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단통법 시행 1년 그 후] 단지 통신사를 위한 법? 

시행 1년 만에 개정·폐지 논란 거세 ... 일부 성과 있지만 대대적 개선 필요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안)이 시행 1년 만에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중간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시장은 망가지고 소비자 부담만 늘었다는 목소리와, 비정상적이고 불투명한 이동통신 시장을 정상으로 돌리는 과정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다수 소비자와 휴대전화 제조사, 이동통신 대리·판매점은 대체로 전자, 정부와 이동통신 3사는 후자 쪽이다. 이통사 ‘희(喜)’, 소비자 ‘노(怒)’, 제조사 ‘애(哀)’, 정부 ‘락(樂)’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단통법 1년을 돌아보고 성과와 한계, 남은 과제를 취재했다. 무책임하게 만든 법이 시장을 어떻게 혼란에 빠뜨리고 ‘정부 실패’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듯하다.

▎사진:중앙포토
100만원짜리 신형 스마트폰을 누구는 공짜로, 어떤 이는 70만원에 샀다. 사람들은 후자를 ‘호갱님(호구+고객님)’이라 부른다. 같은 날 같은 대리점에서, 같은 대리점에서도 시간대 별로, 같은 시간에도 어떤 고객인가에 따라 판매 가격은 달랐다. 모든 정보를 공급·판매자가 움켜쥐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느 밤, 온라인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기습 가격 인하 소식이라도 전해지면 해당 대리점이나 판매점 앞에는 새벽부터 긴 줄이 생겼다. 이들은 최신형 스마트폰을 싸게 구입했고, 이 줄에 서지 못한 이들은 ‘호갱’이 됐다.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사는 한 해 대략 10조원이나 되는 돈을 ‘마케팅비’ ‘판매 장려금’이라는 이름으로 뿌렸다. 정부가 정한 ‘보조금 상한선 27만원’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었다. 특히 이통 3사는 영업정지를 당하건, 과징금을 물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다 정부 단속에 걸려 한 곳이 영업정지를 당하면, 다른 두 곳은 ‘이때다’ 하고 더 많은 불법 보조금을 뿌렸다. 그러다 또 다른 곳이 영업을 못하면, 다른 두 곳이 복수를 했다. 이 과정에서 이통사 소속 대리점이나 3사 판매를 대행하는 판매점은 백병전을 대신했고, 그 댓가로 큰 돈을 만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한 해 수조원이 뿌려져도 이통사 점유율 비율은 늘 ‘5:3:2’였다. 통신 당국 관료들은 사실상 시장을 방치했다. 그 사이 한국 소비자들은 공짜 단말기에 길들어졌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소비자들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비싸게 스마트폰을 사고,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통신요금을 내야 했다. 이통사를 조기 퇴직한 후 10년 가까이 서울에서 대리점을 운영했던 한 사장은 “덕분에 돈이야 많이 벌었지만 분명 비정상적 시장이었다”고 말했다.

단통법은 이런 비정상적인 시장을 바꾸겠다는 명분과 취지로 탄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2013년 초부터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초안을 만들었다. 그 해 5월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급행 처리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법을 대신 발의한 ‘청부입법’이었다. 법률안 초안의 강도는 예상보다 강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와 삼성전자·LG전자·팬택 등이 시장에 뿌리는 보조금이 얼마인지 각각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통사의 보조금 규모와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은 물론 출고가격까지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한 보조금 상한선을 법으로도 정했고, 이를 어기면 처벌과 제재가 강화됐다. 법안의 목적은 분명했다. 불법 보조금을 막아 소비자 차별을 방지하고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가계 통신비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공약하고 국회의원 99%가 찬성

논란은 거셌다. 이통사·제조사별로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이 갈렸다. 대리·판매점들은 집단 반발했고, 소비자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미래부 차관이 “단통법으로 가구당 연 50만~60만원의 통신비 절약 효과가 있다”고 나섰지만, 갑론을박은 계속됐다. 지난해 2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스마트폰 가격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몇 배씩 차이가 나고 스마트폰을 사려고 추운 새벽에 수백미터 줄까지 서는 일이 계속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국민이 적정한 가격에 질 좋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를 기준으로 제도 보완을 지속해 주기를 바란다.”

정부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부처간 이견이 대립하면서 단통법은 누더기가 됐다. 관가와 재계 안팎에서는 이통사·제조사 로비설이 파다했다. 실제로 지난해 2월 이경재 당시 방통위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제조 업체의 로비가 있어서 그런지 진행이 잘 안 된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국회는 무능으로 일관했다. 국정원 도청사건과 세월호 참사 등으로 정쟁과 파행을 일삼던 국회는 약 5000만명의 이동통신 가입자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이 법안에 무관심했다. 결국 지난해 4월 30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여론에 떠밀려 수북이 쌓였던 법안 132건을 일괄타결한다. 단통법도 그 안에 껴있었고, 같은 해 5월 2일 국회를 통과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재석의원 215명 중 단 2명이 기권하고 나머지는 찬성했다. 더욱이 본지가 단통법 관련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회의록을 모두 살펴본 결과, 이 법안에 대한 심도있는 논이나 문제 제기는 없었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엉성하게 만들어진 단통법은 지난해 10월 1일부터 시행됐다.

불신으로 얼룩진 이동통신 시장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정부 말대로 통신비는 인하되고, 단말기 가격은 싸졌나? 불법 보조금과 리베이트는 사라지고, 투명한 시장이 되었나? 윤종록 전 차관의 말대로 가계는 50만~60만원의 통신비를 절약했나? 비정상적인 시장은 정상화되고, 단통법의 궁극적 목적인 ‘이용자 편익은 증진’ 되었나?

단통법은 복잡한 이통시장 구조만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법이다. 그만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평가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온라인과 SNS 여론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일부 이해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여론 형성에 참여해온 정황도 있다. 실제로 경기도 구리시에서 판매점을 운영하는 모 사장은 “단통법 기사에 댓글 다는 게 일상이 됐고, 내부 커뮤니티에서도 댓글 관리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단통법 시행 초반에는 우리를 폰팔이(대리점이나 판매점을 비하하는 은어)로 칭하며 단통법을 찬성하는 댓글을 다는 세력이 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고 말했다. 정부 눈치를 보던 이동통신사와 제조사들도 본격적으로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단통법 시행 전후 다른 애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단통법에 찬성했던 LG전자가 지난 7월 정부에 지원금 상한제 폐지를 건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99% 찬성률로 통과시킨 국회도 잇따라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고 있지만, 뒷북 법안이라는 지적이 많다.

단순하지만 명료하게 볼 필요가 있다. 통신시장은 깨끗해졌고,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비 부담은 완화됐는가를 기준으로 채점을 해보자는 것이다. 단통법은 성공적인가? 그렇게 보는 곳은 정부와 이통사뿐인 듯 하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그동안 여러 차례 설명·해명자료를 통해 ‘분명한 성과와 효과가 있다’고 강변했다. 미래부·방통위 관계자들의 평가를 종합하면 이렇다. “시장은 투명해지고, 이용자 차별이 해소됐다. 고가 요금제 가입이 줄고, 중저가 단말기 구입 등 합리적 소비가 정착되고 있다. 제조사는 단말기 가격을 인하하고 있고, 이동통신사들은 데이터 요금제 등으로 가격 인하 경쟁에 나섰다. 또한 과거 보조금을 받지 못하거나 적게 받았던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와 기기 변경 고객들도 동일한 보조금 지원을 받는다. 단말기 지원금을 받지 않는 고객은 요금 할인제도로 혜택을 볼 수 있다. 이동통신 시장이 정상화되고 있다.”

일부 성과 부풀리는 정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과 일부 통계는 정부 말이 맞다. 공급자와 소비자간 비대칭 정보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과거와 달리 전국 어디든 같은 기종은 사실상 균일 정찰제에 가깝게 팔리는 것도 사실이다. 가입요금이 내려갔고, 저가 요금제 가입자와 중저가폰 구매 고객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불필요한 부가서비스 가입 요구도 거의 사라졌다.

문제는 ‘정찰제는 정찰제인데, 비싸진 정찰제’라고 느끼는 소비자가 많다는 데 있다. ‘단통법 시행 전에는 일부만 호갱이었는데, 이제는 전국민이 호갱이 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방통위 측은 “일부 개선할 점이 있고, 정부도 개선 방안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면서도 “단통법은 단말기 유통체계의 정상화를 위한 것이지 단순히 통신비 인하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 단말기 유통체계 정상화는 무엇이 목적인가? 이통사의 이익을 말하는 것일까? 단통법 제안 이유는 이렇게 명시돼 있다. ‘이 법은 과도하고 불투명한 보조금 지급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단말기 유통구조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이용자의 편익을 증진하고자 하는 것임.’ 투명하고 합리적인 단말기 유통구조는 수단이고, 이용자 편익이 목적이다. 이용자 편익은 무엇을 말하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정부 기대와 달리, 단통법 직후 감소 추세던 가계통신비는 올 2분기 들어 다시 늘었다. 통신장비 구입 비용은 단통법 이전보다 훨씬 증가했다. 혜택이 줄자 번호이동은 큰 폭으로 줄었고, 대신 기기변경으로 돌아서는 소비자가 급증했다. 신규 가입도 대폭 감소했다. 이통사는 마케팅 비용이 줄면서 이익이 늘었고, 가입자당 평균수익(ARPU)도 증가했다. 고가폰 시장은 침체했고, 휴대전화 판매량도 감소했다. 3000곳이 넘는 영세 판매점이 문을 닫거나 중고폰 판매업자로 전환했다. 단통법 시행 이후, 위법 행위로 SK텔레콤이 10월 1일부터 7일 간 첫 영업정지를 당했지만, 과거와 같은 대란은 없었다. 이를 두고 정부는 단통법 효과라고 하지만, 한 대형 대리점 관계자는 “정부가 역대 최고 수준의 단속을 벌인 영향”이라며 “단통법 이전에 그렇게 열심히 단속했다면, 이런 법도 필요 없었지 않았겠느냐”고 비꼬았다. 시장이 깨끗해 진 것도 아니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단통법 시행 후 9개월간 이통 3사는 2조271억원의 리베이트를 뿌렸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지급한 리베이트도 8018억원에 달했다. 일부 판매점은 페이백 형식으로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증언도 속속 나오고 있다.

단통법의 취지와 일부 성과에도 이 법안이 성공적이라고 볼 여지는 적다. 이 법 어딘가에 문제가 있거나, 처음부터 통신비 인하에 한계가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시행된 지 갓 1년 된 법안을 무조건 폐지하자는 주장도 무리지만, 그대로 두고 갈 법도 결코 아니다. 전면적인 재검토가 시급하다. ‘시장 실패’보다 ‘정부 실패’ 후유증이 더 큰 법이다.

- 김태윤 기자 kim.taeyun@joins.com

1306호 (2015.10.1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