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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뒤진 차세대 지능형교통시스템] 선진국 표준화 논의에 귀동냥 수준 

지능형교통시스템에선 선두주자였다가 위상 추락 … 정부의 미온적 대응과 대기업 규제 탓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우회전을 하는데 갑자기 횡단보도로 뛰어드는 보행자, 커브길 뒤 운전자가 볼 수 없는 곳에 있는 낙석, 고장 차량을 스마트폰이나 내비게이션을 통해 확인한다. 전방의 노면 상태나 교차로의 녹색신호 잔여 시간, 신호 없는 도로의 통행우선권이 자동으로 표시된다. 안개가 자주 끼는 도로에 부착된 센서가 가시거리를 측정해 최고속도 제한을 다르게 적용한다. 자율주행차의 경우에는 도로에서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앞 차와의 적정 간격을 판단한다. 전방에 사고가 났거나 노면이 미끄러우면 자동으로 평소보다 속도를 늦추고 차간거리도 벌리는 식이다. 모두 차세대 지능형교통시스템(C-ITS)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자율주행차 대중화의 필수 요소


C-ITS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어느 나라나 재정 확보가 어렵다. 이에 따라 도로를 확장하거나 새로 까는 대신 효율적인 도로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지능형교통시스템(ITS)은 교통수단이나 교통시설에 정보·통신·전자제어 등의 첨단기술을 접목해 교통 체계 운영과 관리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도로 전광판을 통해 전방의 지·정체 상황을 파악하거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도착정보를 확인하는 것, 고속도로에서 하이패스 단말기를 이용해 통행료를 지불하는 것 등이 모두 ITS의 예다.

ITS는 도로 기반 지점이나 구간 중심으로 기존 교통정보를 수집하고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최근 도로·자동차·보행자 간 협력 시스템인 C-ITS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기존의 ITS는 교통정보를 수집하고 제공하는 장치가 특정 지점이나 구간 중심으로 설치돼 있다. 따라서 이곳을 차량이 통과해야만 교통 서비스가 가능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와 달리 C-ITS는 촘촘한 도로 인프라뿐 아니라 차량과 차량이 상호 통신하며 교통정보를 공유한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아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가령 C-ITS가 있었다면 지난해 초 발생한 영종대교 106중 연쇄추돌 사고 같은 일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이렇게 생산·수집된 방대한 양의 교통정보를 활용하면 차량과 물류 운송의 증가로 인한 교통혼잡이나 환경문제 등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C-ITS는 최근 산업계 화두가 되고 있는 스마트카나 자율주행차의 핵심 연계 기술이기도 하다. 자율주행차는 하드웨어(차량)와 소프트웨어(IT·사물인터넷)가 결합한 복합산업이다. 안전하고 빠른 주행을 위해선 C-ITS 같은 다양한 교통 인프라 지원이 필수적이다. 자율자동차 한 대는 바로 주변의 도로 상황만 알뿐 광범위한 도로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C-ITS는 자율주행차량의 가격을 낮춰 상용화를 앞 당기는 데도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도로를 똑똑하게 만들고 자동차가 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만 적용시키면 더 쉽게 대중화가 가능하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시스템, 어플리케이션, 센서 및 장비 등을 포함한 ITS 시장 규모는 2015년 196억 달러에서 2020년 339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평균 성장률이 11.6%다. 차량에 탑재되는 시스템 시장의 경우 같은 기간 연평균 14.9%의 고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ITS 시장은 2014년 기준 약 4억 달러 규모로 세계 시장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안성원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차세대 신기술 보유를 통한 글로벌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투자 개발 필요하다고”고 강조했다.

ITS 시장은 주로 자동차 산업 선진국인 미국·유럽·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C-ITS 기술의 선두 주자인 유럽은 유럽위원회(EC)에서 각 국가들이 간접적인 지원을 받아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회원국 간의 다국적 프로젝트가 활발하고 국제표준화기구와 연계해 C-ITS 관련 핵심 표준을 빠르게 선점하고 있다. 미국은 시장 규모의 우위를 앞세워 정부와 민간 자동차 업체의 공동 프로젝트를 일관성 있게 진행해왔다. 이미 1991년부터 육상교통효율화법을 통해 83개의 시범사업 수행했고 이를 토대로 최근에는 C-ITS 차량단말장치 장착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독자적인 플랫폼으로 초기 단계의 안전운전 지원 서비스를 상용화 했고, 현재는 이를 고도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은 1993년부터 ITS를 도입한 이후 고속도로 시범 및 지역 시범 사업을 거쳐 2000년에 ‘ITS 기본계획 21’을 수립했다. 2000년 대에 들어서는 하이패스와 버스운행정보 시스템, 교통카드시스템 등을 구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기존 ITS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지만 C-ITS 분야에서는 선수를 빼앗긴 상황이다. 삼성SDS, SK CNC, LG CNS 등 대기업 계열 업체를 중심으로 활발하던 수출도 주춤한 상태다. 이철기 아주대 ITS대학원장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과 규제가 역전의 빌미가 됐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초창기 C-ITS 사업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관련 사업이 줄었고, 소프트웨어발전법으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의 대기업 참여가 제한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한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술로 세계로 나가려면 국내에서의 실적이 뒷받침 돼야 하는데, 국내서 아직 이렇다 할 사업이 없었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 내놓을 만한 포트폴리오가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국내 사업 지지부진해 해외에 내놓을 포트폴리오 없어

국제 표준화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C-ITS는 아직 정해진 국제표준이 없어 각국이 모여 표준화를 논의 중이다. 이 원장은 “우리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넣는다거나 그게 안되면 국제표준에 맞춰 개발할 수 있도록 전문가를 투입하는 등 하루 빨리 표준화 대열에 동참해야 하는데 아직은 선진국 논의를 귀동냥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참관인 자격으로 계속 논의에 참가하고 있지만 선진국 쪽에서는 기술 격차를 먼저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대할 수 있는 건 앞으로 진행될 사업의 성과다. 정부는 올해 7월부터 C-ITS 시범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대전~세종 간 87.8km구간에서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2022년 개통하는 것이 목표인 서울∼세종고속도로에 C-ITS를 도입하는 스마트하이웨이 사업의 일환이다. 스마트하이웨이 연구개발(R&D) 사업은 첨단 IT통신과 자동차 및 도로기술이 융·복합돼 안전하고 편안한 지능형 고속도로 구현을 목표로 추진하는 국책 사업이다.

1340호 (201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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