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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다시 꿈틀대는 극우주의] 反이민 내세운 ‘그들만의 리그’ 

파리 테러와 쾰른 성폭력 사건 등의 후폭풍... 유럽 전역에서 기승 부릴 전망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1월 5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독일 쾰른 시민들. / 사진:중앙포토
유럽에서 극우주의라는 괴물이 꿈틀거리고 있다. 2016년 새해 전야 독일 쾰른에서 이민자들이 벌인 집단 성폭력 사건의 후폭풍이다. 애초 피해자가 90여 명 선으로 알려졌으나 수사가 계속되면서 1월 15일 현재 500여 명으로 늘었다. 급기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월 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연차 총회에 불참하기로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고무돼 프랑스 파리의 경찰서를 공격했던 인물이 독일 난민시설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반이민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지고 있다.

◇이민자들의 ‘나쁜 손’ = 독일과 더불어 이민자에 관대했던 또 하나의 나라 스웨덴. 2014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럽 최대 청소년 음악축제에서 아프가니스탄 출신 청소년들이 집단 성추행을 벌였지만 경찰이 쉬쉬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스웨덴 제3의 도시 말뫼에서도 새해 전야행사 도중 집단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이 “이민자들과 관련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스테판 뢰프벤 총리는 지난 1월 11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국민을 두 번 배신한 것”이라고 경찰을 정면으로 비난했다. 그러자 단 엘리아손 경찰청장이 전면 재수사 방침을 밝혔다. 2014년 총선에서 3당으로 뛰어오른 극우 스웨덴자유당은 “사민당 연립정권이 집단 성추행 사건 한 달 뒤 있었던 총선에서 반이민 정서를 자극하지 않으려 사건을 은폐한 것”이라며 “경찰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마비돼 진실을 숨겼다”고 포문을 열었다. 일부 이민자들의 그릇된 시각과 행동 때문에 유럽에서 극우주의가 서서히 깨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독일에선 극우단체들의 시위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페기다(서구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의 라이프치히 지부인 레기다는 1월 11일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강간범 난민들을 추방하라’고 요구했다. 전날엔 쾰른 중심가에서 파키스탄·시리아 이민자들이 20여 명의 독일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구타 당하는 폭력사건도 벌어졌다. 물론 독일의 양식있는 사람들은 범죄자와 일반 이민자를 동일시해선 곤란하다는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기는 한다. 독일 칼럼니스트 도리스 아크랍은 영국 진보성향의 일간지인 가디언에 ‘극우세력에 의해 확산되고 있는 증오와 공포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성범죄 피해자들을 진정으로 돕는 길’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드레스덴의 비극 속에 싹튼 극우민족주의 페기다 = 최근 유럽 극우주의 단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이 바로 페기다다. ‘이슬람화 반대’와 ‘애국적인’이라는 용어에서 보듯 이민반대를 주장하는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단체다. 2014년 10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탄생해 매주 집회를 열면서 이목을 끌었다. 이 단체가 결성돼 활동을 시작한 곳이 드레스덴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드레스덴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정부의 통일 의지와 구상을 담은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한 도시이지만 독일에서는 1945년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으로 더 유명한 도시다.

‘엘베강의 베네치아’로 불리던 이 아름다운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13~15일 네 차례에 걸친 연합군의 융단폭격으로 잿더미가 됐다. 영국 공군 중폭격기 722대와 미국 육군 항공대(미 공군은 1947년 창군) 중폭격기 527대가 드레스덴 전역에 3900t의 폭탄을 투하했다. 2차 대전 중 연합군의 단일 폭격작전으로 가장 규모가 컸다. 엄청난 양의 집중폭격으로 화염폭풍이 일면서 도심 전역이 폐허로 변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 민간인인 2만2700~2만500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소련군의 진격으로 독일 동부 등에서 수많은 피난민이 드레스덴에 몰려와 있었는데 이들의 희생이 컸던 것이다. 폭격 직후 나치는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선전했지만 시의 집계는 2만5000여 명이었으며 통독 직후에 이뤄진 재조사에서도 피해자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당시 연합군의 독일 폭격은 군수공장을 비롯한 주요 산업시설의 파괴와 함께 독일인의 사기를 꺾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연합군 측에서는 적의 군수공장과 인프라를 파괴하는 정당한 작전이라고 주장한다. 민간인 사망자는 전쟁으로 인한 부수적인 희생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독일의 극우주의자들은 드레스덴 폭격을 ‘폭탄에 의한 홀로코스트’라고 부르면서 ‘연합군의 독일인에 대한 인종학살’이라고 주장한다. 옛 동독의 공산정권은 이를 ‘앵글로-아메리칸 테러’라고 부르며 서방연합군을 비난했는데, 통일 뒤에는 극우파들이 같은 비난을 하고 있는 셈이다. 1964년 창당한 독일 극우 민족주의 정당 독일국가민주당(NPD) 대변인이 공개적으로 드레스덴 폭격을 ‘대량학살’ ‘폭탄에 의한 홀로코스트’라고 발언했다가 검찰에 기소됐다. 독일법은 유대인 학살을 부인하는 것을 범죄로 여기는데, 폭격을 유대인 대학살에 비유한 것은 불법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독일 국가민주당은 독일민족주의와 범게르만주의를 내세우며 역사적으로 게르만족이 살았던 옛 영토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르만족이 우월하다고 믿으면서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 논리를 편다. 반공산주의, 반자본주의, 반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유럽통합에도 반대한다. 이후 드레스덴은 극우파의 성지가 됐다. 폭격이 시작됐던 2월13일이면 매년 극우파의 시위와 반파시스트파의 맞불시위가 동시에 벌어진다. 독일국가민주당은 ‘테러 폭격, 다시는 안 된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반파시스트파는 ‘독일은 가해자이지 피해자가 아니다’ ‘(나치) 독일군에게 흘릴 눈물은 없다’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한다. 일부 급진주의 좌파들은 ‘해리스(당시 폭격을 주도한 영국공군 사령관), 다시 한번’ ‘해리스에게 감사의 인사를-붉은 좌파 급진주의자로부터’ 등의 극단적인 구호가 보이기도 한다. 오는 2월13일 드레스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려되는 이유다.


▎지난해 10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페기다 주최 반이슬람 집회에는 1만8000여 명이 참가했다. / 사진:중앙포토
◇항의시위대가 더 많은 극우단체의 시위 현장 = 드레스덴에서 생긴 페기다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독일에서 서로 정치적 입장과 종교가 다른 중동 이민자들끼리 서로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진 직후에 결성됐다. 2014년 10월 7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중동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반대하는 시위 직후 함께 참가했던 쿠르드족과 터키계 이민자들이 충돌하는 일이 발생했다. 같은 무슬림(이슬람 신자)인 이들은 IS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터키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비합법 정치세력인 쿠르드노동자당(PKK)에 무기를 선적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달라 충돌하기에 이른 것이다. 같은 달 독일 작센알할트주의 첼레라는 도시에서 중동 소수종교집단인 야지드인과 러시아 무슬림인 체첸인이 도심에서 폭력 충돌사태를 빚었다. 그러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페기다라는 이름으로 드레스덴 도심에 모여 산책을 하면서 이 사태에 항의하자는 사발통문이 돌았다. 페기다의 시작이다. 같은 해 12월19일엔 페기다가 드레스덴 비영리단체로 공식 등록됐다.

이후 독일 전역에서 앞 글자만 바꾼 유사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예를 들어 라이프치히에서는 레기다(LEGIDA), 카셀에서는 카기다(KAGIDA), 본에서는 보기다(BOGIDA), 프랑크푸르트에서는 프라기다(FRAGIDA) 같은 단체가 생겨 집회를 열고 있다. 모두 SNS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독일 밖으로도 퍼져나가고 있다. 2015년 1월에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페기다 동조자 200여 명이 모여 첫 행진을 벌였다. 스페인에서는 수도 마드리드의 모스크 앞에서 시위를 벌이겠다고 신고했지만 당국의 불허로 이뤄지지 않았다. 스위스와 벨기에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벨기에 앤트워프에서는 지난해 3월 시장의 허가 없이 시위가 벌어졌는데 시위 참가자 350여 명 중 227명이 무단시위 혐의로 과태료를 내야 했다.

반대시위도 만만치 않다. 2015년 1월 스웨덴 말뫼에서 열린 첫 페기다 동조시위에는 8명이 참석했는데 반대시위자가 5000명에 이르렀다. 그러자 린쾨핑에서 열린 집회에는 4명이, 업살라 집회에는 10명만 모였다. 이로써 스웨덴에서 페기다 운동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미국에서는 ‘자유, 관용, 법치’를 내세운 페기다 트위터 계정이 생겼지만 팔로워가 350명에 그쳤다. 영국에서는 2015년 2월 동북부 뉴캐슬어폰타인에서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영국 페기다 시위가 벌어졌다. 400여 명이 모여 ‘모스크를 폐쇄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소수정당인 존중당 소속 하원의원 조지 골웨이가 포함된 1000명이 넘는 반대 시위대에 둘러싸였다.

◇프랑스 제3당이 된 극우정당의 정상화 과정 = 프랑스에선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ront National: FN)이 정치권에 진입해 제 3당으로 군림하고 있다. 상당한 유권자의 지지를 받으며 의회와 지방의회에 활발하게 진출했다. 이들은 기존 정치체제에 편입됐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을 약간 순치해 합법적·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유럽 극우주의의 뼈대를 파악할 수 있다. FN은 보수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우면서 법과 질서 문제에서는 ‘제로톨레랑스(불관용)’를 외친다. 가장 중심적인 주장은 반(反)이민주의다. 이민을 받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 이민자를 배척한다. 또 유럽통합에 격렬하게 반대한다. 1993년 유럽연합(EU)이 결성되면서부터 반대운동을 해왔다. 경제적으로는 자유무역에 반대하고 보호주의를 강조한다.

FN은 1972년 프랑스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는 장마리 르펜에 의해 창당됐다. 1984년 이후 프랑스 정치에서 우파와 좌파에 이은 제3당의 위치를 확실하게 지키고 있다. 르펜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당의 중심 노릇을 했다. 지금은 그의 딸인 마린 르펜이 당 대표다. 일부에서는 FN의 정치 성향을 극우와 일반우파의 중간 정도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FN은 공식적으로는 좌우의 눈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봐주기를 원한다.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는 르펜이 1차 투표에서 좌파인 사회당 후보인 리오넬 조스팽을 누르고 2위로 결선투표에 올랐다. 결선투표에서 우파의 자크 시라크에 패배했다. 좌파들은 극우민족주의자인 르펜의 당선을 우려해 중도우파인 시라크에게 투표하자는 운동을 펼쳤을 정도였다. 유럽 정치에서 극우파가 가장 권좌에 가까이 다가갔던 순간이기도 하다.

르펜은 거침없는 언동으로 ‘공화국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마리 르펜은 아버지가 만든 악마의 인상을 지우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당에서 극우적인 문화를 뿌리 뽑는 작업을 벌이면서 일부 문제가 된 당원을 퇴출시켰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인 장마리 르펜도 2015년 당원자격을 정지한 데 이어 출당조치를 했다. 극우정당을 민주국가의 정상적인 정당으로 변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리 르펜은 홀로코스트도 공식 비난하면서 극우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FN은 2014년 유럽의회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25%의 지지율을 얻었다. 극우사상에 뿌리를 둔 유럽 정당 가운데 이런 지지를 얻은 것은 FN이 유일하다.

◇‘우리와 그들’ 편가르기에 약자 통합 거부까지 = 극우주의가 위험한 것은 평등주의를 내놓고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사고가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특정 민족에 대해 열등하다며 인간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고, 그런 민족이나 종교 집단(주로 무슬림)이 국가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한다. 극우주의는 이민에 반대할 뿐 아니라 국가나 사회의 통합에도 반대한다. 사회적인 약자들을 뒤떨어지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집단으로 여긴다. 인종, 민족, 출신지, 종교, 문화 등 사회·문화적인 다양성을 배척한다. 열등한 집단은 사회적으로 분리돼 별도 관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 보편의 자유·평등·민주를 배척하고 민족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경향도 있다.

이에 따라 사회적 계층이나 민족에 따른 우열을 당연시 여긴다. 우월한 민족이나 집단이 사회를 주도해야 하며 열등 민족으로 간주되는 집단은 정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나치즘의 경우 유대인, 집시, 슬라브인, 게이 등 열등하다고 간주한 민족이나 집단을 학살한 전례가 있다. 이는 종종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연결되기도 한다. 유럽에서 민족주의란 말을 꺼리는 이유다. 극우주의는 사회적 보수주의를 바탕으로 하며 자유주의나 사회주의를 적대시하고 이민자를 혐오한다. 파시즘, 네오파시즘으로 불리기도 하며 극단민족주의자, 광신적 애국주의, 외국인 혐오주의, 인종차별주의 등으로도 불린다.

극우파들은 주로 ‘우리와 그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사회적인 편가르기를 시도한다. 여기서 ‘그들’은 현직 정치인이나 관료 또는 그들을 지지하는 집단을 경멸적으로 가리킨다. 1980년 이후 유럽 사회에서 이민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하자 이들은 이 사안을 전면에 내세우게 됐다. 반이민이 극우의 대명사가 된 것을 최근의 일인 셈이다. 하지만 파리 테러와 쾰른 성폭력 사건의 여파로 반이민을 내세운 극우주의는 2016년 한 해 동안 유럽 전역에서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1319호 (201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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