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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뒤흔든 브렉시트 논란] 기우에 그칠까 블랙스완 될까 

잔류가 경제·안보 실익 많다 vs 탈퇴가 일자리·복지에 유리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영국을 가리키는 ‘브리튼(Britain)’과 이탈을 뜻하는 ‘엑시트(Exit)’를 합성한 신조어인 ‘브렉시트(Brexit)’가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다. 영국인의 여론은 경제적인 이점과 유럽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잔류파와 주권 회복과 영국 우선을 주장하는 탈퇴파로 양분돼 있다. 영국에서 브렉시트 주장 여론이 떠올라 급기야 국민투표에까지 이르게 된 과정과 배경, 그리고 전망을 분석했다. 말 많고 탈 많은 유럽연합의 통합사도 짚어봤다.

▎브렉시트를 상징하는 잉글랜드 깃발(왼쪽)과 EU 잔류를 의미하는 EU 깃발을 묘사한 꽃 장식.
영국 BBC방송은 ‘잔류(Remain)’와 ‘이탈(Leave)’, 미국 CNN방송은 ‘남느냐(In)’와 ‘떠나느냐(Out)’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영국이 6월 23일(이하 현지시간) 유럽연합(EU) 탈퇴 문제를 놓고 벌이는 국민투표의 향방을 보도하는 내용이다. 영국을 가리키는 ‘브리튼(Britain)’과 이탈을 뜻하는 ‘엑시트(Exit)’를 합성한 신조어인 ‘브렉시트(Brexit)’가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다.

영국은 복잡한 나라다. 영국 전체를 가리키는 공식 용어는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n of Great Brita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약자로 U.K.라고 쓴다. 하지만 이를 줄여 브리튼(Britain)이라고 하기도 한다. 브리튼은 엄밀하게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가 있는 그레이트브리튼섬만 가리키지만 편의상 영국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선거 코 앞에 두고 잔류 주장 노동당 의원 피살

영국인의 여론은 경제적인 이점과 유럽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잔류파와 주권 회복과 영국 우선을 주장하는 탈퇴파로 양분돼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투표를 일주일 앞둔 6월 16일 잉글랜드 북부에 있는 웨스트요크셔 버스톨에서 EU 잔류를 주장해온 노동당의 조 콕스(41) 의원이 총격과 흉기 공격을 받아 사망하면서 찬반 양 진영의 선거운동이 모두 중단됐다. BBC 등은 “콕스 의원이 이날 버스톨 도서관에서 유권자와 만나는 중이었는데 두 명의 남성이 의원을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했다”고전했다. 총격 직전 체포된 52세 남성은 범행 직전 ‘브리튼 퍼스트(Britain first)’라는 구호를 외쳤다는 증언도 나왔는데 이는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진영의 구호다.

영국에서 EU 잔류를 주장하는 사람은 주류 정치인과 청년 층이다. 정당으로는 집권당인 우파 보수당의 지도부를 비롯한 온건파, 제1야당인 좌파 노동당, 그리고 스코틀랜드 의회를 주도하는 스코틀랜드민족당이다. 공식 지지 정당으로만 치면 잔류파가 압도적이다. 보수당 소속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제임스 코빈 노동 당수가 국민을 상대로 EU 잔류를 설득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도박 베팅 업체가 본 브렉시트 가능성 37%

이와 달리 EU 탈퇴를 주장하는 집단은 영국 정치 지형도에서는 소수파다. 영국독립당이 주도하고 보수당의 강경파들이 가세하는 정도다. 문제는 주류 정당과 정치인들의 브렉시트 찬반 양상과는 무관하게 EU 잔류와 탈퇴를 주도하는 국민 여론은 반반이라는 점이다.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주류 정치인의 비율은 낮지만 국민은 더 많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줄곧 잔류파가 약간 우세하던 여론은 국민투표를 앞두고 탈퇴파가 오히려 기세를 높이는 분위기다. 지난 6월 14일에 발표된 유력 언론사 세 곳의 여론조사는 모두 EU 탈퇴를 주장하는 ‘브렉시트’파가 탄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ICM·가디언 조사에선 6%포인트, 유고브·더타임스에선 7%포인트. ORB·더텔레그래프에선 1%포인트로 브렉시트파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여론조사들을 사실상 합산해서 발표한 파이낸셜타임스의 조사 결과에선 브렉시트가 2%포인트 앞섰다. 도박 베팅 업체인 베트페어는 브렉시트 가능성을 37%로 올려잡았다.

그동안 이민·난민에 대한 영국의 부담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면서 영국민의 감정을 자극해온 브렉시트 진영의 선거 전략이 상당히 먹히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영국으로 몰려든 EU 등 각국의 합법적인 이민자가 33만 명이 넘는다는 데이터가 공개된 것도 한몫했다. EU가 아직 EU에 가입하지 못한 터키인 100만 명에게 무비자 입국을 추진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브렉시트 진영은 쾌재를 불렀다. 일부에서 이번 국민투표를 보수당 내의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다툼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하면서 골수 노동자 지지자들이 투표에 소극적이거나 오히려 브렉시트 쪽으로 생각을 바꾸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브렉시트 우려에 따라 시장도 출렁거리고 있다. 런던증시에선 FTSE100지수가 떨어져 수백억 파운드가 증발했다. 파운드화도 요동을 치고 있다. 유럽 주요 증시들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미국 증시도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금리 인상을 유보했다.

영국의 EU 잔류파는 18~49세의 청년층이 중심이다. 여성과 소수민족의 지지율이 높다. 지역적으로는 도시 지역과 스코틀랜드에서 잔류파가 압도적이다. 계층별로는 고학력층에서 EU 잔류에 대한 지지율이 높다. 하지만 투표성향에선 불리하다. 정치에 냉소적이고 정치활동 참여가 활발하지 않은 젊은층이 많아 잔류파의 의사가 국민투표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EU 잔류파 중에는 EU 잔류에는 찬성하지만 기존의 주류 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큰 사람이 적지 않아 투표 참가율을 낮추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분석이다.

영국의 브렉시트파는 정치적으로는 마이너리티에 속한다. 가장 중심에 선 인물이 2008년 5월부터 지난 5월까지 8년 간 런던 시장을 지낸 보수당의 보수파 정치인 보리스 존슨이다.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 출신의 존슨 전 시장은 브렉시트 주창의 원조격이다. 영국독립당 대표인 나이젤 패라지도 브렉시트의 핵심 인물이다. 영국독립당은 1993년 창당된 영국의 유럽회의주의(EU가 영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주장) 우익 포퓰리즘 정당이다. 정당 이름에서 말하는 독립이란 EU 탈퇴를 의미한다. 4만7000명 정도의 당원이 있으나 선거 결과는 그리 좋지 않다. 영국이 73명을 보내는 유럽의회 의원 중 22명을 보내고 있을 뿐 하원에는 650명 중 1명, 상원에는 802명 중 3명의 의원을 배출했을 뿐이다. 이처럼 당세는 비교적 미약하지만 브렉시트를 둘러싸고는 상당한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다.

탈퇴파는 세대상으로는 50세 이상이 중심이다. 보수층의 남성이 중심이다. 지역별로는 잉글랜드 북동부와 중부 중심의 낙후된 지역이 대부분이다. 계층별로는 노동자 계층이 핵심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EU 회원국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위협받고 있다고 여긴다. EU에 내고 있는 분담금을 복지비로 돌리면 자신들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들의 투표 의지다. EU 탈퇴파들은 적극적으로 투표 의사를 보이고 있다.

EU 잔류 캠페인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은 집권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다. 캐머런 총리가 EU 잔류를 주장하며 국민을 설득하는 핵심 논리는 경제적인 이득이다. 그는 EU와 함께한 덕분에 영국 경제가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경제적인 플러스 요인을 강조한다. EU 가입에 따른 이득을 향유하는 젊은층에서 잔류 지지파가 많은 이유다. 이들은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좌우파 모두 잔류를 지지한다. 하지만 투표 참여 의사가 낮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보수당과 노동당 지도부는 이들의 투표율을 높이는 게 국민투표에서 승리하는 관건이라고 보고 이들에게 선거 운동을 집중하고 있다.

브렉시트, 연합국가 영국 해체 부를 수도


▎영국 경찰이 6월 16일(현지시간) 조 콕스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이 총에 맞아 숨진 웨스트 요크셔 버스톨의 현장 주변을 봉쇄하고 조사를 하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EU잔류 지지파가 대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영국이 EU에 남아야 관세와 접근 장벽이 사라진 거대한 단일 시장을 향유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계속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대부분의 기업은 유럽이라는 거대 시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의 경제가 그동안 다른 유럽 기업에 비해 비교적 활황세를 유지해온 것은 유럽이라는 거대한 시장에다 다른 나라보다 낮은 법인세, 안정적인 비즈니스 환경, 외국인이 살기 좋은 환경 덕에 세계의 자본과 인재가 몰렸기 때문이다. 특히 제약 업체들이 영국을 연구개발 거점으로 삼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영국이 자랑하는 금융산업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런던의 금융가인 시티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산업은 마거릿 대처 정권 이후 규제 개혁과 자유화, 글로벌화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왔다. 영국 런던의 금융가인 시티는 유럽의 경기가 좋을 때는 미국 뉴욕의 금융가인 월가에 필적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티는 EU의 금융 센터 역할을 맡으면서 해외의 자금을 인수할 수 있었다. 이는 영국이 EU의 일부가 되는 덕분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영국의 금융 업체가 단일 사업 허가권만 갖고도 거의 모든 EU 회원국에서 사업개발이 가능한 ‘단일 패스포트’를 EU가 부여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금융산업은 220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으며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금융회사의 해외 이탈이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단일 패스포트’가 사라지면 영국에서 영업하는 소형 금융 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방과 안보 분야에서도 브렉시트는 영국에 불리하다는 것이 잔류파의 주장이다. 중동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다양한 외부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영국은 EU 각국과 관련 정보 교류는 물론 공동 테러 방지 협력을 해오고 있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할 경우 이런 이점이 사라지고 영국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잔류파의 주장이다.

무상에 가까운 의료보장제도(NHS) 역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의 노동당 정권 집권 이후 확립된 NHS는 영국의 자랑거리다. 런던 올림픽 당시 영국의 자랑거리를 소개하는 퍼포먼스에 등장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비교적 인건비가 싼 EU의 다른 회원국 출신의 의사와 간호사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일부에선 영국의 EU 탈퇴는 영국이라는 연합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영국을 이루고 있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웨일스의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세 십자가가 서로 합쳐져 있는 모습이다. 웨일스는 이미 1057년 잉글랜드에 통합돼 유니언잭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주장하는 국민투표를 치렀을 정도로 독자적인 길을 가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독립했을 경우 경제적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투표에서 독립안이 부결되기는 했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만일 이번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결정되면 스코틀랜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독립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경제적인 이득이 없다면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남아있을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해서라도 EU 회원국에 남으려고 할 것이다.

북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북아일랜드는 영국에서 분리하자는 가톨릭파와 영국의 일부로 남아야 한다는 국교회파가 대립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 문제를 떠나 정체성과 역사성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로 대립해왔지만 영국 중앙정부의 조정으로 어느 정도 평화를 찾고 있다. 문제는 이런 갈등조차 경제적인 이익 앞에서는 무력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영국 땅인 북아일랜드와 독립국가인 아일랜드(고유어로 에이레)는 같은 EU 회원국으로서 자유 통행이 이뤄지고 있다. 두 나라를 여러 차례 왔다갔다하는 도로로 있을 정도다. 두 지역은 소속 국가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아일랜드라는 정체성을 공유해왔다. 하지만 영국이 EU에서 탈퇴할 경우 당장 이런 이점이 사라진다. 물론 영국과 아일랜드가 별도의 협약을 맺고 자유 통행을 재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구차스러운 절차를 밟기 전에 북아일랜드 지역 의회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통해 독자 국가를 선언하든 아일랜드와 통합하든 어떤 방식으로라도 EU에 남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에서 EU를 떠나자는 의견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원은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블레어는 글로벌주의자였다. 그는 2000년대에 EU에 신규 가입한 동유럽 국가의 인재에 눈독을 들였다. 그는 동유럽으로부터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따라 매년 30만 명 이상의 이민자가 영국으로 들어왔다. 런던 곳곳에 커다란 폴리시 소시지와 새큼한 양배추 절임인 자우어크라우크(독일과 폴란드에서 즐겨 먹음)를 파는 폴란드 식료품점이 생겼다. 영국 수퍼마켓 체인점에서도 동유럽 식품 코너가 줄이어 생겼다. 호경기 때는 이런 이민정책이 환영받았다. 부족한 일자리를 양질의 노동자로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민 정책은 영국 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생각이 서서히 변했다.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EU 국가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수많은 이민자들이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아간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 시작해 불만이 날이 갈수록 강해졌다.

포퓰리즘과 중우정치의 함정?

이런 불만을 등에 업고 탄생한 영국독립당은 반이민과 EU 탈퇴를 공약으로 내건 최초의 정당이 됐다. 10년 만에 노동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한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는 영국독립당의 압박과 당내 보수파의 주장에 휘둘려 2013년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당장 직면할 문제는 자유무역협정이다. 28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단일시장인 EU에서 탈퇴하면 이들 국가와 개별적으로 자유무역 협정을 맺어야 하는 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EU 탈퇴파들은 이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실체도 없는 ‘주권’이란 것을 내세워 탈퇴를 주장한다. 일부에서 백인 남성 고령자 중심의 회고주의자들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비난하는 근거다. 브렉시트파가 대중영합주의로 비판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브렉시트파는 영국이 EU에서 이탈한 다음 어떤 방식으로 나라를 이끌고 경제적인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브렉시트는 현대 정치가 얼마나 선동에 취약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비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영국은 포퓰리즘과 중우정치의 함정에 빠질 것인가.

1340호 (201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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