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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카드사태·금융위기 때 효과 톡톡추경은 역대 정부가 즐겨 쓴 카드였다. 이유가 있다. 성장률을 쉽게 올릴 수 있어서다. 추경은 기본적으로 자본(재정) 투입이다. 재정지출이 늘면 산출은 증가하게 마련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추경이 편성된 이듬해 경제 성장률은 대체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 어떻게 예산을 쓰느냐에 따라 추경 효과는 달라진다. 경기 부양은커녕 재정건전성만 훼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대한민국 재정 2016』에 따르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추경은 95차례 편성됐다. 지난 68년 동안 추경이 편성되지 않은 해는 13년에 불과하다. 외환위기 이후 올해까지 18차례에 걸쳐 130조원 넘는 추경이 편성됐다.98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추경은 경기 불쏘시개 역할을 톡톡히 했다. 98년 김대중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25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그 결과 1998년 -5.5%이던 경제성장률은 이듬해 11.3%로 껑충 뛰었다. 2003년에는 카드사태에 따른 내수 침체와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두 차례 추경이 편성됐다. 역대 세 번째로 많은 7조5000억원이었다. 이듬해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2%포인트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진 2009년에는 이른바 ‘수퍼 추경’이 편성됐다. 2008년 국채 발행 없이 4조8000억원의 추경 예산을 썼던 정부는 2009년 21조5000억원이나 되는 국채를 발행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결국 2%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던 2009년 경제성장률은 0.7%를 기록하며 선방했다.
추경 예산 중 35%는 펑크난 세수 메우는 데 써
정부 경기 예측 능력 부족이 부른 추경추경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던 이유가 또 있다. 추가된 예산이 일자리를 만들고 경기를 부양하는 데 쓰이기보다는 펑크 난 세수를 메우는 데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1998~2013년 편성된 추경 예산 111조4000억원 중 세입결손을 보전하는데 39조8000억원(35.7%)이 들어갔다. 이에 대해 박용주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은 “추경의 취지에서 벗어나 세입 전망의 오차를 고치기 위한 추경이 잦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반복적으로 경기를 낙관적으로 예측하고 과잉 예산을 짠 후, 예상한 만큼 세수가 들어오지 않자 추경 예산으로 메웠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조세재정연구원 관계자는 “추경이 잦다는 것은 정부가 경기 예측에 실패하고 국회는 본 예산 심사에 무능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경의 성패를 가르는 잣대는 간단하다. 경기 부양 효과가 있는 분야에 빠르고 과감하게 집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리 인하와 감세 등 정책 조합(policy mix)이 이뤄지면 효과는 배가된다.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이 추경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2009~2015년 추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된 국채는 45조원에 달한다. 정부가 경기 예측 능력을 높이고 국회가 본예산을 더욱 엄정하게 심사해 추경을 최소화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추경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추경이 재정 땜질로 성장률을 조금 올리는 용도로 쓰여서는 곤란하다. 김진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추경은 일회성 지출이 많아 재정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본예산을 면밀히 짜고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