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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유통왕’ 야마다전기] 야마다 노보루(야마다전기 사장)의 5가지 실수 

실적 악화에 매장 50개 폐점 ... 과도한 저가 경쟁의 덫 


▎매출 3조엔을 향해 고공행진 중이던 일본 최대 가전 유통업체 야마다전기는 최근 실적 부진에 잇따라 매장을 닫고 있다.
‘빨리 사는 사람이 임자! 지금이 찬스! 전시 상품 한정 긴급 세일!’ 매장 안팎에 광고물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이바라키현 북부에 위치한 히타치나카시. 히타치 해변공원 근처에 있는 야마다전기 히타치나카점은 5100㎡의 면적을 자랑하는 대형 매장이다. 6월 27일 토요일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 매장을 방문하자, 매장 앞에는 160대 정도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손님은 계속 밀려들었다. 대부분은 부부나 자녀 동반 가족 고객이다.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폐점 세일 특가 상품’이다. 특히 백색 가전의 인기가 높았다. 전시 제품은 냉장고 10대, 세탁기 14대 밖에 남지 않았다.

매장 종업원은 “무게가 많이 나가는 상품은 다른 매장으로 옮기기도 힘들기 때문에 원가 이하로 가격을 낮춰서라도 처분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야마다는 2013년 여름 이곳에 매장을 열었다. 불과 2년도 되지 않아 폐점하는 것이다. 주변은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히 발전한 시내 최대 상업지구다. 대형 쇼핑몰이나 회원제 할인매장인 코스트코, 식품 수퍼 등 다수의 대형 소매점이 들어섰다. 가전 할인매장 중에서는 가장 먼저 케이즈홀딩스가 면적 8000㎡ 규모의 초대형점을 2011년 설립했다. 여기에 야마다가 승부수를 던졌으나 패배한 꼴이다.

야마다가 폐점 세일을 진행 중인 곳은 여기뿐만 아니다. 5월 중순부터 이런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인터넷에도 폐점 정보가 줄줄이 올라왔다. 곧이어 전국 신문에서 대량 폐점 소식이 크게 보도됐다. 5월 말 기준으로 폐점 매장은 46곳. 6월에 11개 매장을 추가 폐점했다. 이 중 단순 이전이나 새 단장을 위한 일시 휴업을 제외해도 약 50곳이 문을 닫았다. 전국 매장 729곳(야마다 본사와 규슈 운영 자회사)의 7%에 해당하는 수치다.

적자폭 커서 위약금 17억엔에도 폐점


▎이바라키현 JR선 미토역에 있는 ‘미토 사우스타워’ 3~7층까지 야마다전기의 가전 매장 ‘LABI 미토’가 있었지만 얼마 전 폐점했다. 남아 있는 임대 기간 때문에 야마다는 17억엔의 위약금을 물었다.
야마다는 가전 유통의 거인이다. 2001년 코지마를 누르고 업계 1위에 올라선 이후 무서운 기세로 일본 각지로 뻗어나갔다. 압도적인 매장 규모와 ‘염가’를 무기로 점유율을 빠르게 늘렸다. 2010년에는 매출 2조엔(약 19조원)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매출이 1조엔을 넘어선 가전 할인매장은 야마다가 유일하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가전 유통 업체가 야마다에 밀려 사라져갔다. 그러다 이번에는 야마다 자신의 대량 폐점을 맞이했다.

이번에 폐점한 매장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매장 면적 990㎡ 이하인 소형점이 많다. 야마다의 교외 매장은 대부분 3000㎡ 이상인 대형점이다. 그러나 2012~2013년 사이 야마다는 소형점을 100곳 이상 냈다. 대형점 확장이 한계를 나타내자 인구가 적은 지역에 소규모로 진출한 것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고객은 모이지 않았다. 또 하나의 특징은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에 폐점한 매장 중 70%는 2011년 이후 문을 열었다. 이에 대해 한 유통 전문가는 “어떤 소매점이든 목이 좋은 장소에 먼저 매장을 내기 때문에 신생 매장일수록 입지가 좋지 않다”며 “그나마 수요가 늘어나는 동안은 괜찮지만 시장 자체가 줄어들면 입지상 불리한 신규 매장은 곧바로 적자에 직면한다”고 말했다.

폐점이 가장 많은 곳은 이바라키 지역이다. 야마다와 케이즈는 1990년대부터 치열한 격전을 반복해온 숙적이다. 군마현을 주무대로 한 야마다와 도치기현의 코지마, 그리고 이바라키현의 케이즈 간 경쟁은 과거 ‘YKK전쟁’이라 불렸다. 야마다는 2001년에 이바라키에 처음 진출해 2015년까지 24곳의 매장을 열었다. ‘타도 케이즈’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 중 11곳이 폐점 대상이다. JR선 미토역에 인접한 대형 상업빌딩 ‘미토 사우스타워’는 케이즈 본사 근처에 있다. 야마다는 2008년 자사 대형 매장 ‘LABI’를 열었다. 오픈 당시 비가 왔음에도 개점 전부터 2000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 큰 기대를 모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방문자 수는 감소했다. 그런 가운데 연간 5억엔(약 47억원)의 임대료는 부담이 컸다. 5월 말 폐점할 때 임대 계약 기간이 3년 이상 남아있었기 때문에 야마다는 17억엔에 달하는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이 정도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폐점을 해야 할 만큼 적자폭이 컸다는 얘기다.

교외 매장인 쓰치우라점은 대형 쇼핑몰 ‘이온’에 모이는 고객을 노리고 인근에 매장을 냈으나 고작 1년 반 만에 문을 닫았다. 이온에서 만난 고객에게 물었더니 셋 중 둘은 폐점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자녀를 데리고 온 남성은 “같은 부지가 아니라 굳이 걸어서 가기 귀찮다”며 “오픈할 때 한번 가봤을 뿐”이라고 말했다. 굴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단골 전자제품 매장이 갑자기 문을 닫았다면 AS는 케이즈에 맡겨주세요’. 최근 케이즈는 이런 내용을 담은 전단지를 뿌렸다. 여기서 단골 매장이란 야마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이걸로 끝날 리가 없다’라고 단언했다. 2010년 50억엔 정도였던 야마다의 점포당 매출은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하락해 지난해 20억엔 초반으로 떨어졌다. ‘700개 정도의 매장이 있기 때문에 적자 매장이나 적자는 아니어도 경계선에 다다른 매장이 상당 수 있을 것이다. 매출이 더 하락한다면 추가 폐점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업계 관계자). 물론 수익 악화는 야마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케이즈·에디온 등 대부분의 가전 유통 업체가 침체에 빠졌다. 그렇다 쳐도 야마다의 추락 속도는 너무 빠르다. 2000년대 무서운 기세로 성장한 야마다지만 지금은 완전히 날개가 꺾인 분위기다. 리더인 야마다 노보루 사장은 어떤 실수를 한 것일까? 과거 발언과 2008년 집필한 자서전 <야마다전기의 초석>을 바탕으로 검증해보자.


①좋은 수익구조 흔든 판단 미스 = 철저한 저가 경영이 실현되었으며 이 때문에 싼 가격에 고객에게 판매해도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자서전). 야마다가 직면한 최대 문제점은 수익구조 악화다. 실적이 최고조였던 2010년 영업이익률은 6%를 넘어 가전 유통 업체 중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2.1%로 떨어졌다. 전성기 야마다는 대명사인 ‘염가’를 무기로 높은 수익률을 자랑했다. 야마다는 1986년 업계 최초로 POS(판매시점정보관리) 시스템을 전 매장에 도입하고, 1997년 자가물류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철저한 효율화를 추진했다. 이를 무기로 야마다는 전국에서 가격 경쟁에 들어갔다. ‘일본의 전화기는 전 세계 제품 중 가장 고성능이며 고장도 적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어디에서 사도 제품 자체는 안심할 수 있다는 얘기죠. 이런 환경 속에서 고객이 선택하는 기준은 가격입니다’(자서전).

타사보다 싼 가격으로 고객을 모으고, 매출이 늘면 스케일메리트(규모 확장에 따른 이익) 효과가 나타난다. 매입량이 증가하면, 매입가를 낮춰 더 싸게 판매할 수 있다. 그것이 모객으로 이어지면 나름의 선순환이 생겨나는 것이다. 매출에서 업계 2위와 2배 이상의 격차를 벌리며 ‘할인 판매의 왕’이 된 야마다의 압도적인 판매력에 제조사들은 리베이트 등 과한 요구도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강력했던 수익 기반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야마다가) 대도시 역세권 매장이나 소형점 등 경쟁 지역을 너무 확산시켰다’고 말한다.

야마다는 원래 교외형 매장을 통해 성장해왔다. ‘점포당 매장 면적 약 3000㎡, 연매출 40억엔, 종업원 1인당 연매출 1억엔’. 이것이 승리의 방정식이었다. 하지만 교외에 진출 여지가 없어지자 야마다는 대도시의 미개척 터미널이나 소도시 공략에 나섰다. ‘유니클로도 자사 매장끼리 경합하는 단점을 알면서도 매장을 연다. 밀도를 올려 점유율을 얻고, 이를 통해 역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2012년 [동양경제] 인터뷰). 일정 지역에 여러 개 매장을 집중시켜 지명도를 끌어올리고 물류 비용과 광고 비용을 절감해 효율을 높이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의도는 크게 빗나갔다. 새로 매장을 내도 점유율이 오르지 않아 가격이 실적을 압박했다. 종업원 1인당 매출이 감소하고, 그러면서 강점이었던 효율적인 경영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②사라진 효자 상품 = ‘야마다전기의 가전 시장 점유율은 20% 정도지만 컴퓨터는 40%나 된다. 즉 10명 중 4명은 야마다에서 컴퓨터 관련 제품을 사고 있다. 슬림형 대화면 TV도 그렇다. 야마다의 판매 점유율은 30% 이상이다’(자서전). 사실 야마다의 성장 이면에는 몇몇 효자 상품이 있었다. 대표적인 게 컴퓨터와 TV다. 야마다는 1990년대 간토 지방 북부(이바라키·도치기·군마 등 3개 현)를 무대로 코지마·카토전기(현 케이즈홀딩스)와 초저가 경쟁을 벌였으며, 이 때의 주류 상품은 컴퓨터와 TV였다. 고객 유치를 위해 ‘1엔 세일’을 열면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주의를 받기도 했다. 2000년 대규모소매점포법이 폐지되자 야마다는 3000㎡ 수준의 매장을 전국에 열었는데, 당시 대형 점포의 절반을 채운 게 바로 컴퓨터 관련 제품이었다.

야마다는 이렇게 자부한다. ‘윈도우 95라는 획기적인 상품 덕이지만 단기간에 컴퓨터가 널리 보급된 것은 대형 할인매장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자서전). 슬림형 TV도 발매 당시부터 선두에 나섰다. 지상파 디지털 방송으로의 전환과 에코포인트 제도(소비자가 탄소배출량이 적은 친환경 가전제품을 구입할 경우 정부 예산으로 구입 금액의 5%를 차후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로 환원해주는 제도로 2009년 5월부터 한시적으로 시행)와 같은 순풍으로 고객이 몰렸다. 절정기 야마다의 TV 매출은 야마다 전체 매출의 약 4분의 1을 담당하는 효자 중의 효자였다. 그러나 에코포인트 제도가 끝나고 디지털 방송으로의 전환기가 끝나자 TV 판매는 급락했다. 판매액은 2년 만에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③규모 확대의 덫 = ‘야마다가 점유율 50%를 점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40~50%가 될 정도면 고객도 질린다. 하지만 매출 3조엔, 점유율 30%까지는 가능하다’(2007년 [동양경제] 인터뷰). 야마다는 항상 ‘매출 3조엔’을 목표로 내걸었다. 어째서 규모에 집착하는 것일까? 가격 경쟁력과 직결되는데다, 스케일메리트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야마다 사장은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이었다. 2012년 규슈 기반의 베스트전기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매출 1위였던 베스트전기는 야마다의 공세로 위기를 맞았다. 2007년에는 빅카메라와 자본 제휴를 맺고 재건을 도모했으나 돌연 야마다전기로 돌아섰다. 최초로 매출 2조엔을 돌파한 2010년에는 중국 선양에 진출했다. 3년간 5곳, 매출 1000억엔을 목표로 다음해 텐진, 2012년엔 난진에 매장을 열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야마다의 톱니바퀴는 엉켜가기 시작한다. 2013년 1분기 영업이익이 2002년 이후 처음 적자를 기록한 것은 중국 사업의 손실 때문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텐진과 난진 매장은 문을 닫았다.

④실패로 돌아간 다각화 = ‘주택이나 전기자동차·태양광·축전지·가전까지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궁극의 가전 비즈니스’(2011년 에스바이엘 인수 발표 당시). 야마다가 에스바이엘(현 야마다 에스바이엘홈) 인수를 발표했을 때 주택 업계는 무서움에 벌벌 떨었다. 주택 판매는 지역 밀착 비즈니스다. 단독주택 판매 분야에서 단연 톱인 세키스이 하우스도 일본 내 점유율은 6% 미만이다. 전국 브랜드가 잘 통하지 않는 시장인데다 인구수만 명 이하 도시를 대형 메이커가 공략하려면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 이런 가운데 야마다가 전국에 퍼져있는 점포망과 마케팅 인프라를 활용해 주택 판매에 뛰어든다고 하니 업계 관계자들은 ‘시장은 송두리째 빼앗기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게 당연했다. 더구나 당시 에스바이엘은 세키스이 하우스에서 상무를 지낸 아라카와 토시하루가 사장을 맡았다. 아라카와 사장은 ‘주택 영업의 귀신’으로 불리던 사람이다. 실제로 그가 맡은 후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인수 이후 에스바이엘의 실적은 다시 적자로 전락했다. 아라카와 사장이 해임되고 후임에 야마다전기 부사장이었던 마쓰다 요시노리가 취임했다. 사명도 야마다 에스바이엘홈으로 변경했다. 적자는 해결되지 않았다. 저가 노선을 취했다가 고급 주택으로 갔다가 전략 없이 오락가락하는 통에 지금도 답을 못 찾고 있다.

⑤탄탄하지 않은 경영권 = 야마다전기는 지난 5월 소프트뱅크와의 자본제휴를 발표했다. 주식의 5%를 소프트뱅크에 매각해 약 227조엔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사장과 야마다 사장은 예전부터 절친 관계였지만 어째서 이 타이밍에 자본제휴를 맺은 것일까? 야마다는 스마트하우스 사업 강화 등을 이유로 들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에피시모에 대한 방어책’이라고 이야기한다. 에피시모는 ‘말하는 주주(상장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명하는 주주)’로 화제를 모은 구 무라카미 펀드 출신이 설립한 투자펀드다. 돌연 지난해 10월 야마다의 대주주로 등장해 올 1월까지 약 13%의 지분을 사들였다. 경영권 방어에 위기감을 느낀 야마다도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2월에 자산관리회사 명의와 합쳐 약 9%까지 비율을 끌어올렸다. 이번 소프트뱅크 출자를 합치면 에피시모의 지분을 웃돈다. 예전부터 야마다전기는 경영권 공략 타깃이 되기 쉬운 환경에 있었다. 야마다 사장은 오너이면서도 지분율이 너무 낮았다. 야마다전기는 1980년대부터 다수의 매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비용 조달 문제로 큰 벽에 부딪혔다. 이때 은행의 신용을 얻지 못해 시장에 기댄 것이다. 계속 주식 매각과 전환사채 발행으로 버텼다. 사업도 안 되는 마당에, 경영권까지 흔들리는 분위기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 번역=김다혜

1300호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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