의 소매판매 회복, 즉 수요 회복을 이끈다는 증거가 잇따라 확보돼야 한다. 유가 하락의 선순환이 주요국 경기를 떠받치기 시작했다는 확신이 서면 금융시장의 놀란 가슴들도 호흡을 가다듬을 것이다.

- 국제경제 분석 전문 매체 Global Monitor 특약

1267호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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