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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미래] 현대차의 골든타임 ‘지금 변해야 산다’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경쟁사 공세에 앞마당(내수 시장) 야금야금 빼앗겨 ... 보호 무역과 기술 혁신의 파고 대응 전략도 관전 포인트

현대자동차는 그 자체가 ‘주식회사 한국’ 같은 기업이다. 부족한 기술력과 자본에도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밀어붙였다. 포춘은 “도요타는 일관성, 혼다는 혁신, 그리고 현대차는 도전정신과 속도로 성공했다”고 표현했다.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을 앞세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파고들어 결국 글로벌 톱5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대차가 지금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내수 시장 점유율은 낮아지고, 해외에선 보호 무역의 장벽이 높아진다. 여기에 기술 혁신의 파도가 밀려오며 자동차가 전자제품으로 변화 중이다. 어쩌면 지금이 현대차에는 골든타임인지 모른다. 현대차는 이번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 변화의 시대를 맞은 현대차의 현황과 대응을 알아봤다.


▎현대차 연구원들이 마북연구소에서 친환경 차량을 점검하고 있다.
한국에서 첫 번째 자동차를 구매하는 나이는 대부분 30대다.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꾸려갈 시기다. 이때 국산차를 사느냐, 수입차를 사느냐에 따라 40대, 50대의 차량 구매 패턴이 정해진다. 지금까지는 현대차 구매율이 가장 높았다. 가격 대비 성능에서 따라올 경쟁군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현대차의 위상이 많이 내려갔다.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층은 ‘한국 사람은 국산차를 타야 한다’고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모델을 국적에 구애받지 않고 선택한다. 이들은 더없이 까다로운 소비자이기도 하다. 제품이 불만이 있으면 곧장 표현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블로그, 브랜드 홈페이지, 인터넷 동호회에서 문제를 이야기한다. 내용이 구체적인데다, 회사의 대응 방식에 대해서까지 생생하게 현장 중계를 한다. ‘불통의 현대’라는 지적을 받아온 현대차 담당자들은 지난 수년간 이들과의 소통 방법을 고민해 왔다. 2014년 10월 현대차가 국내 커뮤니케이션 팀을 만든 배경이다. SNS, 고객 불만, 동호회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부서다. 설립 초기엔 강력하고 명확한 메시지 전달에 주력했다. 국내용과 수출용 차량의 안전에 차이가 있다는 풍문에 대한 대응이 좋은 예다. 같은 라인에서 같은 강판과 부품을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차 대 차 충돌 테스트를 진행했다. 북미 소나타와 국내 소나타를 사람들 앞에서 충돌시키는 이벤트였다. 오해를 풀기 위한 이벤트였지만 한계가 있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목격자들의 절반은 받아들이고 절반은 안 받아들였다”며 “현대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보고서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해나가야 할 소통의 본질은 진정성과 지속성이다. 하루 이틀 만에 돌파할 문제가 아니다. 진심을 담아서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지난 2월, 현대자동차는 국내영업본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주목할 부서는 새로 등장한 국내영업전략실과 국내상품실이다. 국내영업전략실은 미래 판매채널 및 시장 환경 변화 대응전략을 짠다. 국내영업전략팀, 고객경험전략팀, 통합VOC팀, 국내커뮤니케이션팀으로 구성됐다. 시장 수요를 파악하며 마케팅 전략을 만드는 역할이다. 현대차 국내영업본부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인 셈이다. 국내상품실은 국내상품전략팀과 국내상품운영팀으로 구성됐다. 중장기 상품, 조직 및 인원 역량 강화를 통한 제품경쟁력 확보가 주요 업무다. 조직 개편의 책임자는 이광국 국내영업본부장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취임 이후 “혁신과 변화만이 현대차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라고 강조해왔다.

조직 개편에서 주목할 점은 ‘안티 현대’에 대한 자세다. 현대차는 압축 성장한 기업이다. 효율성을 중시하며 빠른 성장을 강조하는 사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현대차 관계자는 “영업전략실에서 현대차에 대한 불만을 직접 듣고 해결까지 할 수 있는 구조”라며 “현대차에 대한 고객 불만과 문제점을 본부장이 직접 풀어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회사 간부와의 미팅 자리에서 “현대차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 여론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며 “국내 완성차 업체 평균 불만 발생률이 12%인데 반해 현대차는 24%에 달하는데, 이것이 지금의 현대차의 위치”라고 말했다.

현대차 고객 불만 발생률 24%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왼쪽 세번째)이 척 로빈스 시스코 CEO와 커넥티드카 공동 개발에 동의한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조직을 개편하며 이미지 개선을 위해 고민하는 것은 그만큼 위기감이 높아서다. 시장에서 나타나는 징조가 심상치 않다. 수년째 국내 시장 점유율과 영업이익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5조1935억원으로 2015년보다 18.3% 감소했다. 현대차 영업이익은 2013년 8조3150억원을 기점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4년 7조5500억원, 2015년 6조3580억원으로 줄더니 결국 5조원대로 내려갔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조 파업으로 생산에 차질이 있었고, 러시아와 브라질 경기 침체로 판매가 부진한 탓에 영업이익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초대형 리콜 사태도 벌어졌다. 그랜저, 소나타 등 현대·기아차의 5개 차종에 장착된 세타2 엔진의 제작 결함이 발견돼 차량 약 17만대가 리콜된다. 그동안 현대차는 국내 차량의 경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자체조사 결과 현대차는 엔진 결함을 확인하고 4월 3일 국토교통부에 리콜계획서를 제출했다. 현대차의 리콜계획서에 따르면 세타2 엔진은 크랭크 샤프트라는 엔진 부품에 오일 공급 구멍을 만드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2013년 8월 이후에는 현대차가 엔진 이물질을 씻어내는 공정을 보완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파악됐다.

점유율도 문제다. 지난해 현대차의 내수시장 승용차부문 점유율이 36%까지 내려갔다. 2007년 50%를 넘기며 한국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자랑하던 현대차였다. 시장은 다른 업체들이 골고루 빼앗아 가고 있다. 르노삼성과 한국GM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며 중대형 차량과 SUV 시장을 파고들었다. 수입차 업체의 신차 공세도 대단했다. 수입차 스펙트럼은 이미 최고급차부터 2000만원대 중저가 차량까지 넓어진 상태다. 여기에 벤츠를 선두로 한 프리미엄 브랜드의 공략이 거세지는 중이다. 지난해 국내에 판매된 수입차는 총 22만5279대로 전년도(24만3900여 대)보다 판매량이 다소 하락했다. 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의 점유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벤츠는 지난해 수입차 최초로 5만 대 판매를 돌파했다. 2015년 4만6900대에서 5만6300대로 판매량을 1만 대나 늘렸다. BMW 판매량도 2015년 4만7800대에서 2016년 4만8400대로 늘었다. 한국GM과 르노삼성 점유율도 각각 8.7%에서 9.9%로, 4.4%에서 6.1%로 상승했다.

8년 만에 직원 임금 동결


▎현대 친환경차 아이오닉.
지난해 현대차는 앞마당을 빼앗아 가는 이들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세분화·다양화하는 소비자들의 트렌드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하반기엔 마땅히 내놓은 신차조차 없었다. 현대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이 내려간 이유다. 위기감이 커지면서 현대차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지난해 10월에는 51개 계열사 임원 1000여 명이 급여의 10%를 자진 삭감했다. 과장급 이상 간부 직원의 임금도 동결했다. 현대차 직원의 임금 동결은 2009년 이후 8년 만이다. 2월에 국내 영업 조직을 개편했고 고객과 소통 채널을 늘렸다. 판매 극대화를 통한 경쟁사 대응 차원을 넘어 고객 중심의 ‘내적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이광국 본부장은 ‘통(通)쾌한 혁신의 레이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고객을 우선으로 한, 고객의 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소통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하반기 국내 시장을 빼앗긴 원인 중 하나로 신차 효과가 있다. 경쟁 업체들이 연이어 매력적인 모델을 출시하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현대차는 올해 4종의 신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3월 초에 쏘나타 부분변경 모델을 소개했고, 6월엔 첫 소형SUV인 코나를 출시한다. 하반기에 제네시스 G70과 벨로스터 완전변경모델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중에선 SUV인 코나에 거는 기대가 크다. 소형 SUV 시장은 지난 3년간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국내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소형 SUV 모델이 없었다. 현대차는 대대적인 마케팅을 예고했다. 쌍용, 르노삼성, 한국GM에선 코나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 중이다.

해외 시장에서도 보다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러시아, 인도, 폴란드, 중국, 미국 등 각 대륙별 주요 국가에 생산기지가 있다. 지난해 러시아와 브라질 등 신흥시장의 경기 침체가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국 시장도 경기침체와 사드 정국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현대차는 그럼에도 중국에 더 많은 투자를 집중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과포화 상태인 중국 동부연안에서 벗어나 미개척지인 서부내륙 공략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는 중국 서부 유통망을 대폭 강화했다. 2018년 예정인 충칭 5공장이 완공되면 공략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현대차는 이곳에서 코나와 산타페 등 사막과 산악지형에 적합한 현지전략형 모델을 투입할 예정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 공략도 현대차의 과제다.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는 자국 보호무역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전 세계 기업을 상대로 미국 현지 공장 설립을 종용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인근 국가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판매하는 모든 제품에 ‘국경세’를 물리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지난해 9월 멕시코 공장을 건설했다. 멕시코 공장의 1차 목표는 기아자동차 생산이다. 여기에 현대차 조지아 공장이 물량을 대체 생산하는 기지 역할도 있다. 이런 멕시코 공장이 시작하자마자 커다란 암초를 만난 셈이다.

미국 보호무역 커다란 암초


현대차는 지난해 북미시장에서 31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대차 전체 매출의 33.4%를 차지한다. 지난해 미국 판매량은 78만 대다. 앨라배마 현지공장의 연간생산 능력은 37만 대로 미국 판매량의 47%를 현지생산하고 있다. 미국 밖에서 만들어 들여오는 나머지 53%가 국경세 적용 대상이다. 국경세 20~35%를 적용하면 3조2000억~5조6000억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코트라는 “미국이나 일본 자동차 업체보다 인상 요인이 더 커져 현대차의 가장 큰 경쟁력인 가격 이점이 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고 멕시코 공장 물량을 중남미 등 미국 이외의 지역으로 수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기술혁명이 가져온 스마트카 시대의 도래다. 자동차산업은 지난 100년보다 최근 10년간 더 많은 변화가 벌어졌다. 앞으로 그 시간이 더 짧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자동차는 기계가 아니라 전자제품으로 변신 중이다. 여기에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 공유경제라는 주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물론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차는 미래 모빌리티 3대 키워드로 친환경차, 자율주행, 커넥티드 카를 꼽았다. 현대차는 올 초 친환경차 전용 모델인 ‘아이오닉’일렉트릭(EV)을 선보였다. 기아차 역시 상반기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출시에 이어 내년 새로운 EV를 준비 중이다. 2020년까지 친환경차 라인업을 28개로 늘릴 계획이다. 자율주행 기술 투자도 강화하는 중이다. 현대차는 돌발 상황에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지능형 안전 기술 양산화에 집중하고 있다. 2020년까지 고도의 자율 주행차를 개발하고, 2030년엔 완전 자율 주행차를 상용화 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카 투 라이프(Car to Life)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커넥티드 카 개발 청사진을 소개했다. ‘초연결 지능형 자동차’ 개발을 위해 세계적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시스코와 협업하고, 국내외 스타트업과 오픈 이노베이션도 진행 중이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올 초 아이오닉 자율주행차가 미국 자동차공학회(SAE)가 분류한 5단계 중 레벨 4를 만족시켜 기술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받았다”며 “기술 개발 선도기업으로 올라서기 위해 글로벌 IT기업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1380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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