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 상관없이 돈·물질에 집착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불안 증세를 보인다면 ‘과소유(過所有) 증후군’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과소유 증후군은 미국의 문화예측 전문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월먼이 지난 2015년 같은 제목의 책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빈부와 상관없이 돈이나 물건을 더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질·우울감·불안감 등의 증세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돈에 집착하거나 예민해질 때 나타나는 증세다. 입적한 법정 스님이 생전에 설파한 '무소유(無所有)'의 반대 개념인 셈이다 .월먼은 미국의 대표적인 카피라이터로 꼽히는 어네스트 엘모 컬킨스의 말을 인용해 “과소유 증후군이 나타나는 원인은 소비중심주의 사회에 있다”고 봤다. 컬킨스는 과소유 증후군이 나타나게 된 현상은 자본주의 경제의 과잉 생산보다 과잉 소비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기업들이 오래 버틸 수 있는 물건이 아닌 일정한 기간만 사용하면 고장 나게 되어 있는 제품을 생산해 소비자들이 낭비하고 과시하기 좋아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일회용 소비문화가 습관처럼 자리 잡으면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월먼은 이런 진단을 토대로 “대부분 사람들은 더 소유하는 것에 집착하는 과소유 증후군을 경험한다”고 밝혔다.서경현 한국건강심리학회장(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은 “사람들은 대체로 못 가진 것을 채우고 싶어하는 소유욕이 생겨나고,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욕망에 젖어들면서 스스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돈을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면서 경제적 행복감은 뚝뚝 떨어진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경제적 행복지수’는 38.4점이다. 2015년 하반기보다 6.2점 떨어졌다. 2011년 하반기(37.8점)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경제적 행복지수는 소득 안정성, 상대적 경제 상황, 생활수준의 향상 가능성, 경제적 평등도, 경제적 불안 5개 항목과 전반적인 경제적 행복감을 물어보고 이를 지수화한 것이다. 특히 수명이 길어지고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돈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진다. 리서치전문기업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전국 19~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노후생활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라는 질문(중복응답)을 한 결과, 74%가 ‘돈’이라고 답했다. 그 다음이 건강(68.3%)이었다.최근 젊은층 사이에서는 ‘작은 사치’가 일종의 트렌드처럼 확산하고 있다. 작은 사치는 경기불황으로 지갑이 얇아진 상황에서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 대신 명품 립스틱을 구입하며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구입하는 소소한 사치로 이어진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가 짧은 시간 동안 성장을 하면서 빈부격차가 생기고 이에 따른 비교심리가 강해졌다”며 “특히 젊은층은 유행에 뒤처지지 않도록 물건을 사고, 이를 남에게 과시하면서 행복감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도 소비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해 희소성 가치가 더 있는 한정판을 판매하는 마케팅을 벌이는 것도 증후군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가령 나이키골프는 지난 2월 10일 세계 최고 농구선수로 꼽히는 에어 조던 농구화의 리미티드 에디션 골프화인 에어조던1 골프화를 선보였다. 다음날 11일 오전부터 오프라인 매장인 압구정 프리미엄 스토어를 비롯한 4개 매장에서 총 720족 한정 수량으로 판매된 이 골프화는 한 시간 만에 모두 완판됐다.
마음과 생각 비우는 훈련해야과소유 증후군은 대부분 자신의 재무 상황을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과거와 비교할 때 나타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성진 부산메리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심리학 박사는 “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는 현재 나의 재무상태를 비관하고 더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우울과 불안에 과소유 증후군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경현 회장은 “증후군이 의학적 질병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리적·신체적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며 “심해지면 소유에 그치지 않고 물건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버리지 못하는 저장강박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과소유 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은 없을까. 곽금주 교수는 “생각을 비우는 훈련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소비하고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 생각을 바로 멈춰야 한다”며 “남들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겠다는 마음보다 차라리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일을 해보는 내적 체험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각을 멈추는 훈련은 짧은 시간에 대뇌에 휴식을 주는 훈련법이자 휴식 능력을 되찾게 한다. 최성진 박사는 “욕구는 아무리 만족시켜도 일시적이고 더 좋은 상황들을 찾아가게 된다”며 “소유를 하기 전에 내가 뭘 원하는지, 심리적인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일시적인 욕구인지를 생각하는 것도 증후군을 이겨내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이와 관련 이코노미스트는 월먼의 책 내용과 한국건강심리학회장의 자문을 토대로 ‘과소유 증후군 자가 진단표’를 만들었다. 10개의 항목 중 ‘예’가 3개 이하면 양호, 4~6개인 경우에는 의심, 7개 이상이면 전문가 상담을 받아 보는 것이 좋다.
[박스기사] 과소유 증후군 자가 진단표▶ 소유하고 있는 것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진 적이 있다.
① 예 ② 아니오▶ 여행이나 이사를 가려고 할 때 짐이 너무 많다고 느낀 적이 있다.
① 예 ② 아니오▶ 언젠가 쓰일 것처럼 생각하여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① 예 ② 아니오▶ 집안에 온갖 잡종사니 천지라는 말을 듣곤 한다.
① 예 ② 아니오▶ 옷장 안에는 최근 몇 년 간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들이 꽤 있다.
① 예 ② 아니오▶ 긴장을 풀기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쇼핑하는 경우가 있다.
① 예 ② 아니오▶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① 예 ② 아니오▶ 집에 있는 가구서랍은 열면 물건이 튀어나올 만큼 가득 차 있다.
① 예 ② 아니오▶나의 과소비를 제대로 조절할 수 없다.
① 예 ② 아니오▶ 산업이 발전하여 소유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① 예 ② 아니오※‘예’가 3개 이하면 ‘양호’, 4~6개 ‘의심’, 7개 이상이면 ‘전문가 상담 요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