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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의 ‘차이나 인사이드’] 호랑이(고위직 관료)든 파리(하위직 관료)든 다 때려잡는다? 

 

김재현 농협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 부연구위원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 절반의 성공... 공산당 체제 유지에 도움되지만 부패 척결은 요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려와”

“네?”

“그냥 자리로 돌아가라니까.”

2007년 북경대 MBA 수업 도중, 한 한국 유학생과 교수와의 대화 내용이다. 전략수업에서 한국 유학생이 발표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중국 경제가 중국 공산당의 탁월한 영도 아래 고속 성장해왔다”고 말하는 순간, 북경대 교수는 단호한 어투로 자리로 들어가라고 한국 유학생에게 말했다.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서서히 분위기를 파악했다. 캐나다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온 30대 후반의 젊은 교수는 공산당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최근 들어 성장이 둔화됐지만, 그동안 중국 경제가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국내에서도 중국 공산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자주 눈에 띈다. 당-국가 체제에서 일사분란하게 행정이 집행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원 배분이 이뤄지니 국가 운영의 효율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중국인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다. 그러나 앞에 언급한 북경대 교수처럼 중국의 엘리트 중에는 중국 공산당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도 많다. 비판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의 공산당 지지에는 전제 조건이 걸려 있다. 바로 경제 성장이다.

공산당 지지의 전제는 경제 성장

중국인들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자발적으로 중국 공산당에게 위임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경제가 성장해서 월급이 오르고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는데, 굳이 집권당에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다. 1억 명이 훨씬 넘는 중국 중산층이 얌전히 있는 이유다. 이렇게 보면 중국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빠르게 달려야 하는 자전거와 같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의 후진타오 정부 시절, 중국 정부의 최대 목표는 성장률 8% 달성이었다. 성장률 8%를 달성해야 시장의 경제 주체가 나눠먹을 파이가 커지고 신규 취업자를 고용시장이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매년 대학 졸업생 700만 명을 포함, 약 1300만 명이 사회로 쏟아져 나온다. 이들이 고용시장으로 흡수되면 성장의 동력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회 불안의 씨앗이 된다. 그래서 신규 일자리 창출은 중국 공산당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다. 리커창 총리의 인터뷰를 봐도 꼭 신규 일자리 수가 언급된다.

이런 가운데 2013년 초 시진핑 체제 출범과 시작된 반부패 운동이 장기화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반부패 운동을 반대파 숙청 및 자기 세력 심기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중국의 역사 주기설로도 의미있는 해석이 가능하다. 돌이켜보면 지난 1990년대 구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가 해체되고 난 후 중국 공산당의 미래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중국 공산당은 소련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1949년 신중국 성립 후에도 소련 체제를 모델로 한 경제 성장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도 건재한 중국을 보면 중국 공산당의 미래에 대해서는 중국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1930~40년대 중국은 장제스의 국민당정부와 마오쩌둥의 공산당과의 내전 상태에 돌입했고 한편으로는 일본과의 전쟁에 직면했다. 당시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새로운 정치제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도출해낸 것이 바로 역사 주기설이다. 역사 주기설은 3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는 새로운 왕조의 건립시기, 2단계는 새로운 제도하에서의 발전모색 과정, 즉 왕조 번창시기이다. 마지막 단계는 쇠퇴부터 해체까지의 과정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단계에서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다. 그러나 구왕조 체제의 개혁과 새로운 제도의 설립이 아니라 구왕조 체제의 재생과 복제다. 역대 신왕조는 일부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으나 전체적인 구조는 이전 왕조와 큰 차이가 없었다. 2단계에서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새로운 제도로 인한 생산력 제고다. 구왕조 몰락과 함께 기득권층은 완전히 해체됐다. 또한 혁명 과정에서 경제가 붕괴했기 때문에 대규모 건설투자 등을 통한 신왕조의 경제 성장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왕조가 번창하면서 체제가 보수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특히 기득권 층의 이익이 커지면서 이들은 이제 부를 창출하기보다는 개혁 세력을 억압하고 이익을 독점하는 데에만 몰두한다. 이때 종종 조정의 미래를 염려하는 개혁세력이 나타나 개혁을 추진하며 왕조의 지속가능한 통치를 도모한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이익을 건드린 개혁세력치고 결말이 좋게 끝난 사례는 드물다. 3단계에서 왕조는 결국 해체의 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재밌는 것은 왕조는 내부로부터 붕괴되기 시작하는 것이지 외부 세력의 침략만으로 해체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중국 역대 왕조 쇠퇴 패턴은 이렇다. 우선 신왕조 기득권층의 이익이 커진다. 이들은 왕조 설립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공신들이지만, 곧 진취성을 상실한다. 또한 파이를 키우기보다는 남의 파이를 빼앗는 방식으로 부를 늘리고 곧 국가의 대부분의 부를 장악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일체의 개혁에 대해서 반대하고 개혁자들을 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일단 개혁세력이 기득권층의 이익을 건드리기만 하면, 이들은 힘을 합쳐 개혁세력을 공격하고 심지어는 죽인다. 결국 기득권층의 부패 탓에 국가와 사회의 관계는 악순환 구조로 진입한다. 이제 황제가 기득권층과 관료기구의 개혁을 통해서 사회 불만을 해소하기는 어려워지고, 결국 국가 폭력기구에 의존해서 비기득권층의 저항을 진압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진압은 오히려 더 큰 반항을 불러오기 일쑤다.

당나라 문장가 유종원(773~819)은 [봉건론(封建論)]에서 중국의 사회구조는 ‘왕권’ ‘대호(大戶)’ ‘민(民)’으로 나눌 수 있다고 여겼다. ‘대호’는 기득권층과 관료집단을 뜻하고 ‘민’은 백성을 뜻한다. 그리고 만약 황제의 개혁이 기득권층의 저항에 직면하면 백성에 의존해 저항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유종원의 해석이다. 그러나 백성에 의존해 개혁을 실시하는 동시에 백성들의 봉기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군중 심리에 잘못 불이 붙으면 언제든지 민중봉기 혹은 혁명으로 사태가 급진전할 수 있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당 간부의 부는 증가하고

시진핑 체제의 반부패 운동도 역사주기설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중국 경제의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공산당 간부를 포함한 기득권층의 부가 급팽창했다. 특히 비리를 통한 부의 축적이 늘어나면서 중국인들의 불만 역시 커졌다. 두 자릿수에 달하던 경제성장률이 6%대로 하락한 마당에 당 간부들의 부만 늘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2013년 취임 후 시 주석은 부패 척결을 위해 “호랑이(고위직)든 파리(하위직)든 다 때려잡겠다”면서 중국인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고 정권 장악력을 계속 높여왔다. 반부패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한 부패방지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부패 운동은 제한적인 성공만 거두고 있다. 실질적인 2인자로 부상한 왕치산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위 서기가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부패 공직자를 처벌하고 있지만, 제도적인 부패 방지책은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처벌된 부패 공직자는 부패 금액이 아주 크거나 줄을 잘못 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상 기득권층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은 적은 한번도 없다. 중국의 반부패 운동도 결국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김재현 - 농협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 부연구위원이다.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 베이징대에서 MBA를,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상하이교통대에서 재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1년의 중국 생활을 마치고 농협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에서 중국 경제·금융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 도대체 왜 한국을 오해하나] [파워 위안화: 벨 것인가, 베일 것인가(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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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7호 (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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