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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공룡들의 가상현실 기업 사냥] 기술력 갖춘 스타트업이 M&A 타깃 

너도나도 “VR은 미래 먹거리” ... 스마트폰 등 주력 분야 성장 정체 영향도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VR 분야 신사업 강화에 사활을 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왼쪽)와 팀 쿡 애플 CEO.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차세대 먹거리인 가상현실(VR) 시장의 선점을 위해 해당 분야 기업들을 잇따라 인수, 세계 IT 시장의 격변을 예고했다. 가장 적극적인 기업 중 하나가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장을 석권한 페이스북이다. 5월 2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의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이날 투빅이어스(Two Big Ears)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투빅이어스는 2013년 설립됐다. 3차원(3D) 공간에서 실감나는 입체적인 음향을 제공하는 데 기술력을 집중시켰다. 페이스북은 이 회사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 VR 콘텐트를 더 실감나게 만들 계획이다.

페이스북, 영국을 VR 분야 전초기지로


페이스북은 영국을 VR 기술 개발의 전초기지로 삼아 공격적으로 VR 사업을 확장 중이다. 페이스북은 지난 2014년 20억 달러(약 2조4000억원)를 들여 미국의 VR 헤드셋 전문기업인 오큘러스(Oculus)를 인수, 자회사로 뒀다. 영국 텔레그라프에 따르면 최근 오큘러스는 런던에 VR 개발 전담팀을 꾸린 가운데, 개발 인력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오큘러스는 3월 고급형 VR 헤드셋 ‘오큘러스 리프트’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시장 반응을 살피고 있다. 앞서 페이스북은 지난해 영국의 VR 관련 스타트업 서리얼비전(Surreal Vision)을 인수하는 등 인수·합병(M&A)을 통한 VR 분야 노하우 흡수에 적극적이다.

실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VR을 그만큼 중요한 신사업 분야로 여기고 있다. 저커버그는 4월 페이스북 개발자 컨퍼런스 ‘F8’에서 “VR은 인공지능(AI)과 함께 페이스북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VR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완전히 새로 제시한다”면서 “지금은 VR 기기가 커서 착용감이 나쁘지만, 10년 후엔 안경처럼 편안하게 바뀔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와의 파트너십 구축도 그의 비전 안에 포함된 중요한 일이다. 올 2월 스페인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저커버그는 “삼성과 손잡고 세계 최고의 VR을 구현하겠다”며 자신감을 표했다.

VR에 대한 투자에 적극적인 IT 공룡으로 애플도 빼놓을 수 없다. 팀 쿡 애플 CEO는 1월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VR이 틈새시장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아주 쿨(Cool)한 시장이며 흥미로운 애플리케이션(앱)도 있다”고 할 만큼 VR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애플은 2013년 3D 모션센서 기술에 정통한 이스라엘 기업 프라임센스를 인수, VR 분야 투자에 본격 나섰다. 지난해는 VR의 한 분야인 증강현실(AR) 분야 스타트업 메타이오(Metaio)를 인수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가 됐다. AR은 눈에 보이는 실제 환경과 가상 환경을 합성한 정보를 실시간 제공하는 기술이다. 독일 기업인 메타이오는 2003년 폴크스바겐의 사내 벤처로 설립됐다가 나중에 독립했다. 자동차에 다양한 가상의 그래픽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갖춘 앱으로 주목받았다.

애플은 영화 [스타워즈:깨어난 포스] 제작에 참여한 스위스의 모션캡처 전문 스타트업 페이스시프트(Faceshift)도 지난해 메타이오에 이어 인수했다. 이 회사는 사람의 미세한 표정을 센서 등으로 포착해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게임과 함께 VR 기기의 최우선 콘텐트가 될 것으로 보이는 애니메이션을 잡겠다는 애플의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인수 사례다. 이후 올해 들어서는 미국의 스타트업 두 곳을 추가로 인수했다. 최대 10만 가지에 달하는 사람의 얼굴 표정을 인식·분석하는 특허를 보유한 이모션트(Emotient)와 AR 분야 스타트업인 플라이바이미디어(Flyby Media)다. 외신은 애플이 VR 분야에서 수백 명 규모의 연구팀을 비밀리에 조직해 운영 중인 것으로 분석했다.

구글 역시 VR에 대한 투자를 AI에 대한 투자 못지않게 매년 강화하고 있다. 2014년 영국의 AI 분야 스타트업 딥마인드(DeepMind)를 6억2500만 달러(약 7450억원)에 인수하면서 AI 신사업 강화에 나섰듯, VR에서도 과감한 투자로 각종 기술을 흡수하고 있다. 지난해 홀로그램 VR 관련 미국 스타트업인 매직리프(Magic Leap)에 5억4200만 달러(약 6420억원)를 투자한 게 대표적이다. 매직리프는 올 2월 중국 알리바바로부터 IT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7억9350억 달러(약 9430억원)를 투자받는 데도 성공할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구글은 1월에 VR 사업부를 신설하고 관련 인력을 대거 확충했는가 하면, 자회사인 유튜브를 통해 지난해부터 360도 동영상 기능을 선보이는 등 VR 관련 선행기술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데 힘쓰고 있다. 5월 열린 개발자 컨퍼런스에선 새 모바일 VR 플랫폼인 ‘데이드림’을 선보이기도 했다. 구글은 야심차게 준비했던 스마트글래스 ‘구글글래스’가 시장에서 사생활 침해 논란 등으로 쓴맛을 봤지만, VR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홀로렌즈’란 이름의 VR 헤드셋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6월 1일엔 VR 분야 강화를 위해 인텔·퀄컴·델 등의 미국 기업과 중국의 레노버 등 10개 이상의 기업과 제휴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기업에 홀로렌즈의 플랫폼을 제공해 호환이 가능한 단말기 개발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 일본 소니, 중국 화웨이와 샤오미 등도 VR에 대한 투자를 이전보다 늘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텔 등 10여 기업과 제휴

세계 VR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 글로벌 IT 공룡들이 품고 있거나 깊게 관여 중인 스마트폰의 성장성이 약화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디지털 전문 컨설팅업체인 디지캐피털은 세계 VR 시장 규모가 올해 50억 달러(약 6조원)에서 2020년 1500억 달러(약 180조원)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반해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은 9.8%로 역대 최저치였다. 스마트폰 성장률은 2011년 62.8%로 정점을 찍은 뒤로 2012년 46.5%, 2013년 40.7%, 2014년 27.6% 등으로 매년 하락하고 있다. 애플처럼 스마트폰을 만드는 기업은 물론이고 구글과 페이스북처럼 관련성 깊은 사업을 하는 기업들로서도 큰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가근 KB투자증권 연구원은 “IT 공룡들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 속에 VR 시장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1338호 (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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