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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느린 뉴스, 단신 톺아보기(1) | 풀리지 않는 숙제, 건설 하도급 분쟁] 끊임없는 분쟁과 대책, 그 속에 담긴 건설업의 민낯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하도급자 보호 강화 추세 … “국내 건설경쟁력 저하 원인” 비판도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4월 17일 “3월 중에 건설업계를 대상으로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관련 불공정 행위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이날 중소 건설업체 대표들과 간담회에서 “지난해 서면실태조사 등에서 애로사항으로 부각된 하도급 대금 지급 보증관련 불공정 행위에 대해 상반기 중 집중 점검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뉴시스 3월 17일).

전문건설업계가 지난달 3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정한 건설업종 표준하도급계약서가 본격적으로 보급에 들어감에 따라 환영의 뜻을 전했다. 대한전문건설협회는 13일 “이번 개정으로 건설현장에서 지속 돼 온 불공정한 거래 관행이 개선돼 하도급 전문건설업체의 피해 예방과 권익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뉴시스 1월 13일).

대한건설협회는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정거래위원회의 '하도급대금 직불 확대방안'을 강력히 비판했다. 건협은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건설근로자, 장비업자 등에 대한 체불의 80% 이상이 하도급자와의 거래에서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뉴시스 2016년 4월 14일).


익숙한 뉴스다. 건설업계 불공정 하도급 거래에 대해 정부가 조사에 착수했고 단속 결과 몇몇 건설사가 처분을 받았다거나, 정부가 관련 규제를 새로 도입했다는 내용이다. 새롭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아 눈길을 많이 끌지 못하는 단신 중 하나다. 그러나 이렇게 단편적인 조각들도 잘 이어보면 반세기 가까이 이어온 건설 하도급 논쟁과 향후 건설산업의 생존과 관련된 긴 줄기의 일부분임을 알 수 있다.

건설 하도급 분쟁은 4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건설업계의 뿌리 깊은 병폐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도 이 문제를 개선하고자 수십 년 동안 여러 제도와 강력한 법적 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일선 공사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당 행위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각 기업의 행태, 산업의 구조, 제도의 한계 등이 맞물린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수직적 생산구조로 ‘갑질’ 많은 건설업

건설 사업은 ‘발주자-원도급자(종합건설업체)-하도급자(전문건설업체)-2차 협력자(자재, 장비업체 및 현장 근로자)’로 이어지는 생산구조를 갖추고 있다. 발주자가 한 곳의 종합건설사에 공사를 맡기면 해당 종합건설사가 각 공종별로 각각의 여러 전문건설사에 하청을 주는 형태다. 전문건설사는 각자의 역할에 따라 자재를 구매하고, 건설기계를 임대하고, 현장 근로자를 고용해 공사를 수행한다.

문제는 이 같은 수직적 구조에서 ‘갑을’ 관계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하도급 업체 간 수급경쟁이 극심한 점을 이용한 불공정 행위가 발생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지나치게 낮은 하도급 대금을 요구해 저가 수주와 채산성 악화라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처음 계약이 없던 작업을 지시하고 추가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는 불공정 행위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났다.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정부는 전문건설사를 보호하는 방향의 정책을 강화해왔다. 하도급을 줄 때는 계약의 적정성 심사를 거치도록 했다. 대금 지급 기한을 준수해야 하고, 원도급자의 파산 등에 대비해 대금 지급 보증도 반드시 들도록 했다. 또 이 내용을 발주자에게도 통보해 확인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작년 말까지 건설 하도급과 관련해 총 115개의 규제가 신설되었거나 강화됐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하도급 관련 불공정 관행은 여전하다. 이에 최근에는 공사 대금을 발주자가 원도급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도급 업자에게 주는 ‘하도급 대금 직불제’가 추진되기도 했다. ‘주계약자 공동도급제’ 확대 시행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는 2억~100억원 규모의 관급공사에 한해 종합·전문 건설사가 공동으로 입찰·계약에 참여하게 한 제도다. 입찰 때부터 하도급자가 원도급자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발주처와 계약을 맺는 형태다.

하도급 대금 직불제나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는 전문건설사가 원도급자를 거치지 않고 발주자와 ‘직거래’ 하겠다는 의미다. 발주자로부터 나오는 공사대금이 원도급자를 거처 가기 때문에 각종 불공정행위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발주자가 종합건설사뿐 아니라 전문건설사와 따로 계약하는 ‘분리 발주’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밖에도 현재 국회에는 16개의 하도급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하도급 대금지급 기일 단축 및 불공정 행위 시 원도급자의 벌금형 상향조정,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등이 핵심 내용이다.

이렇듯 원도급자를 대상으로 한 규제가 강화 일변도를 보이자 종합건설사 쪽에서는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더구나 중동을 비롯한 해외 건설의 부진한 데다, 최근 내수 건설경기마저 장담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종합건설사도 수익성을 지키는 데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한건설협회와 그 산하기관인 건설산업연구원의 연구 내용을 통해 하도급 규제 강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나친 규제로 건설업의 경쟁력도 낮아지고, 시급한 해외진출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하도급 대금 직불제에 대해 건설협회는 “장비대금 직불과 근로자임금 직불을 위한 근거규정이 건산법과 근로기준법에 마련돼 있음에도, 이를 제외하고 하도급자에 대한 직불만 강제하는 것은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에 역행하는 무책임한 행정이며 발주기관의 또 다른 ‘갑질’”이라고 성토했다. 또 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분리발주가 오히려 공사 비용과 기간을 증가시키고 일부 대형 전문건설사에만 혜택이 돌아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각 공정 간 유기적인 상호협력이 중요한 건설업 특성상 시설물 품질·안전 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영준 건산연 연구위원은 “미국에서도 일부 주에서만 분리발주가 허용되고 영국·프랑스에도 의무화 규정은 없다”며 “일본 역시 권고사항일 뿐 대부분 선진국에서 통합 발주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들은 규제가 원-하도급자 관계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도 비판한다. 그 윗 단계인 발주자(정부가 큰 비중을 차지)와 원도급자, 또는 하도급자와 2차 협력업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공정 관행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중소기업 보호는 약인가 독인가?

시야를 넓혀보면, 건설 하도급 규제 논쟁의 이면에는 중소기업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둔 담론이 자리 잡고 있다. 건설업계의 하도급 분쟁은 제조·서비스업의 원·하청 문제와 거의 비슷한 구조다. 최근 불공정한 원·하청 구조는 경제의 외형적인 성장에도 ‘낙수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이익이 양극화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반면 지나친 규제가 기업 경쟁력을 저하한다는 반론도 있다. 단기적으로 중소기업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것처럼 보여도 그보다 더 많은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경제활동 자유는 제약을 받고 보호정책 탓에 시장에 진입하는 업체 수 급증으로 과당경쟁을 초래하거나, 퇴출 지연으로 인해 건실한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는 수도 있다.

결국 알고 보면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건설 하도급 단신도 규제 수혜자의 생존을 보장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존성을 키움으로써 그들의 성장 욕구를 꺾어버리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그 사이 어느 수준에 선을 맞출 것인지에 대한 오랜 기간에 걸친 고민의 파편인 셈이다.

1382호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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