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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정권 집권 13년 만에 막 내려2011년 1월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오른 호세프는 이로써 5년 8개월 만에 탄핵으로 권좌에서 밀려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좌파 민주 투사에서 브라질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권력 정상에 올랐던 그는 이 나라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 당한 대통령이 됐다. 1992년 탄핵 당한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전 대통령에 이은 탄핵이다. 이번 탄핵으로 2003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1) 전 대통령 이후 지속됐던 브라질 노동자당(PT)의 좌파 정권도 13년 만에 종말을 고했다.호세프는 대변인을 통해 “연방대법원에 탄핵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지만 결정을 뒤집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룰라 전 대통령을 비롯한 노동자당 지지자들은 대선을 새로 치러 새 대통령을 뽑자고 주장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과반수인 62%의 국민이 ‘대선을 다시 치러야 한다’고 응답한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대통령 직을 승계하는 테메르에 대한 지지율이 불과 10% 정도에 그친 것도 명분이 된다. 하지만 국민의 여론이 법과 제도를 앞설 수는 없다. 현행법에서 새로운 대선을 치르려면 대통령 직을 승계한 테메르가 사퇴해야 한다. 하지만 우파의 기수로 좌파 대통령 호세프를 쫓아낸 테메르가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없다. 이 때문에 테메르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대선이 다시 치러질 가능성은 없는 상황이다. 브라질의 권력은 국민이 선택한 좌파의 손에서 의회가 선택한 우파로 넘어갔다.탄핵 전날 호세프는 “테메르가 이번 탄핵 쿠데타의 배후”라며 “그가 대통령직을 강탈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번 탄핵 정국의 최대 수혜자가 테메르다. 호세프는 “테메르가 대통령에 오르면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크게 후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장주의자이며 친기업 정치인으로 통하는 테메르는 최저 임금을 올리는 호세프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어왔다. 테메르는 중도우파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소속의 정치인이다. 한때 노동자당과 연정을 이뤘다. 룰라의 노동자당이 중도 좌파로 경제 재건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세프가 들어서면서 사사건건 맞서왔다.
꼼수 쓴 우파, 빌미 제공한 좌파문제는 호세프가 탄핵당한 이유가 그리 깔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탄핵 사유는 호세프가 연임을 위한 2014년 10월의 대선을 앞두고 연방정부의 대규모 재정 적자를 숨기려고 국영은행의 자금을 끌어 쓰고 이를 제때 갚지 않았다는 것이다. 막대한 재정 적자는 호세프의 실정으로 대중에게 각인돼 대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이를테면 기업이 주가를 높이려고 분식회계를 하듯, 재정 적자라는 자신의 실정을 숨기려고 국영은행의 돈을 불법 전용한 것이다.우파는 호세프의 전용이 정부재정회계법을 위반한 것으로 탄핵 사유가 된다고 주장한다. 안토니오 아나스타시아 상원의원은 “2010년 8억 헤알 정도였던 국영은행 자금 전용이 2014년엔 무려 59억 헤알(약 2조88억원)로 불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호세프 정권이 상습적으로 재정 적자를 국민에게 숨겼다”며 “이는 명백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우파의 보루인 브라질 검찰도 호세프가 재정 ‘분식회계’로 국가에 해를 끼쳤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호세프 측은 물론 좌파 지지자들은 국영은행 자금 차입은 정상적인 통치 행위이며 탄핵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호세프는 의회에서 “국영은행 자금 전용은 전 정부부터 이어진 관례”라고 맞섰다. 그는 국영은행에서 차입한 자금은 최저임금을 올리고 연금을 확대하는 데 사용했다”며 정당한 통치행위라고 반박했다.브라질 법과 제도상 탄핵의 칼자루는 의회가 쥐고 있고, 의회는 우파가 장악하고 있다. 의회를 장악한 브라질 우파 세력에게 정부재정회계법 위반은 좌파 대통령 호세프를 제거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었다. 그들이 노린 것은 탄핵을 통한 정권 재 탈환이었다. 선거로 얻지 못한 권력을 법률 해석과 의회 표결을 통해 이룬 것이다. 이는 의회에 이어 대통령직도 장악한 우파정치권력의 취약점이기도 하다.좌파는 잇단 부패 혐의와 실정으로 명분과 신뢰를 잃어갔다. 정부재정회계법 위반이 우파가 만든 탄핵 명분이라면 좌파의 부패는 호세프의 무장을 해제한 강력한 변수였다. 특히 과거 룰라 정부와 관련된 좌파 정치인들의 부패 혐의가 드러나면서 호세프는 기운이 빠졌고 우파는 힘을 더했다. 집권당인 노동자당은 물론 함께 연정을 이룬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소속의 주요 정치인들이 브라질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 뇌물수수 스캔들에 연루돼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심지어 브라질 좌파의 기수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존경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룰라 전 대통령도 연루 혐의를 받고 있다. 호세프는 이 스캔들과 관련해 룰라가 수사를 받게 되자 그를 수석장관에 임명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종의 ‘방탄 공직 임명’을 시도한 셈이다. 이런 무리한 방식으로 룰라를 보호하려고 했던 호세프의 반격은 여론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결국 수석장관 임명은 취소되고 호세프와 룰라가 동시에 정치적인 타격을 입었다.
재정 적자 불어나고 성장률 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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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와 달리 원칙과 고집으로 일관타협을 모르는 원칙주의자인 호세프의 단호한 성격도 요인의 하나로 지적된다. 호세프는 젊은 시절 질풍노도의 시대를 보냈다. 20세 때인 1967년 브라질 사회당의 한 분파인 ‘노동자의 정치학(POLOP)’이라는 조직에 가담해 본격적으로 좌파활동을 시작했다. 이 조직은 사회주의를 완수하는 방법을 놓고 분열했다. 제헌의회 구성을 위해 매진하자는 파와 무장활동을 벌이자는 파로 나뉜 것이다. 호세프는 무장활동을 선호했다.호세프는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했으며 좌파 군사조직인 민족해방사령부 소속으로 군부독재에 대항하는 게릴라 조직에 가담하기도 했다. 노조에서 활동하며 ‘피케트’라는 이름의 좌파 매체에서 편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브라질 언론은 호세프가 청년기에 조직업무에만 가담했다고 보도했으나 일부에선 무기를 직접 들기도 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런 활동으로 호세프는 1970년부터 2년 간 감옥생활을 했다.호세프는 자신의 사상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실용적인 자본주의로 바뀌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자신의 급진적 활동에 대해서는 긍지가 있다. 이 시절에 대해 호세프는 2005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는 더 나은 브라질을 건설하기 위한 꿈에 동참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게 우리의 특징을 만든 건 아니다. 우리는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과감하게 나섰다는 게 우리들의 특징이다.”사실 호세프는 2세 좌파 정치인이다. 그는 1947년 불가리아에서 이민 온 페드루 호세프와 농장주의 딸로 학교 교사였던 지우마 제인 다 시우바 사이에서 벨라 호리존테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1920년대 불가리아 공산당에서 활동했으며, 정치적 박해를 피해 1930년대에 브라질로 이주했다. 변호사이자 기업인으로서 성공해 재산을 모았다. 이런 핏줄과 전력의 호세프는 전임 룰라와 달리 타협과 협상 대신 원칙과 고집으로 일관했다는 평이다. 룰라가 중도우파까지 모아 탄탄한 정권을 유지한 데 비해 호세프는 자신의 고집으로 스스로 정치 영역을 좁혔다는 평가를 받는다.이런 다양한 이유와 함께 중남미 전역에서 좌파가 쇠퇴하는 하나의 도도한 흐름도 호세프의 퇴장에 일조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중남미 국가는 지난 10년 간 ‘핑크 타이드’로 불리며 중도좌파 정권이 하나의 조류를 이뤘다. 하지만 2013년 무렵부터 중남미 전체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인기가 떨어지는 추세다. 산유국 베네수엘라는 경제 실정으로 국민이 정권에 등을 돌리고 다음 선거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브라질에서 탄핵 사태가 생긴 것이다. 핑크 타이드가 가고 이제 블루 타이드가 새롭게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