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나눔 홍보보다 나눔 통계 제공을 

 

권혁일 해피빈재단 이사장

기업의 사회공헌을 놓고 끊이지 않는 논쟁이 있다. 기업은 이익금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의견과 기업의 궁극적인 사회공헌은 고용이므로 기업에 재투자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 충돌한다. 이 논쟁의 답은 세계적인 마케팅 전문가인 필립 코틀러가 2006년에 펴낸 책 [착한 기업이 성공한다]에 자세히 나와 있다. 선진국에선 이미 기업의 적극적인 사회 환원이 자선의 의미를 넘어 생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기업마다 전략적으로 기업에 맞는 나눔 방향을 찾고 있다.

선진국에선 답을 찾은 주제가, 한국에서는 끊임없이 논란으로 부각되는 이유는 뭘까. 사회공헌 사업에 투입된 기업의 자금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서다. 혹자는 한국이 중국보다 더 사회주의 정서를 지닌 자본주의 국가라고 얘기한다. 그만큼 국민의 정서에는 부(富)의 축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숨겨져 있다. 개인은 물론 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그것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결국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은 나눔의 진정성보다 의무에 따른 기부 활동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내 나눔 실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세청에 신고한 전체 기부액은 12조4900억원이다. 이 중 법인의 기부금은 약 37%(4조6500억원)를 차지한다. 기부 내역을 살펴보면 종교헌금, 정치적 후원금, 기업의 사내복지기금 출연금 등 허수가 많다. 이 수치를 모두 믿을 수는 없지만 규모로 따지면 국내총생산(GDP)의 0.87%를 차지한다. GDP 대비 기부총액은 기부 선진국인 미국(2%)과 비교해도 적은 수치가 아니다. 문제는 이 돈이 구체적으로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쓰였는지 등 사용처는 해당 분야의 특정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며칠 전 한 기업에서 지난해 나눔 활동을 정리한 ‘사회공헌백서’를 본 적이 있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책자엔 사회공헌 사례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사회공헌 성과를 책자로 만들어 담당자끼리 공유하는 것 말고는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게 모든 기업의 고민일 것이다. 기업이 묵묵히 사회공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사회가 이를 인정해준다면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

기업이 부풀린 나눔 홍보보다 사실에 기반한 나눔 통계를 제공하면 어떨까. 정부에서 운영하는 사회공헌 관련 통계 인프라가 있고, 그곳을 통해서 모든 비정부기구(NGO)의 활동이나 자금 집행 내역을 볼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2000년 초만 해도 이 일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당시엔 국내 유명 NGO일지라도 연간 기부금 수익이나 지출에 대한 통계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미인가 복지시설의 인가 전환, 연말정산시스템의 기부금 연동 등 기부산업에 대한 인프라가 개선됐다. 이런 노력으로 기부금의 수치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투명성 이슈가 대두됐다. 이제 통합적인 인프라만 갖춰진다면 모든 NGO에서 이런 흐름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본다. 이런 인프라에 기반해 기업이 실질적인 사회공헌을 고민하면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그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응원한다면 기부 선진국인 미국보다 더 생동감있는 공익의 시장이 열릴 수 있다.

- 권혁일 해피빈재단 이사장

1306호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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