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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 좁아진 세계 중앙은행] 현찰 사라지고 마이너스 금리가 대세? 

현재 금리 수준으론 경기 침체 대응 어려워... 새로운 정책수단 필요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9월 17일 워싱턴에서 연방공개시장회의(FOMC)의 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올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지만 일각에서는 긴축은커녕 ‘제4차 양적완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summary | “현찰화폐를 없애서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보편적으로 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영란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앤드루 홀데인의 도발적인 제안이다. 경기 침체로 통화정책을 더욱 완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질 수 있는데 금리를 더 내릴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 인상을 유보했다. 대신 연내에는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그러나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앤드루 홀데인은 매우 도발적인 연설을 했다. “영국의 경우는 앞으로 금리를 인상하기보다는 통화정책을 더 완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은 미국에 곧바로 이어 금리 인상을 시작할 나라로 손꼽혀왔다. 영국과 미국의 경제 사이클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영국이 그러하다면 사정은 미국도 비슷할 수 있다. 이미 금융시장에서는 미국이 긴축은커녕 ‘제4차 양적완화를 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번지고 있다. 정작 세상을 놀라게 한 발언은 다른 대목이었다. 홀데인 이코노미스트는 “현찰화폐를 없애서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보편적으로 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먼 미래의 일도 아니고 ‘중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세계 4대 준비통화(파운드)를 발행하는 기관의 조사연구 총책임자가 한 말이어서 예사롭지 않다. 그렇다면 역시 미국도 그 필요성이 절실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은행의 이주열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절하) 이슈에 대한 여당 의원의 질문에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고, 이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현재 한국은행이 공급한 돈(본원통화) 가운데 현찰로 유통되는 화폐의 비중이 61.4%에 달했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시장의 2017년 美 금리 예상치 1.22%에 불과


미국 FOMC는 석 달에 한번 꼴로 미래에 예상되는 정책금리 수준을 제시한다. 이번 회의에서 FOMC 위원들은 오는 2017년 말 연방기금금리 목표치가 2.63%로 인상돼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이 제시하는 금리 예상치는 매번 쉼 없이 낮춰져왔다. 경제환경이 기대했던 것만큼 강하게 회복되지 않고 있어서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낮춰져온 정책금리조차도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허황되게 높은 수준이다. 금리 파생 상품시장 가격에 반영된 오는 2017년 말 정책금리 예상치는 1.22%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미국의 경기 상승국면은 길어 봐야 10년이었다. 지금의 경기 확장기는 나이가 벌써 만 6년4개월이 됐다. 2017년 말쯤에는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돌아서 있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는 뜻이다. 만약 그 때 정말로 경기가 꺾인다면 미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얼마나 내려서 대응할 수 있을까?

FOMC 위원들의 전망대로라면 인하 여력은 2.5%포인트 수준이다. 금리파생시장의 예상대로라면 대응 버퍼가 1%포인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정책금리는 이론상 0% 한참 밑으로는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영란은행 분석에 따르면, 과거 침체국면에서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대략 3~5%포인트가량 인하해 경기를 떠받쳤다. 지금 예상하고 있는 완충능력 (1~2.5%포인트)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경기 침체가 더 빨리 오게 된다면 대응여력도 더 부족해진다. 과거에는 이런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금리가 지금에 비해 항상 제법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는 그런 고금리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지금 미국과 영국, 유로존, 일본, 스위스, 스웨덴 등 수많은 선진국들의 정책금리는 0% 수준이다.

금리를 0% 밑으로 인하하지 못하는, 그래서 중앙은행의 경기 침체 대응을 어렵게 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현찰화폐’라는 존재 때문이다. 현찰화폐는 0%의 확정금리를 제공하는 유가증권이다. 과거에는 0%의 금리가 일종의 불이익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급적 현찰보유를 줄이고 예금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선진국 단기 국채의 상당수가 이미 약간의 마이너스로 떨어져 있다. 중앙은행이 만약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한참 밑으로 더 인하한다면 대부분의 은행예금 이자율까지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은행에 돈을 넣어두기보다는 원금을 보장해 주는 현찰화폐를 보유하려고 할 것이다. 은행에는 돈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고, 금융중개 기능이 사라지면서 경제는 엉망이 되고 만다. 그래서 ‘0%(또는 미약한 수준의 마이너스)’는 현 제도 하에서 중앙은행이 내릴 수 있는 금리의 하한(zero lower bound)으로 여겨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게 된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라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을 사용했다. 중장기 국채를 직접 사들여 마치 금리를 마이너스로 인하한 것과 유사한 효과를 냈다. 그러나 이 정책에는 만만치 않은 부작용이 수반된다. 자산가격 거품이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다. 이미 자산가격이 대폭 올라 있어 더 띄울 여지가 제한적이다. 중앙은행이 사들일 수 있는 국채의 양이 한정돼 있다는 점은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한다. 더 큰 문제는 지금과 같은 초저금리가 장기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데 있다. 그렇다면 중앙은행들은 ‘제로금리 하한’에 반복해서 봉착하게 될 것이다. 시장금리의 하락 추세는 이미 금융위기 이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영란은행 분석에 따르면, 지난 1980년대 이후 금리 하락폭의 4할 가량은 잠재성장률의 저하와 노령화에서 비롯됐다. 나머지 6할 가량은 기계류 가격 하락 등에 따른 자본재 투자비용 감소와 빈부격차 심화 탓에 발생했다. 그러니 경기가 좀 나아진다고 해서 시장금리가 과거처럼 충분히 넉넉하게 높아질 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중앙은행들은 제로금리 하한의 구조적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뭔가 다른 창의적인 정책수단을 미리 개발해 두어야 한다. 영란은행의 앤드루 홀데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 대안으로 현찰화폐 폐지와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았다. 모든 돈을 전자화폐로 바꾸면 마이너스 한참 밑으로 정책금리를 내려도 돈이 은행을 빠져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금리 내리면 한국도 따라 내려야

일부 선진국들에서나 나타나는 특이 현상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마이너스 금리가 되면 상대적으로 이자율이 높은 나라로 선진국 자금이 대거 이동할 수 있다. 그러면 해당 국가의 통화가치는 급등하게 된다. 물가가 추락하고 수출이 어려워진다. 금리를 따라서 내리는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선진국과의 금리차가 대폭 좁혀진 곳은 마이너스 금리를 함께 운영해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책금리는 1.5%이다. 미국과는 1.25~1.5%포인트, 영국과는 1%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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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호 (20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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