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 시장에서 달러화 힘 잃어아무튼,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지금껏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천문학적인 정부 부채에도 채권을 팔고 마음 내키는 대로 달러를 찍어 낼 수 있었던 힘이라면 힘도, 석유 덕이 크다. 1970년대부터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결제통화로 달러를 채택해준 덕에 지금껏 석유 결제 통화로서의 혜택을 누린 것이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석유 수입국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던 미국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을 것이다.그러나 똑같은 논리와 상황으로 이제 석유 시장에서 미국 달러는 점차 위상을 잃어 가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에너지 국영기업인 가즈프롬은 중국과 천연가스 공급에 합의하고 계약을 했다. 공급가격은 대략 4500억 달러(약 410조원)가 넘는 규모로 알려졌다. 특기할 점은 미국 달러로 거래하지 않기로 알려진 것이다.이미 유럽은 유로로, 영국은 파운드로 지불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경제적 지원을 묶어 위안화로 지불하기도 하고, 이란의 경우 심지어 물물거래 방식으로도 지불수단을 다양화 하고 있다. 달러 사용을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거래 수입국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경우, 노골적으로 매력적인 경제·군사 지원까지 해준다. 살림이 빠듯한 산유국으로선 중국이 싫든 좋든 놓쳐선 곤란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선 안 되는 VVIP 거래처가 된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명줄 틀어쥐고 있는 사람 얘기 잘 듣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본적인 생존 전략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석유만 수입한 게 아니라, 중국 위안화가 세계 결제통화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중국의 입김을 미국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온 것이다.또한 중국의 전체 석유 수입 물량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생산분은 20%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중국은 대부분의 석유를 러시아·이란·앙골라 등 친미 성향이 덜하거나 반미인 국가로부터 수입한다. 유가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중국의 위안화 결제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미국 달러는 더욱 급격히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달러가 더 이상 지금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나라도 석유 결제 대금으로 중국의 위안화를 쓸지도 모른다.미국과 달리 중국은 자금 사정도 넉넉한 편이다. 중국의 외환 보유액은 4조 달러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벌어들이는 돈도 상당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미래 성장을 신뢰하는 전 세계의 투자 자금이 중국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2015년 말 미국 정부의 총부채는 21조70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그중에 연방정부 부채가 18조6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민 1인당 부채가 약 5만6000달러에 이른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6000달러 수준임을 감안할 때, 미국인 전체가 1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하고 아무것도 안 먹고, 안 입고 숨만 쉬어도 나라 빚을 못 갚는 지경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경제상식으론 미국은 이미 도산상태(Bankruptcy)나 다름없다.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이니까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곳간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중국은 이미 실질적인 G1의 위치를 인정받고 있다. 적어도 조만간 더욱 가시화될 전망이다. 사실 중국이 지금처럼 경제적·군사적 강대국을 강력하게 표명하게 된 데는 미국의 자극이 상당히 도움이 됐다. 특히 석유 중심의 미국의 적대적인 에너지 수급과 가격 조절 전략은 중국에게 뼈 아픈 기억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은 2000년대 들어 해마다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가파르게 커가던 중국의 경제 대국화를 우려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성장을 멈추게 하긴 어렵겠지만 늦출 수는 있어야 한다며 경제 성장에 필수인 에너지 비용, 특히 석유 가격 조절에 들어갔다. 산유국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진 석유 가격 상승은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석유 공급 확대가 필수불가결했던 중국으로선 큰 부담이 됐다. 국민총생산(GNP) 1달러당 가장 높은 에너지 비용 부담국으로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중국은 2003년 GNP 1달러당 32센트의 에너지 비용 부담률을 기록했다. 당시 미국의 GNP 1달러당 에너지 비용 부담률은 18센트였다.
곳간 넉넉한 중국, 부채에 시달리는 미국
중국 주도의 AIIB 화려한 출범
박상기 -현대모비스·삼성SDI 등에서 해외 영업·마케팅을 수행하며 국제 비즈니스 협상을 경험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주요 기업의 해외 분쟁 해결 및 수출 확대 협상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 뉴욕주립대 협상학 겸임교수로 [영화는 협상처럼 협상은 영화처럼] [성공하려면 협상가가 되라]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