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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화폐제도의 치명적 결함] 환율 조절로 ‘너 죽고 나 살자’ 반복 

각국의 양적완화로 ‘환율 전쟁’ 치열 ... 화폐 가치·원자재값도 널뛰기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사진:중앙포토
‘1929년 뉴욕 증시의 폭락을 기폭제로 대공황이 발생했다. 미국과 영국, 유럽, 일본 등 금본위제 국가에서는 물가가 폭락했다. ‘모든 것’에 대한 화폐(金)의 상대가격은 폭등했다. 이 거대한 충격에도 당시 중국 경제는 약간의 호황을 누렸다. 중국은 금이 아닌 은(銀)에 화폐가치를 고정하는 은본위제 국가였기 때문이다. 대공황 당시 은의 가격은 다른 ‘모든 것’과 함께 폭락했다. 금에 대한 은의 환율이 폭락했다는 뜻이자, 금본위제 국가 통화에 대한 중국 화폐의 대대적인 평가절하, 경쟁력 우위를 의미했다. 그러나 중국의 호황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31년 영국과 인도, 일본 등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본위제에서 경쟁적으로 이탈했다. 화폐가치 평가절하다. 이어 1933년에는 미국마저 금본위제를 폐기했다. 이들 국가에 대한 중국의 통화가치는 급격히 절상됐다. 기존의 평가절하 이익은 소멸됐다.

미국의 은 구매로 중국이 공산화?

이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에 결정타를 먹였다. 1933년 미국 정부는 은의 시장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대대적인 은 구매사업을 벌였다. 미국 서부 은 생산지역의 민원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미국 정부가 은 가격을 끌어 올림에 따라 중국 화폐의 가치는 더 높아졌다. 경제가 불황에 빠져 들었다. 결국 중국도 1934년 들어 은본위제를 포기했다. 은본위제에서 이탈한 중국에서 화폐 증발이 본격화됐다.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자 중국 정부의 전쟁비용이 급증했다. 화폐가 더 많이 발행되면서 인플레이션에 불이 붙었다. 세계대전이 길어져 인플레이션이 더욱 팽창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공산당과의 내전까지 치러야 했다.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다. 공산당이 중국 본토를 차지했다.’

이상은 화폐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밀튼 프리드먼 교수가 지난 20세기 초를 기술한 내용이다. 프리드먼은 1933년 미국의 은(銀) 구매 정책이 결국 중국의 초인플레이션과 공산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당시 미국의 은 구매 정책은 일종의 양적완화(QE)였다. 다른 나라 화폐가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그 폐해가 현대에 들어서는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0년 가을 미국의 2차 양적완화가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미국의 돈 풀기 정책이 재개되자 달러화가 급락했다. 여타 나라들로 유동성이 밀물처럼 몰려 들어갔고, 통화가치는 급등했다. 당시 브라질의 귀도 만테가 재무장관은 “환율전쟁”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달러화 급락세는 원유를 비롯한 각종 원자재 가격을 끌어 올렸다. 물가가 뛰기 시작하자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 인상에 나섰다. 막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심화됐다. 유럽중앙은행은 황급히 금리를 내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유로존의 취약 국가들은 급격한 침체에 빠져 들었다.

지난 2013년에는 정반대의 충격이 세계에 가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3차 양적완화를 종료할 뜻을 밝히자 세계의 달러화 유동성이 급격히 수축했다. 신흥국 금융 시장과 경제가 큰 충격을 받았다. 유사한 사례는 1980년대에도 있었다. 미국이 달러 추락을 막기 위해 폭력적으로 금리를 인상하자 남미 국가들이 연쇄 도산했다. 1994년 긴축 때에는 멕시코가 무너졌다. 1995년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은 아시아 외환위기와 러시아의 국가부도로 이어졌다.

미국도 이런 폐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 5월 유럽중앙은행이 유로화 평가절하를 노골적으로 선언했다. 이와 달리 미국은 3차 양적완화를 종료해 가고 있었고, 곧 이어 금리 인상 채비를 할 태세였다. 세계 양대 통화의 가치가 정반대 방향을 향하게 됐다. 유로화가 급락하고 달러화가 뛰어 올랐다. 초과 공급 문제가 부상하고 있던 원유 시장에 그 폭탄이 떨어졌다. 달러 급등세가 유가 폭락을 촉발했다. 국가 운영을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산유국들로서는 원유를 더 많이 팔아야만 했다. 초과 공급은 심화됐고 유가는 더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유가 폭락으로 디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되자 유럽중앙은행은 양적완화를 도입했다. 유로화 약세 정책에 가속도가 붙자 달러는 더 강해지고 유가는 더욱 더 추락했다. 미국의 셰일오일산업에 큰 충격이 가해졌다. 경제 회복의 한 축을 담당했던 원유산업이 냉각되면서 미국의 성장률이 뚝 떨어졌다. 달러화 강세로 수입이 늘고 수출이 위축되면서 미국 경제는 이중으로 압박을 받았다.

불똥은 중국으로도 튀었다. 최근 수년간 중국은 위안화 가치가 달러보다 더 강해지도록 유도해왔다. 위안화를 달러·유로·파운드 같은 국제 결제통화 지위에 올려놓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런 와중에 유럽중앙은행이 야기한 달러화 평가절상은 중국에 큰 충격을 가했다. 미국보다 더 강한 절상 압력을 받은 중국의 경제는 최근 들어 두드러지게 둔화되고 있다.

이 모든 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 최근 원자재 가격이 동시에 폭락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으로서는 돈을 더 풀어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 몰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유럽중앙은행에 “양적완화를 연장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로존 금융 시장에서는 유럽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예상했던 것보다 1년가량 더 길어질 것으로 전망하기 시작했다.

지난 수년간의 경험은 현대 화폐제도의 결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유럽의 완화정책은 달러화 강세와 원자재 가격 하락을 야기해 역설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심화 시킨다. 금융위기 직전의 사례는 정반대였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응해 2007년 여름까지 계속된 유럽중앙은행의 긴축정책은 달러화를 추락시키고 원자재를 더 치솟게 했다.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차입자들의 실질소득(채무상환능력)을 축소시켜 금융위기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앞서 지난 2000년대 초 미국의 공격적인 저금리 정책과 달러화 약세 전략은 원자재 가격의 대대적인 상승을 촉발한 배경이 됐다. 그중에서도 금값의 앙등이 두드러졌다. 2002년 초 280달러정도 하던 금이 금융위기 직전 1000달러에 육박했다. 금융 위기로 천문학적인 달러가 풀려 나오자 2011년 8월 들어서는 1800달러를 넘어서기까지 했다. 무분별하게 풀려나는 달러를 대체할 가장 믿을 만한 화폐라고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였다. 그러나 금값이 660%나 뛰어 올랐던 약 10년 동안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27% 밖에 상승하지 않았다. 금 투자자들이 우려했던 달러화 가치의 상실,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다. 경제는 오히려 반복되는 디플레이션 압력에 노출돼 있다. 정작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금에서 발생해 있었다.

미국 의회에서는 최근까지도 금본위제로 돌아가야 한다는주장이 일부 유력 정치인들에 의해 반복해서 제기돼왔다. 그러나 금 역시도 주택이나 주식과 마찬가지로 거품에 쉽게 빠져드는 자산일 뿐임을 우리는 최근 목격하고 있다. 금본위제가 정말로 건전한 화폐를 유지하는 장치였다면 지난 1920년대의 자산시장 거품과 1930년대의 대공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조이고, 유럽연합은 풀고

인류는 계속해서 새로운 화폐제도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미국은 곧, 11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 인상 사이클에 돌입할 예정이다.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는 내년 가을까지 계속될 계획이나, 그 전에 종료될 수도 있고 오히려 훨씬 더 길어질 수도 있다. 금리 인상 개시 이후의 미국 통화정책이 어떤 기조로 전개될 것인지도 매우 불확실하다. 그나마 좀 분명한 것은 화폐의 가치, 모든 것의 가격이 전에 없이 큰 변동성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큰 결함을 가진 화폐제도 속에서 주요국들이 화폐가치를 과거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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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호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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