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장을 비롯한 10개 구단 대표선수들이 8월 8일 오후 서울 청담동 호텔리베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프로야구선수에 의한 경기 조작 사건에 대한 선수협의 입장을 밝히며 사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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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가 2012년 이후 4년 만에 승부 조작이라는 시련에 직면했다. 조작에 가담한 선수, 선수의 소속 구단, 한국야구위원회, 그리고 야구계 전체가 팬 앞에 죄인이 됐다.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8월 중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무관용 원칙에 따라 선수를 징계하고, 부정방지 교육을 확대하며, 신고 포상금을 올리겠다고 한다. 조작에 가담한 선수 소속 구단과 협회·연맹에 대한 제재도 강화한다고 한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8월 8일 프로야구 승부 조작 사건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발표했다. 앞으로 승부 조작 사건이 발생하면 20억 원을 ‘벌금’으로 내겠다는 것이다. 이미 적립된 재원이 아니라 선수들이 300만원씩 갹출하는 방식이다. 연대책임을 지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선수들이 연대책임 지겠다고 하지만…이런 조치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진 지켜볼 일이다. 승부 조작은 공정한 경쟁이 생명인 스포츠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범죄다. 승부 조작은 불법 스포츠 도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14년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과 업무협약을 하고 승부 조작과 불법 스포츠 도박에 공동 대응하기로 한 데서 잘 볼 수 있다.합법이든 불법이든 스포츠 베팅은 일정한 배당률이 주어진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맞추는 게임이다. 불법 시장도 경쟁이 심하다. 가장 손쉽게 이득을 취하는 방법은 경기 결과를 미리 아는 것, 즉 승부 조작이다. 한국 스포츠계는 2011~2012년 승부 조작 사건으로 홍역을 앓았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매우 강력했다. 2012년 2월 개정한 국민체육진흥법에서는 불법 스포츠 도박 운영자뿐 아니라 참가자까지 처벌하도록 했다.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2016년 5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는 불법 도박 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5년 불법 스포츠 도박 운영자 검거 건수는 2012년보다 4.4배 늘었고, 사이트 단속 건수는 3.7배 늘었다.단속이 강화됨에 따라 적발 건수가 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불법 스포츠 도박 사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불법 업체는 대형화 형태이며, 본사-총판-대리점으로 짜인 피라미드 구조다. 서버는 해외에서 운영되고, 베터들은 익명으로 불법 도박에 참여한다. 단속과 처벌이 어렵다. 불법 스포츠 도박 산업 규모는 대략 19조~26조 원으로 추산된다. 합법 시장의 6~8배 규모다.사실상 ‘강력한 처벌’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선수를 처벌하고, 불법 베팅 운영자와 이용자를 처벌하는데 이어, 스포츠 단체를 제재하는 걸 다시 대책으로 내놓으려 한다. 그 다음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한국에서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이 성장하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배당률은 환급률을 발생 확률로 나눈 값이다. 발생 확률을 정하는 사람을 ‘오즈메이커’라고 한다. 두산과 LG의 경기에서 각 팀의 승률을 55%, 45%로 책정했다고 치자. 환급률을 95%로 책정하면 두산 승리의 배당률은 1.73이며, LG 승리의 배당률은 2.11이다. 환급률은 이론적으로 전체 베팅액에서 베터 적중 상금이 차지하는 몫이다. 자유 경쟁 시장이라면 베터들은 환급률이 높은 베팅 업체(북메이커)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의 스포츠 베팅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독점하고 있다.외국 업체의 경우 환급률은 9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사감위 추산에 따르면 국내 불법 스포츠 도박 업체의 환급률은 90.2%다. 그런데 스포츠토토, 즉 국민체육진흥투표권 사업의 2015년 환급률은 60.2%였다. 그 해 체육진흥투표권 사업의 총매출은 3조4494억원, 순매출은 1조3722억원을 기록했다. 유사 사행산업의 환급률은 경마 73.1%, 경륜 72.0%, 경정 72.1%, 소싸움 71.8% 등이다.스포츠 경기를 두고 정부가 독점하는 합법 베팅과 불법 베팅이 경쟁하고 있다. 전체 베팅액을 1000이라고 했을 때 국가의 합법 업체는 602를 상금으로 지급하고, 불법 업체는 902를 돌려 준다. 베터는 어디를 선택할까. 그래서 불법 스포츠 도박은 근절되지 않고, 오히려 더 성장하고 있다.승부 조작과 불법 스포츠 베팅을 막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첫째, 규제와 처벌을 강화해 불법 행위 참여의 리스크를 높인다. 하지만 이 방법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두 번째 방법은 불법 베팅의 기대 수익을 낮추는 것이다. 현행 국민체육진흥투표권의 환급률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사감위 보고서에 따르면 불법 도박 참여자의 82%는 합법과 불법에 동시 참여하고 있다. 합법 베팅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추면 상당수 불법 이용자를 흡수할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지금은 거꾸로 합법 베팅 참여자에게 폭리를 취해 불법 도박으로 이끌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2001년 10월 축구토토와 농구토토와 발매된 이후 불법 스포츠 도박 산업이 확장됐음에도 정부는 이런 조치를 한 적이 없다. 불법의 온상을 만들어 놓고 불법을 저지른 이들을 처벌하겠다고만 했다.
정부의 폭리?스포츠 베팅 수익금은 국민체육진흥기금에 편입돼 체육 재정에 쓰인다. 이른바 ‘좋은 일’에 쓴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수치가 있다. 2000년 정부 예산은 94조6199원이었고, 체육 부문 예산은 1799억원으로 0.19%를 차지했다. 2014년 정부 예산은 250조7885억원으로 2.65배 늘어났지만 체육 부문 예산은 1488억 원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2003년 체육 재정에서 국고는 1426억원, 기금은 1726억원이었다. 기금 대비 국고 비율은 82.6%였다. 2014년에는 국고 1488억원, 기금 9230억원으로 비율은 16.1%로 떨어졌다. 정부가 예산으로 집행하지 않는 체육 재원을 국민체육진흥기금, 즉 베팅 수익금으로 메우고 있다.체육은 국민 건강과 직결된다. 건강보다 더 중요한 복지는 없다. 그리고 교육이자, 산업이다. 국민체육진흥법은 제1조와 제3조에서 국가가 체육을 진흥할 책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 정부는 그 책무를 스포츠 베터들을 ‘삥 뜯는’ 것으로 갈음하고 있다. 불법 스포츠 도박과 승부 조작은 국가가 스포츠 베팅 산업을 독점하며 얻는 이익으로 법률로 규정된 책무를 방기한 데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