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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일 기자의 ‘K-뷰티 히어로’(2) | 권오섭 엘앤피코스메틱 대표] 마스크팩 하나로 연매출 4000억원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
올 1월 누적 판매량 8억 장 돌파... 220여 종 생산, 매출 60%는 해외에서

‘지구 네 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 여의도의 7배에 달하는 면적, 에베레스트산의 360배에 이르는 높이….’

마스크팩 전문 브랜드 메디힐이 세운 판매 기록을 알기 쉽게 환산한 수치들이다. 2012년 탄생한 메디힐은 2015년 1월 누적 1억 장 판매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 3월 6억 장, 8월 7억 장에 이어 올해 1월 8억 장을 넘어서며 마스크팩 최다 판매라는 자체 기록을 경신했다.

메디힐 마스크팩을 개발해 전세계 26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권오섭(58) 엘앤피코스메틱 대표는 “마스크팩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화장품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8억 장으론 아직 부족합니다. 적어도 80억 장은 팔아야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마스크팩은 화장품 사면 몇 개씩 끼워주던 사은품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국내에서 5000억원, 중국에서 7조원 규모로 성장했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죠. 우리의 성공을 계기로 변두리 군이었던 마스크팩이 주류로 가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2009년 설립된 엘앤피코스메틱은 마스크팩 시장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현재 220종이 넘는 제품을 생산한다. 단백질 세럼 한 통을 통째로 담은 제품을 비롯해 앰플과 마스크팩을 2단계로 쓸 수 있는 제품, 머드팩을 시트로 구현한 제품, 골든칩이 피부의 혈점을 자극하는 프리미엄 제품 등 새로운 형태의 마스크팩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고급화 전략으로 승부수


▎N.M.F 아쿠아링 앰플 마스크는 메디힐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제품이다.
메디힐 마스크팩의 인기에 힘입어 엘앤피코스메틱은 지금까지 괄목한 만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설립 당시 3명뿐이었던 직원은 어느새 200명을 훌쩍 뛰어넘었고, 지난해에는 연매출 4000억원을 올렸다. 2012년 75억원에서 무려 50배가 넘는 성장률이다. 이런 급성장의 배경에는 권 대표의 고급화 전략이 숨어 있다. 대부분의 화장품 업체가 비싸봐야 2000원짜리 마스크팩을 내놓을 때 3000원이 넘는 제품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고만고만한 제품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권 대표는 “1000원에 서너 장씩 판매되던 걸 한 장에 3000원씩 받는다고 하니 주변에서 미친 거 아니냐는 소릴 들었다”며 “좋은 제품을 만든다면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고객들이 반드시 찾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엘앤피코스메틱은 화장품 개발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내에만 2000개 정도 되는 화장품 제조사들이 너도나도 마스크팩을 만들고 있는데요. 이들보다 앞서 가려면 우리만의 제품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한양대학교 부설로 마스크팩 부직포 연구소를 만들었고, 오는 4월 완공될 신사옥에는 마스크팩 전용 연구소도 설립할 예정입니다. 지난해 매출이 4000억원이지만 영업부 직원은 20명밖에 안 됩니다. 영업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제품만 좋으면 영업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고려대학교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권 대표는 지난 24년간 화장품 업계에 몸담아온 자타공인 ‘화장품쟁이’다. 그가 화장품과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권 대표의 어머니는 1969년 왕생화학이란 화장품 업체를 설립한 여성 사업가였다. 당시 왕생화학에서는 아봄이란 브랜드명으로 남성용 스킨로션과 헤어 제품을 생산했다. 권 대표는 “어머니는 어엿한 연구원이나 대학교수 같은 학자가 되길 원하셨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업을 잇고 싶었다”며 “1992년 어머니의 지인이 운영하시던 회사에 취직하게 되면서 화장품 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4년간 화장품을 경험한 권 대표는 1996년 국내 최초의 화장품 프랜차이즈 업체를 차렸다. 당시 방문 판매나 직영 판매가 대부분이었던 화장품 업계에선 찾아볼 수 없던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아모레퍼시픽 같은 1등 화장품 회사가 되려면 접근 방식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조로는 힘들지만 판매로는 가능할 것 같았죠. 화장품을 많이 팔려면 사람들 눈에 잘 띄는 대로변에 매장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2년 만에 회사는 쫄딱 망했다. 5년 뒤 코스라인이라는 색조 화장품 회사로 재기를 노렸지만 그마저도 매각을 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두 번씩 사업에 실패하면서 이론보단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사업이 될 거 같았지만 매장에서 직접 일해 본 경험도 없었고, 화장품을 제대로 만들어 본 적도 없었으니 잘 될 턱이 없었죠. 지금 뒤돌아보면 수업료를 톡톡히 치렀다고 생각해요.”

차기 전략은 철저한 현지화


하지만 권 대표에게 위기는 곧 기회였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깊은 시름에 잠겨있던 그의 눈에 마스크팩이 들어왔다. 코스라인을 운영할 당시 내놨던 2000원짜리 한방 마스크팩이 꾸준히 팔렸던 것이 기억났다. 이후 권 대표는 마스크팩 사업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는 모 화장품 업체에 로열티를 내면서 마스크팩을 판매했고, 2012년 자체 브랜드 메디힐을 만들어 대박을 쳤다. 권 대표는 “8000여 개 상품을 취급하는 올리브영에서 2015년 판매 1위를 기록했다”며 “일반 화장품 전문점은 물론 아시아나항공·중국동방항공 등 기내 면세점, 드림 크루즈 면세점, 이마트·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에도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엘앤피코스메틱 매출의 60%는 해외에서 나온다. 탁월한 제품력을 바탕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지역은 중국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티몰에서 2015년에 이어 2년 연속 광군제 기간 인기 브랜드 1위를 차지했다. 올해는 중국을 넘어 일본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권 대표는 “우리의 다음 전략은 철저한 현지화”라며 “바로 이번 주부터 일본에서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메이드 인 재팬’ 마스크팩을 만들어서 일본 시장에 안착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2020년 동경올림픽이 열리면 일본 경기는 앞으로 더욱 좋아질 겁니다.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고요.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해 나갈 계획입니다. 화장품도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해요. 일본을 시작으로 우리의 문화를 전세계 구석구석에 퍼트리고 싶습니다.”

1378호 (201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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