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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
트럼프는 수퍼맨이 아니다이런 전망과 분석을 단숨에 뒤집은 것은, 거칠게 말하면 ‘트럼프를 향한 기대’ 뿐이다. 케인시안처럼 행세하는 트럼프가 인프라 투자에 쓰겠다는 돈 1조 달러(약 1178조원)에 거는 기대다. 하지만 트럼프의 ‘돈 풀기’에 거는 기대가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의 재정 정책은 언제,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정책 여력과 정책 시차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연간 1100억 달러(약 129조원)씩 10년간 1조2000억 달러의 연방정부 지출을 자동 삭감하는 시퀘스터를 2013년 3월부터 발효 중이다. 트럼프는 시퀘스터를 폐지하고 싶어하지만,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지난 미국 대선과 함께 치러진 미국 상·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의회의 과반을 확보했기 때문에 트럼프에 힘이 실릴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2011년 8월 정부 부채 한도를 상향하되 자동삭감(시퀘스터)을 통해 정부 지출을 감축하도록 한 예산통제법(Budget control Act of 2011) 재정을 주도한 것이 공화당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때문에 이 문제를 둘러싸고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가 긴 조율 과정을 거치면서 2017년 상반기 이후에나 재정 공약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상반기 내에 재정을 푼다고 해도 대략 3~4분기 이상 걸리는 정책 시차를 감안하면 2017년에 재정에 따른 경제 지표 호조를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월스트리트저널(WSJ)는 “트럼프의 인프라 투자 계획은 전액 민간자본에 의존한다”며 “충분한 자금이 마련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감세 정책도 마찬가지다. 그간 미국이 헬리콥터로 뿌린 막대한 달러는 차치하더라도, 전통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이 대규모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를 늘리는 것에 동의할지 불확실하다.또 하나의 변수는 트럼프 행정부와 연준의 긴장 관계다. 2018년 2월 임기가 끝나는 옐런 의장은 비둘기파에 속한다. 그는 2016년 10월 보스턴연방준비은행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강한 총수요가 유지되면서 고용이 활기를 띠는 고압경제를 지속하는 것이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에 형성된 부정적 영향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고압경제란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경제 상태, 다시 말해 만성적인 호황 경제를 뜻한다. 옐런의 말을 쉽게 풀면, “물가가 오르더라도 금리를 천천히 올리겠다”는 말이다.물론 연준이 정부 재정정책에 따라 예상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되면 긴축 모드(금리 인상)로 전환할 수 있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흔히 미 중앙은행은 행정부로부터 독립성을 갖기 때문에 트럼프가 연준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잘못된 상식이다. 미국의 어떤 법에도 연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은 없다. 미 연준의 독립성은 법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며 앨런 그린스펀 시절에 관례화된 것일 뿐이다. 또한 미 의회가 연준의 독립성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한마디로, 현재로서는 누구도 미 연준의 향방을 알 수 없다는 얘기다.서두에 밝혔듯이, 모든 것은 트럼프에 달렸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 대규모 재정을 통해 돈을 뿌리면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이와 상관없이 연준은 늘 그랬듯이 매파와 비둘기파 위원들이 번갈아 “금리를 올린다” “올리지 않는다”며 시장 구두개입에 나설 게 뻔하다. 그때마다 세계 금융시장은 출렁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금리 인상 버튼을 세 차례 이상 누르기엔 미국 경제 체력이 그리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수퍼맨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