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위대한 리더가 되는 손쉬운 방법 

왜(Why)를 먼저, 무엇(What)과 어떻게(How)는 그 다음에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A, B 두 사람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벽돌을 쌓는 중이다. 벽돌 쌓기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정성여하에 따라 지진에 견딜 수도, 발길질 한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 A는 제발 일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일당을 받아 막걸리라도 한잔 하고픈 생각뿐이다. B는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벽을 쌓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지금 쌓는 것은 그냥 벽이 아니라 갓 태어난 아들 녀석이 다닐 학교의 벽이기 때문이다.

둘 중 누가 더 튼튼한 벽을 쌓을지는 물어보나마나다. 일하는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어쩌면 ‘이유’를 찾아 가는 긴 여정인지도 모른다. 공부하는 이유, 일하는 이유, 더 나아가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한 사람은 대개가 행복하다. 이유를 모른 채 하루하루를 숙제하듯 살아가는 사람은 매사에 시큰둥하고, 불평과 분노에 쌓인 채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다. 이처럼 한 개인의 삶도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다른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의 삶은 어떨까? 우리 주변에는 극소수의 존경받는 리더와 대다수의 실망스러운 리더가 존재한다(늘 그래왔고, 또 늘 그럴 것이다). 어느 리더도 작정하고 실망스러운 리더가 되기를 원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존경받는 리더가 되는 비결은 없을까? 미국의 리더십 연구가인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이 말하는 위대한 리더들의 공통점을 들어보자.

‘이유’있는 삶이 행복하다


▎1963년 마틴 루터 킹이 워싱턴 링컨 메모리얼 파크에서 연설하는 장면.
사이넥은 진정한 리더는 구성원들에게 왜 일을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는 리더라고 설명한다. 그가 2011년 발간한 책 제목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Start with Why)]에서처럼 왜(Why), 즉 이유가 행동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 많은 컴퓨터 회사 중에서 왜 애플만 광(狂)팬들을 거느리고 있을까? 그 많은 인권운동가 중에서 우리는 왜 마틴 루터 킹 목사만 기억할까? 그 많은 비행기 발명가 중에서 왜 학벌도 짧고 자금도 부족했던 라이트 형제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들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소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what)이나 어떻게(how)에 집착하는 대신 그들은 왜(why)를 먼저 고민했던 것이다.

우리도 산업화 초기에는 근면성실한 것이 곧 애국(愛國)이고 애족(愛族)이라는 강력하면서도 자발적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리더도 왜 새벽부터 출근해야 하는지, 왜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하는지, 왜 악착같이 경쟁해야 하는지에 대해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으니까? 그건 이유가 아니라 변명이다. 일하는 것에 대한 이유, 즉 명분·신념·믿음을 가진 리더들은 뭔가가 다르다.

1900년대 초, 유인 비행기에 대한 열풍은 지금의 IT나 바이오 열풍을 훨씬 능가했다. 너도 나도 비행기 개발에 뛰어들었는데, 그중 사무엘 피에르폰트 랭리(Samuel Pierpont Langley)라는 사람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하버드 졸업생인 그에게는 많은 자금과 우수한 인재가 모여들었다. 하지만 최초의 비행기는 1903년 12월 17일, 오하이오 데이톤이라는 시골마을에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던 올빌과 윌버 라이트(Orville and Wilbur Wright) 형제가 개발했다. 랭리와 라이트 형제의 결정적 차이는 딱 한가지, 비행기에 대한 꿈과 환상이었다. 라이트 형제, 그리고 그들과 같이 일했던 직원들은 최초의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열과 성을 다해 헌신적으로 일을 했다. 이와 달리 랭리는 돈과 명성이 목적이었고, 그와 같이 일했던 직원들도 월급봉투만이 목적이었다. 그 미묘한 차이가 성패를 갈랐다.

1963년 여름, 무려 25만 명의 사람이 미국 워싱턴에 있는 쇼핑몰 앞에 모였다. 초대장도,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웹 사이트도 없었던 시절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였다. 킹 목사는 미국에서 가장 연설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또 인권 탄압으로 고통받던 유일한 흑인도 아니었다. 하지만 킹 목사가 다른 인권운동가와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었다. 그는 이것이 잘못되었다, 저것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하지 않았다. 대신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며 자신의 신념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의 신념을 믿은 사람들은 그걸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열광적으로 전파했다. 8월 중순 워싱턴의 뙤약볕 아래 그 많은 사람이 모여든 것은 흑백 갈등 차원을 넘어 미국의 미래에 대한 신념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25%의 관중이 백인이었다고 한다).

2000년대, 애플은 여전히 다른 전자제품 회사와 뚜렷이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애플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흔히 기업의 마케팅과 영업 파트는 자사 제품을 소개하고, 다른 제품들과 어떻게 다르고, 뭐가 좋은지를 말한다. “새로운 차가 있습니다. 시트는 가죽이고 연비도 좋습니다. 이 차를 사세요”하는 식이다. 하지만 애플이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은 거꾸로다. “우리는 기존의 것에 도전하고, 신념을 갖고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답고, 심플하고, 편리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구입하고 싶은가요?” 아, 왠지 달라 보인다. 안 살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이 게이트웨이나 델 같은 미국의 쟁쟁한 경쟁사들을 제쳐놓고 많은 사람이 한사코 애플의 컴퓨터, MP3 플레이어, 태블릿, 휴대전화를 고집하는 이유다.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진정한 리더

출퇴근 러시아워 지하철에서 숨을 참고, 손을 가지런히 하고, 이리저리 떠밀리다 보면 문득 ‘나는 누굴까’ ‘여긴 어딜까’ 따위의 존재론적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왜 사냐고 묻거든 그저 웃지요’다. 기왕에 한번뿐인 삶인데 사는 이유, 일하는 이유, 뛰는 이유를 찾고 깨달아야 한다. 사춘기에 짧게 끝낼 고민이 아니다. 기업도 그렇다. 마케팅의 목표는 당신의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믿음을 파는 것이어야 한다. 고용의 목표는 단지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당신(회사)의 믿음과 신념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녀 교육도 그렇다. 공부에 넌더리가 난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못 배운 부모의 한을 풀어달라? 늙어서 뼈저리게 후회할 거다? 좋은 대학 가면 어깨에 힘 주고 살수 있다? 글쎄다. 이런 정도에 넘어 올 아이들이 아니다. 윽박지르고 꼬드겨봤자 소용없다. 방법은 딱 하나다. 제발 좀 하지 말라고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려도 아득바득 공부하게끔 동기 부여가 되어야 한다.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why)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하면 공부는(적어도 지금 하는 공부는)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국가에게도 헛수고일지 모른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1350호 (2016.09.0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