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선을 추구하지 말고 악해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 속에서 파멸하기 쉽기 때문이다. 악덕을 행사하지 않으면 나라를 유지하기 힘든 경우에는 주저 없이 행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미덕처럼 보이는 것도 실행했을 때는 파멸로 이어질 수 있고 반면에 악덕처럼 보이더라도 안전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 15장
마키아벨리는 서양에서 정치학을 윤리학에서 분리시킨 최초의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냉혹하고 복잡한 현실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군주의 기본 임무이자 정치의 근본이라고 봤다. 일반인의 통상적 선악의 범주에서 벗어나 공동체 번영에 도움이 되는가 여부가 군주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면 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분명히 전제하지만 선함을 유지하려면 악함을 이해하고 때로는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고차원적 현실론을 전개했다.실제로 사회관계의 구조 속에서 악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악인은 악인이라기보다 차라리 바보에 가깝다. 진짜 악인은 선함을 가장하는 교활함이 기본 무기이다. 따라서 리더는 이런 악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악을 이해하고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마키아벨리 시대의 유럽에서 가톨릭 교회는 종교적 권위임과 동시에 세속 권력이었다. 교황은 세속군주로서 교황령을 통치했고, 추기경·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도 관할 교구의 정치·행정 지도자인 경우가 많았다. 마키아벨리는 신의 대리인으로 존중받는 교황조차도 피상적 선악 개념을 넘어서는 사례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1431~1503)는 매번 손쉽게 사람들을 속였다. 너무도 확고하게 서약하기 때문에 모두들 믿지만 실상 그는 약속을 거의 지키지 않았다. 군주는 모름지기 알렉산데르 6세처럼 해야 한다. 군주는 운명의 풍향과 변모하는 상황이 그를 제약할 때 거기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자신을 바꿀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군주론 18장)’는 대목이 대표적이다.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패왕 항우는 약체였던 건달 출신 유방에게 연전연승했다. 항우의 목표는 천하를 제패하는 것이었음에도 허울좋은 명예와 겉치레 평판에 사로잡혀 결정적 순간에 유방을 살려보냈고, 후일 패권을 넘겨주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한신은 항우를 ‘여자의 관대함과 필부의 용맹을 지닌 사람’으로 평했다.기업 경영에서도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해 종업원과 함께 번영하겠다는 기업가의 선한 의지는 좋은 기업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런 선한 의지만으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무한경쟁 속에서 기업 조직은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도전에 직면한다. 이런 현실에서 리더는 단기적인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고 번영시켜야 한다.조직의 성과는 리더 개인의 윤리와 도덕 차원이 아니라 조직의 생존과 발전으로 나타난다. 착한 사람과 착한 리더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착한 사람’과 ‘역량있는 리더’는 별개의 개념이다. 리더를 이른바 ‘피상적 선함과 악함’으로 단순하게 평가하기에 세상은 복잡다단하고 현실은 냉혹하다. 리더의 역할은 피상적 선악을 초월해 조직을 번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