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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배우는 저출산·고령화 시대 해법 - 고령화 늦추면서 사회 시스템 구조개혁 

노동자 교육 강화, 기술 개발, 제조업 자동화 확대 … 노인 노동자 위해 공장 리모델링도 

갈수록 아이 울음 소리는 줄고 노인은 늘고 있다. 10년 전쯤엔 선진국의 이야기였다. 독일·일본·프랑스에서 관련 대책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이젠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미 저출산·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오히려 다른 선진국보다 저출산·고령화 진행 속도가 훨씬 빠르다. 저출산·고령화를 억제할 대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어느 선까지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 사례를 살피는 이유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겪은 그들은 어떤 답을 찾아냈을까.

▎일러스트:중앙포토
한국은 2006년 본격적인 저출산·고령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9년 간 10조원을 투입해 출산을 장려했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출생아 수가 2006년 44만8200명에서 2013년 43만6500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15세부터 64세까지의 생산가능인 구도 빠르게 감소했다. 2025년이면 군 병력마저 12만명 부족해진다. 2060년엔 국민연금도 완전히 고갈할 전망이다. 사회 각층에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출산 장려 아이디어에 현상금이 걸리는가 하면 이민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연구보고서, 심지어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 제공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인구 감소라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문화 갈등 겪은 서유럽 반이민 기조 강해져


해법은 없을까? 먼저 저출산·고령화란 현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좋은 대안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이미 저출산 기조로 들어선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리긴 어렵다. 저출산·고령화에 접어든 선진국도 애를 먹고 있다. 적극적인 출산장려 정책을 펼친 일본·프랑스도 그리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민 정책을 도입한 국가도 있다. 하지만 문화적 갈등이 극심해지자 서유럽 국가들은 결국 반이민 정책을 도입하는 중이다. 독일은 달랐다. 노동생산성과 유연성을 끌어 올렸다. 노인 일자리도 적극 개발했다.

독일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국가다. 2013년 독일의 65세 이상 인구는 21.1%에 달한다. 2030년이 되면 독일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50세 이상이고, 인구 3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이 될 전망이다. 현재 독일의 합계출산율은 1.39명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다. 독일연방통계청은 8200만명에 달하는 독일 인구가 2060년에는 6500만~7000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다. 노동인구도 함께 감소한다. 현재 독일의 20~64세 인구는 약 5000만명이지만, 2030년엔 4400만명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젊은 고학력층의 이민도 고민이다. 미국·스웨덴 등지로 고급인력이 이민을 가면서 인력 유출 문제까지 겹쳤다.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는데도 독일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초고령 사회 진입 이후 독일의 경제 성장률은 2.1%로 다른 초고령 국가인 일본(1.1%)이나 이탈리아(1.7%)와는 다른 상황이다. 재정적자 규모도 개선됐고 국가부채 증가 속도도 느린 편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찾아온 독일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을까? 현대경제연구원 조호정 선임연구원은 “독일 정부의 선택은 발상의전환”이라며 “인구 감소를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은 독일 정부는 질적 성장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노동력 감소를 노동자 교육 강화,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 고령자 일자리 확보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이를 위해 고령화 진행 속도를 최대한 늦추면서 사회 시스템 구조조정에 나섰다.

2000년 초반 독일은 이민 정책을 포기 했다. 초청 노동자 제도를 만들어 외국 인력을 도입했다가 문화적 갈등이 극심해진 탓이다. 대신 독일 정부는 노동 여건 개선과 제조업 자동화 강화, 그리고 고급인력 이민 유도에 초점을 맞추고 정책을 진행했다. 2003년 독일 슈뢰더 정부는 ‘하르츠 법안’을 내놓으며 고용제도 개선을 위해 시간제를 도입해 고용 유연성을 높였다. 동시에 연금 수급 연령을 높여 고령자의 일자리 유지 기간을 높이는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 시간제 일자리는 2003년 778만개에서 2012년 1039만개로 늘었다. 고령자 고용률은 19.5%포인트, 여성 고용은 11.2%포인트 증가했다.

공식적인 노인 연령 기준도 매년 올리고 있다. 먼저 연금을 보자. 2007년엔 연금 수급 연령을 63세에서 65세로 높였고, 2023년엔 66세, 2029년엔 69세로 상향할 예정이다. 중장기적으로 75세까지 연금 수급 연령을 올린다. 미래 세대가 노년층의 복지를 맡아야 하는 사회적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선 노년을 위한 일자리 확보가 관건이다. 70세가 일할 직업이 있어야 연금 없이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강점은 제조업이다. 2000년대 초반 독일 정부는 ‘인더스트리 4.0’을 도입한다. 공장 자동화 공정에 정보통신(IT) 기술을 더해 더욱 효율적인 생산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통해 더 적은 숙련 기술자가 더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했다. 고령 기술자의 제조업 종사가 쉬워진 셈이다. 고급 인력에 해당하는 만큼 높은 임금도 보장된다. BMW의 사례를 보자. BMW는 독일 뮌헨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딘골핑 공장을 2011년 리모델링했다. 노년 근로자의 편의를 위해서다. 젊은 고급 기술자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자 기존 기술자들이 더 오래 일 할 수 있도록 회사가 나섰다. 자동화 시스템을 크게 늘리는 과정에서 회사는 직원 의견을 수용해 공장 조명을 바꾸고, 고급의자와 확대경을 설치했다. 노년 전문 의료진도 뒀다.

공장 자동화 공정에 IT 접목한 ‘인더스트리 4.0’


▎독일 뮌헨 인근의 BMW 딘골핑 공장에서 로봇팔이 자동차 틀을 만들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 제조기업 지멘스도 공장 자동화에 한창이다.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제조 라인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생산량을 높이고 있다. 일단 근로자들은 환영이다. 직장을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오래 다닐 수 있다. 정부도 좋다. 정책에 기업이 보조를 맞춰주며 효과를 보고 있어서다. 독일의 탄탄한 재교육 시스템도 힘을 더했다. 독일 근로자들은 직장 생활을 하며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이를 익히며 몸 값을 올릴 수 있다. 독일은 다양한 공인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며 장인 양성에 힘을 쏟아왔다. 전문 기술과 경험을 가진 장인은 하루 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기업이 앞장서서 고령 근로자의 채용기간을 늘리는 배경이다.

독일 정치권도 움직이며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었다. 여야가 나서 범정부 차원에서 인구 변화 대응을 정치적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2012년 4월 25일 독일 내각은 ‘모든 연령대가 중요하다(Jedes Alter zahlt)’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가족 유대감 강화’ ‘건강한 일자리 창출’ ‘노인 자립 지원’ 등의 세부 전략을 세웠다. 독일 교육부는 2014년 인구 ‘변화(change)’를 인구학적 ‘기회(chance)’로 인식시키는 대국민 캠페인에 주력했다. 노인에 대한 정의도 새로 제시했다. 노인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식과 경험을 지닌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식 변화를 통해 노인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고 있다. 요한나 반카 독일 교육부 장관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려 깊고 경험이 많은 인간이 가진 능력을 사회를 위해 활용해야 한다”며 “노인 인력 활용은 독일이 직면한 인구 감소시대에 사회의 질을 한 계단 올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민 정책을 살펴보자. 문화적 갈등으로 초청 노동자 제도를 폐기한 독일은 고급 인력 영입으로 방향을 돌렸다. 2012년 ‘고학력자 이민을 쉽게 하는 EU지침’를 시행했다. 2013년에는 전문가 특혜정책을 실시했다. 독일학술교류처(DAAD)에 따르면 지난 2013~2014 학기 기준으로 독일 내 외국인 유학생 숫자는 사상 최대인 30만명을 넘었다. 2012년 외국인 유학생 숫자는 28만2000명, 2003 전에는 24만6000명을 기록했다. 독일 대학생 10명 중 1명이 외국 학생이다. 전체 외국인 유학생 중 55%는 유럽 출신이고 30%가 아시아에서 왔다. 독일 문화를 이미 경험한 고급인력을 이민으로 받아들여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동시에 경제 성장에도 도움을 준다는 전략이다.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2015년을 맞아 정부는 새로운 저출산·고령화 정책을 내놨다. 먼저 이민 정책이 눈에 들어온다. 정부는 점수이민제 확대를 준비 중이다. 2008년 도입한 점수이민제는 전문직 취업비자와 유학, 취재, 구직 자격으로 고득점자에게 영주 자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정부는 박사학위 취업자, 과학·경영·교육·문화 등 특정 분야에 탁월한 해외 우수인재에 대해서는 최고등급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평가항목과 배점 등을 조정한다. 우수 인재들이 최고 등급을 받을 경우에는 바로 영주 자격을 부여할 방침이다. 외국인 노동자 정책도 손볼 예정이다. 외국 인력 부족 업종 중 성장 가능한 업종에 대해서는 필요 때 사업장별 한도를 기존 120%에서 140%로 확대하고 10년 이상 과도하게 외국 인력에 의존하는 사업장에 대해 향후 성장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사업주 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 등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지원하기 위한 지원도 늘린다. 정부는 ‘제3차(2016~2020) 저출산·고령화 사회 기본계획’을 진행한다. 결혼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입양 등 포용적 가족개념 확산, 양육과 보육 부담완화 등을 통한 출산율 제고, 노령화 시대에 맞춘 정년·연금제도 개편이 있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 확대 차원에서는 보육서비스가 취업모 등 실수요자에게 우선 제공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2015년 하반기에 시간 입소순위 조정등 보육지원체계 개편방안을 마련해 모델개발시범사업 실시 후 오는 2016년부터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강화도 이뤄진다. 우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의 기간을 현행 최대 1년에서 2년으로 확대하고 분할사용 횟수를 2회에서 3회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연구본부장은 “우리나라도 양성평등, 가족친화적 고용문화 등을 통해 출산율 회복이 가능할 수 있다”면서 “여기에 이민 정책도 문제 해결을 위한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민을 늘리고 여성 복지를 강화하지만 지난 10년 간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서 큰 변화가 없다. 수당과 세제 혜택을 준다고 낳지 않을 아이를 낳은 사람은 적다. 출산장려수당은 물론이고 보육지원조차 출산율을 높인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저출산 기조는 장기 구조적 침체와 비슷하다. 당장 저출산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시각에 사로잡혀 시간·비용을 낭비해선 안 된다. 노동의 질을 높이고 극빈층을 살피며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데 주목해야 한다.

초청 노동자 제도 폐기하고 고급 인력 영입

세계적인 기업이 나와도 좋은 일자리 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노동소득분배율은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이다. 이민을 늘려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용을 늘리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취업을 못해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한국 젊은이들의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도 낮은 현실이다. 출산장려금 지급은 일시적인 양적 정책이다. 국민연금 수령 규모와 시기, 정년퇴직기간 조정, 근로자 재교육 시스템 강화로 인적자원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 시급하다. 연금 제도를 개선해 젊은층의 부담을 줄이고, 임금제도를 다시 손봐야 한다. 노년과 청년 사이 갈등을 줄이며 정책을 도입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공장 자동화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해외에서 젊은 고학력의 외국인이 유입될 수 있도록 이민제도를 손봐야 한다. 우리보다 앞선 고령화 국가 독일은 인구정책의 기조를 저출산 ‘대응’에서 ‘적응’으로 전환했다. 요한나 반카 장관은 “재정 건전성과 고용 안정이 독일 인구 정책의 키워드”라며 “인구 감소 시대를 기회로 만들어야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1268호 (20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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