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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업계 新격전지 드론 시장] 아마존·구글·DJI 총성 없는 전쟁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상업용으로 빠르게 확산 … AI·IoT와 연계, 4차 산업혁명 기폭제 될 것

▎중국 선전 DJI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드론 시연을 관람하는 방문객들. / 사진:중앙포토
세계 최대 물류회사 중 하나인 미국 UPS가 9월 22일(현지시간) 무인항공기(드론)를 이용한 첫 시험 배달에 성공했다. 900g 짜리 아동용 의료용품을 싣고 8분 거리를 비행해 배달하는 임무였다. UPS는 드론 제조 전문회사인 사이피웍스에 지분을 투자해 드론 배달 사업을 준비해왔다. UPS는 시험 배달과 관련 “기술 개발 덕분에 배송비를 1마일(약 1.6㎞) 당 5센트 수준으로 낮췄다”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항공국(FAA)은 최근 상업용 드론 운행을 허가해 미국 내 드론 배달 시장 경쟁에 불을 붙였다. 재해 발생 때 구조용 드론만 허가하던 기존 입장을 바꿔 이륙 허가를 별도로 받지 않아도 배달할 수 있도록 했다. 드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업계 경쟁도 치열해졌다. 구글은 최근 음식 체인 ‘치폴레’와 제휴를 맺고 버지니아공대에서 시험 배달에 들어갔다. 온라인 유통 강자 아마존, 유통회사 월마트도 드론 택배 실험에 한창이다.

2025년 시장 규모 91조원 전망


항공 업계 신(新)시장 격인 드론의 전성시대다. 과거 드론은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비행 물체였다. 하지만 기술 진화에 따라 군사용에서 상업용으로 쓰임새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최근엔 물류·농업·환경보호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혔다. 전문가들은 드론산업도 자동차·스마트폰 못지않은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본다. 일본 야노경제연구소는 2020년까지 세계 드론 시장 규모가 24조6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다. FAA는 좀 더 나갔다. 2025년까지 820억 달러(약 91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세계는 드론 시장 선점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미국은 아마존·구글을 앞세워 드론 배송 상용화 시대를 앞두고 있다. 중국도 세계 민간용 드론 시장의 70%를 차지한 DJI를 앞세워 공세의 고삐를 조인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센서·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을 접목한 드론이 4차 산업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드론 기술은 미국·중국이 앞서있다. 특히 군사용 드론 시장을 미국이 선도하고 있다. 미국은 1962년부터 고(高)고도 정찰기인 U2가 당시 소련에 의해 격추된 사건을 계기로 군사용 드론 개발을 본격화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등 실전에서 드론을 활용할 정도다. 현재 스텔스·수직이착륙 기능을 갖춘 첨단 드론 7000여대를 운영 중이다. 2019년엔 스스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인공지능 드론을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도 2025년 실전 배치를 목표로 군사용 드론 자체 개발에 나섰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드론산업을 키운 대표적인 나라다. 1996년에 드론 전용 비행구역을 설정하고 7㎏ 이하 무인기는 조종사 자격증명이 필요없도록 했다. 최근 안전·보안 문제로 드론 규제를 강화하기까지 20년 가까이 ‘규제 없는 자율성장’을 한 셈이다.

중국 드론산업을 상징하는 회사가 DJI다. 2006년 창업한 DJI는 지난해 1조1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선 비상장 회사인 DJI의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약 1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세계 민간 드론 시장에서 2위(프랑스 패럿)·3위(미국 3D로보틱스)와 격차를 크게 벌려놓고 달리는 ‘압도적’ 1등이다. 창업자 왕타오(36)는 드론 생태계를 구축하려고 한다. 애플의 아이폰처럼 일단 생태계를 탄탄하게 구축하면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본다. 지난해 12월 선전, 올 3월 한국 홍대입구, 10월 초엔 홍콩 코즈웨이베이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세웠다.

“한국 드론산업, 중국에 10년 뒤져 … 정부 정책은 20년”

DJI의 야심을 뒷받침하는 건 탄탄한 기술력이다. DJI는 드론의 두뇌 역할을 하는 ‘비행 제어장치(flight controller)’와 모터가 흔들리는 비행 환경에서 카메라를 일정한 기울기로 유지시켜 주는 ‘짐벌(gimbal)’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갖고 있다. 전 세계 직원 6000명 중 2000여 명이 연구개발(R&D) 인력일 정도로 ‘기술을 위한, 기술에 의한, 기술의 회사’다. 지난 8월 DJI 본사 14층 사무실을 방문했다. 파티션을 없앤 사무실엔 갓 스물 넘어 보이는 청년이 대부분이었다. 슬리퍼를 신고 목베개를 한 채 일하는 여직원, 반바지 차림으로 서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 덥수룩한 수염에 문신을 한 채 양반다리로 컴퓨터 모니터를 지켜보는 직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마이클 페리 DJI 부사장은 “완전히 새로운 드론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경험없는 사회 초년생을 많이 뽑는다”고 말했다.

중국이 드론에 일찌감치 길을 터준 데 비해 미국은 군사용에는 문을 열고, 상업용은 통제하는 정책을 펴왔다. 아마존을 비롯한 유통 업체가 드론 택배를 허용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미국 정부는 안전·보안 문제를 이유로 상당 기간 규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다 최근 상업용 드론 운항을 허용하는 규정을 발효해 드론산업이 급팽창할 토대를 마련했다. 이항구 선임 연구위원은 “미국의 조치에는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깔려있다. 미국의 규제 완화로 드론 시장 선점을 위한 각 국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은 드론 분야에선 한 발 뒤쳐져 있다. 한국은 재난 구조, 산불 감시 등에 쓰는 산업용 드론을 판매하는데, 시장 규모가 100억원에 불과하다. 1200여개 드론 제조 업체가 등록돼 있지만 제대로 매출을 내는 곳은 20~30곳에 불과하다. 기술이 뒤지는 것은 아니다. 드론 특허는 세계 5위, 군용 기술로는 세계 7위 수준이다. 하지만 보안 문제로 군사용 드론의 상업화가 더딘 편이다. 김인화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부본부장(상무)은 “센서·통신장비 등 핵심부품의 국산화가 더디고 소프트웨어도 해외에서 수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드론 시장이 급성장하는 만큼 국내 업체가 과감하게 기술 투자를 해야 시장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0여년 간 드론산업 육성에 관해 이렇다 할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 5월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드론 관련 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정도다. “중국에 비하면 드론산업은 10년, 정부 정책은 20년 뒤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드론 생태계 확산을 위해선 현재 18곳에 불과한 드론 비행 전용구역을 대폭 늘리고,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는 시험 비행장을 조기에 건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355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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