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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내는 삼성전자 지배구조 개편] 인적분할 후 지주회사 체제로 가나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자사주 활용하면 오너가 지배력 강화 … 국정 마비, 국정조사 등으로 정공법 택할 수도

삼성전자가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공식화했다. 11월 29일 이사회를 연 삼성전자는 몇몇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이 지주사 전환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발표에서 구체적인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 거론되지는 않았다. 삼성은 발표문을 통해 “중립적 입장에서 검토하겠다”고 표현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주사 체제를 포함해 가능한 지배구조 강화 방안을 두루 검토해보겠다는 의미”라며 “전략·운영·법률·세제·회계 등 경영 전반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데 최소 6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안이 거론되지 않았음에도 시장은 인적분할을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이번 ‘주주가치 제고 방안’ 발표의 단초가 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지배구조 관련 요구도 그것이었다. 11월 엘리엇은 공개 서한을 통해 “삼성전자를 투자회사(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후 투자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하라”고 제안했다. 시장은 “삼성이 가고 싶어하는 방향이지만 민감해서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웠던 방안”이라며 “엘리엇이 삼성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고 표현했다.

“엘리엇이 삼성의 가려운 곳 긁어줬다”


인적분할이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묘수로 불리는 이유는 일단 지배구조 개편에 큰 돈 들일 필요가 없어서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0.6%에 불과하다. 이건희 회장 등 오너가와 계열사 지분 전체를 합쳐도 18.45%다(보통주 기준). 회사의 주요 의사 결정에서 외국계 펀드 등 외부 세력이 반대 의견을 개진하면 제대로 맞서기 어렵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주식을 사모으기엔 삼성전자 주가가 너무 비싸다. 삼성전자 지분을 1%(164만327주)만 늘리려 해도 주당 가격을 160만원으로 치면 2조6245억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

돈 안 들이고 지배력을 높이는 인적분할의 마법은 자사주 덕분에 가능하다. 인적분할은 기존 주주들이 원래 회사와 새로 생기는 회사의 지분을 똑같이 나눠가지는 방식이다. 회사를 A와 B로 인적분할한다고 치자. 기존 회사에 3%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주주는 A회사 지분 3%와 B회사 지분 3%를 얻게 된다. 이렇게 분할되는 과정에서 자사주의 성격이 바뀐다. 회사가 보유한 자사의 주식을 가리키는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는 게 특징이다. 주요 회사 결정에 찬반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오너가 경영 지배력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회사가 둘로 쪼개지면 이야기가 다르다. 회사가 쪼개지는 과정에서 지주회사는 사업회사의 자산을 가져오게 된다. 사업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도 여기에 포함돼 함께 넘어온다. 지주회사가 확보한 사업회사의 자사주는 별개 법인의 지분이므로 의결권이 살아난다. 자사주 비중이 12.78%(보통주 기준)인 삼성전자의 경우 삼성전자 투자부문(지주회사)이 삼성전자 사업부문에 대해 12.78%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기업지배구조 원장)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사업회사의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사주가 ‘요술 방망이’라는 얘기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적분할 후 오너 일가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카드는 주식 교환이다. 공개 매수를 통해 오너 일가가 보유한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주식을 삼성전자 투자회사의 주식과 교환하는 것이다(현물 출자). 통상 사업회사의 지분가치가 투자회사보다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놓은 사업회사 지분율보다 받는 투자회사 지분율이 높아진다. 이렇게 확보한 투자회사의 신규 지분에 기존 투자회사 지분을 더하면 오너가는 기존 삼성전자 지분율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투자회사 지분율을 갖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사업회사에 대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인적분할을 통해 자사주를 요술 방망이처럼 휘두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 거다. 야당이 ‘인적분할로 확보한 자사주는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상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달 사이 크라운제과·매일유업·오리온·현대중공업 등이 일제히 인적분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혼란스러운 국정 때문에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가 멈춘 상태이지만 국정이 수습되면 입지가 약해진 여당으로선 야당의 요구대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상황 파악이 빠른 일부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인적분할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삼성이 스스로 “지주사 전환 검토에 최소 6개월이 걸린다”고 밝힌 대목을 두고 지배구조 강화 일정을 사실상 미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정 운영이 사실상 멈춰서고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조사 증인으로 출석하게 돼 있는데다 야당이 다수인 국회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보험업법 개정안 등 삼성을 타깃으로 한 법안을 대거 발의해놓은 상태다. 증권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경제민주화 법안이 통과 되기 전에 인적분할안을 재빨리 마무리 짓는 방식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론화를 통해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시장은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 전환을 꾀할 거란 루머가 시장에 돈 11월 29일 하루에 삼성전자 주가는 1.67% 오른 167만7000원을, 그룹 전체의 지주사가 될 걸로 기대되는 삼성물산은 3.7% 급등한 13만9000원을 기록했다.

야당은 경제민주화 법안 무더기 발의

전문가들은 최근 대기업들이 속속 인적분할로 지배력 강화에 나서는 상황과 이를 규제하려는 야당의 움직임에 대해 “무리한 입법을 하기보다 지배구조 개편을 시장을 통해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인적분할로 확보한 자사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해외에도 사례가 없는 일”이라며 “이보다는 자사주 의결권을 특정 주주가 유리하게 활용하지 못하도록 독립된 이사회를 꾸리게끔 하고, 이사회 활동에 대한 감시를 더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명현 교수는 “대기업 오너가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한국 경제 전반을 볼 때 나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오너의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 시스템, 이들이 경영권을 통해 사적 이익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막는 감시 장치 도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363호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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