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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표 나온 美 대선 쟁점은] 세계가 우려하는 자국우선주의 득세 

클린턴·트럼프 모두 사실상 보호무역주의 주장... 초유의 뒷걸음질 선거 가능성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
잔치는 끝나고 이젠 전쟁만 남았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7월18~21일)에 이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7월 25~28일)가 끝났다. 이제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다. 11월11일 결전의 날까지 미국에선 어느 때보다 뜨거운 선거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힐러리 클린턴, 경제·일자리 우선 강조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7월28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대선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했다. 클린턴은 이 연설에서 자신이 보여줄 미국의 모습을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우선 임무는 미국에서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 임금 상승을 동반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우선’ ‘일자리 우선’을 강조한 것이다. 클린턴은 소외된 지역에 대한 관심도 함께 표명했다. 그는 “특히 지나치게 오랫동안 버려지고 뒤처진 지역”이라며 “도심부터 작은 마을까지, 인디언 거주지부터 탄광촌까지, 중서부 산업지대부터 미시시피 삼각주, 리오 그란데 밸리까지”라고 언급했다. 미국의 뒤진 지역에 대한 균형 발전, 소외된 주민에 대한 끌어안기를 시도했다.

클린턴은 안보에 대해서도 강한 톤으로 언급했다. 그는 “국가 안보에 관한 우리가 받은 선택지는 참으로 냉혹하다”며 “불안에 떠는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바그다드, 카불, 니스, 파리, 브뤼셀부터 샌버나디노, 올랜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반드시 무찔러야 하는 완강한 적들을 상대하고 있다”며 테러 발생지역을 낱낱이 언급했다. 동맹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공조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 테러와의 전쟁을 가속화할 뜻을 밝힌 셈이다. 그는 “우리의 모든 세대는 이 나라를 더욱 자유롭고 공정하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 함께 해왔다”며 “우리 중 누구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우리가 함께해야 강한 이유”라고 말해 동맹 강화와 국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했다. 클린턴은 이처럼 국제주의를 강조하면서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와 차별화를 분명히 했다. 클린턴의 수락연설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동맹 재편을 강조한 트럼프와 각을 세웠다.

클린턴이 당선할 경우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은 기존 방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자신이 국무장관을 하면서 기존의 외교·안보질서를 만들었고, 그의 캠프에 한국 전문가도 많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 함께 일한 이들에게 캠프의 외교·안보 분야를 맡겼다. 외교·안보 담당인 제이크 설리번은 클린턴이 장관 시절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을 지낸 인물이다. 로라 로젠버거 외교 자문은 국무부 한국과 출신으로 클린턴 집권 시 사실상 한반도 책임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로젠버거는 2008년 북한 영변 냉각탑 해체 때 국무부 소속으로 방북해 평양에서 우리 당국자들과도 만난 적이 있다. 메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캠프가 아닌 외곽에서 ‘시니어 파트너’로 정책을 자문하고 있다.

클린턴 당선 때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

이렇듯 클린턴이 당선할 경우 버락 오바마 정부의 기조를 유지 혹은 강화할 것이란 예측에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오바마의 기존 정책을 이어나가게 된다면 한국 정부가 외교정책이나 대북정책을 새롭게 마련할 필요는 없다. 클린턴 진영의 외교 브레인들인 커트 캠벨 전 국무부 차관보,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 등이 한국 정부와 오래 호흡을 맞춰온 사이란 점도 이점이다.

하지만 대북 강경론자인 클린턴이 초래할 다양한 변수에는 대비가 필요하다. 우선 클린턴 자신이 한반도에 정통하다. 이에 따라 오바마 정부의 대북 기조였던 ‘전략적 인내’는 전략적 무관심에 가까웠지만, 클린턴에게 북한은 ‘전략적 관심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에게 더 깐깐하게 대할 가능성이 크고, 그 여파로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이한 점은 7월 25일 발표된 민주당 정강에 북한을 ‘글로벌 위협 국가’로 지목하면서 ‘가장 억압적인 정권’이란 표현까지 사용했다는 점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가학적 독재자’로 불렀다. 설리반은 “클린턴에게 북한 문제는 최우선 이슈”라고 말했다. 클린턴이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펴는 와중에 한국을 배제하고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미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까지 폭넓은 변화가 전개될 수도 있다. 클린턴은 외교 성과를 얻기 위해 이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또 주목되는 것은 보호무역주의다. 클린턴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며 트럼프의 공화당과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내에서 미국이 너무 많은 무역협상을 체결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일부에서는 일부 무역협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쪽에서는 트럼프의 배타적인 보호 무역주의가 산업 분야 종사자나 관련 실업자가 많은 중서부 벨트에서 인기를 얻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민주당에서 전략적으로 내놓은 ‘정치적 레토릭’이라는 분석이 있다. 힐러리가 뉴욕주 연방상원의원이나 국무장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자유무역 찬성론을 폈다는 게 근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보호무역주의 경향의 목소리를 냈지만 대통령이 되자 TPP를 추진했다는 것을 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클린턴에게 지금 급한 건 대통령이 되는 일이지 과거 정책의 일관성 유지가 아니다. 미국의 민심 변화에 따라 정치적 레토릭을 넘어 실제로 보호무역주의를 중요한 득표 전략으로 이용하고 당선 후에도 이를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는 때로 경제 논리를 누른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세계 최강의 권력을 놓고 싸우는 미국 대선에서 그런 일은 하시라도 벌어질 수 있다.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 내세워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하면 더욱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가 만들어나갈 ‘지금과는 다른’ 미국의 모습은 트럼프와 공화당의 공약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가 내세우는 정책 구호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다. 달리 말하면 ‘미국만을 위한 미국’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7월 21일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제는 글로벌리즘(세계주의)이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즉 아메리카니즘이 우리의 새로운 신조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노선에 따르면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종래 미국이 걸어왔던 길과 완전히 방향을 달리한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그는 “김정은과 직접 논의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지금이야 “순진하다” “뭘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일단 그가 대통령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통령이 정한 방침이자 방향인 이상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1953년부터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대가로 평화가 유지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국에서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북한은 점점 더 미쳐가고 있고, 점점 더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보일러(boiler) 같다”고 답했다. 그는 “일본에 미사일 기지가 있기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을 쉽게 요격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오랫동안 (그렇게) 유지해 왔지만 이제는 구식이 됐다”고 말해 미국의 미사일방어시스템(MD)에까지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미국이 그동안 유지해온 전후 질서와 동맹체제를 뿌리째 뒤흔드는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할 경우 한바탕 소용돌이가 예상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정책에서 가장 눈길을 끌어온 것은 테러 및 이민 정책이다. 그는 테러가 발생한 나라의 국민이나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 미국의 적으로 몰았다. 한마디로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 그의 이 같은 생각은 “무슬림 입국을 금지하겠다”는 발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개인이 믿는 종교를 이유로 입국을 금지하면 테러에 반대하고 테러의 피해를 입고 테러범들에 맞서는 사람들까지 미국을 좋지 않게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그의 발언이 심한 반발에 부딪히자 트럼프는 ‘테러국 출신 이민자 입국 금지’라고 말을 고쳤다. 하지만 테러국이라는 용어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은 모호한 발언이어서 비난은 여전하다.

트럼프가 내세우는 대테러 정책은 간단하다. 세계에서 최고의 정보를 수집해 테러에 대응하며,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들과 함께 이슬람 테러리즘을 박멸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16개 정보기관이 모두 나서도 테러를 제대로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라도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대테러 대책은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나 군 정보기관 아만이 마치 미국이 갖지 못한 엄청난 테러 정보라도 갖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이스라엘도 모든 테러를 막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프로이센에서 미국에 이민 와 골드러시를 타고 서부 지역에서 여관업으로 돈을 모은 할아버지를 둔 이민 3세다. 그런 트럼프는 이민자에 대한 독설과 이민자에 대한 혐오로 악명이 높다. 바람을 향해 흙을 던지는 형국이다. 국경을 맞댄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와의 경계에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해 자유로운 이동을 막은 조치에서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대테러 정책에서 동맹국의 협조를 얻어 그들의 정보를 이용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맹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모순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트럼프 외교정책의 핵심은 ‘동맹국 방위비 부담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 한국 등을 거론하며 안보 무임승차론을 들먹이고 있다. 한국이 해마다 부담하는 9000억원 이상의 방위비 분담이 부족하다며 더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발언을 하는 대통령 후보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할 것으로 기대하는 동맹국은 없어 보인다.

트럼프가 내세운 무역 정책은 더욱 기가 막힌다. 지금까지 미국이 걸어왔던 길과는 정반대다. 후보 수락연설에서 그는 “나의 경쟁자(클린턴)는 미국 내 중산층을 파괴하는 나프타(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그리고 일자리를 죽이는 한국과의 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지지했다”며 “난 우리 노동자를 해치거나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해치는 어떤 무역협정에도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미국이 맺은 무역협정 전부 재협상”

트럼프는 ‘새롭고 공평한 무역 정책’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미국이 외국과 맺은 자유무역 관련 협정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주요 산업지대가 몰락하고 자동차산업 등 전통적인 산업에 종사하던 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든 원인을 이러한 자유무역협정에서 찾고 있다. 미국의 경쟁력이 떨어져서 외국에서 ‘덜 혁신적이고 진부한 미제 상품’에 대한 인기가 떨어진 것이 진짜 이유라고 지적하지 못한다. 세계 무역질서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은 것인지, 알면서도 표만 의식한 저돌적인 발언인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는 미국이 맺은 무역협정을 전부 재협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락연설에서 그는 “중국과 그리고 다른 많은 나라와의 끔찍한 무역협정을 완전히 재협상할 것”이라며 “재협상은 미국을 위해 더 좋은 거래를 끌어내기 위한 나프타 재협상을 포함하는 것이며 우리가 원하는 협상을 얻지 못하면 협상장을 걸어 나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멕시코와의 경제 동반 관계를 분명히 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는 물론이고 사실상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며 한국에 가입하라고 엄청난 압력을 가해왔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까지 도마에 올린 것이다. 중국이 박수를 칠 일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무엇이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인지, 어떤 전략으로 미국이 세계 경영에 나서야 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라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적대감도 상당하다. 중국의 환율조작과 지적재산권 침해로부터 미국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중국의 일부 행동이 미국이나 서방에 만들어놓은 국제경제 질서를 따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경제를 비롯한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고, 일의 해결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게 마련이다. 트럼프는 중국에서 수입한 저가 생활용품 때문에 미국의 물가가 조절되고 있다는 사실은 제대로 언급하지 못한다. 미국이 만든 자유무역이라는 국제통상 기조에 반대하고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겠다면서 중국이 기존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은 자가당착적인 모순이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모순적인 정책이 미국의 대외 정책이 된다. 트럼프의 선거운동을 세계가 지켜보는 이유다.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미국이 앞으로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도 관심거리다. 트럼프가 패배하더라도 상당한 득표를 할 경우, 심지어 그렇지 않더라도 공화당 대선 후보에 이런 인물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미국을 걱정하며 불안한 눈으로 주목하는 이유다.

1346호 (201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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