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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달리는 한·일 관계] 위안부·북핵 문제 등 양국 입장 차 ‘극과 극’ 

 

이규석 국제문제 컬럼니스트(동북아국제문제연구소장)
위안부 합의 재교섭 쉽지 않을 것... 미·일 합의 따라 ‘코리아 패싱’ 우려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은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263차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일본 특사인 문희상 의원(72)은 5월 17일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기다리던 기자단을 향해 문 특사는 “새 정권의 대일 정책의 방침에 대해 전달하는 메신저로서 왔다”고 말했다. 문희상 의원은 5월 14일 KBS에 출연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의 재교섭 등에 관한 질문에, “(합의대로의 이행도 아니고) 재교섭이나 파기도 아닌 ‘제3의 길’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의원은 그 제3의 방법으로 일본 측이 과거 ‘고노담화’ 등과 같은 수준의 새로운 담화를 발표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팽팽한 평행선을 달릴 양국의 입장을 좁힐 수 있는 ‘별도의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5월 17일 아침 일본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김포공항에서 가진 회견에서도 “특사로서 일본을 방문해 ‘재교섭하자’라고 말하는 것은 오버 하는 일이 아닌가” 라고 말해, 일본 측에 재교섭을 요구하지는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문희상 의원의 ‘잘못된 협상 태도’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 패를 다 보이고 협상에 들어가는 일은 ‘하수의 방법’으로, 처음엔 ‘재교섭’하겠다고 강경하게 몰아가다 협상장에서 하나 둘 씩 밀고 당기며 타협해가는 것이 협상의 올바른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문희상 의원이 외교관 출신이 아니라 협상을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저런 서툰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일본, 미국과 손잡고 북폭 나설 가능성도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 특사인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17일 일본에서 만났다.
일본 정계 인사들은 ‘고노담화’와 같은 방식의 담화를 요구하는 데는 응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1993년 8월 4일 고노 담화,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담화와 같은 최고지도자급의 담화를 내놓는다 해도 국가 간에 이뤄진 합의사항인 ‘소녀상 철거’가 보류되는 것처럼,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일본 측은 골인 지점에서 항상 골대를 살짝 치워 놓는 한국 측의 반복되는 행태에 질렸다는 볼멘 소리까지 쏟아내고 있다.

위안부 합의 문제는 당분간은 풀리지 않을 한일 간의 현안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2월의 합의문 내용에도 나와 있듯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한다'는 문구를 넣기 위해 일본 측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일본에 올 때마다 다짐을 받고 또 받았다.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오부치 총리 간 한일정상회담에서의 오부치 총리의 사죄 발언 등에서 일본은 한국 측에 사과할 만큼은 했다는 입장이다. 이번 위안부 합의(2015년 12월)에서의 ‘아베 총리의 사과와 반성 표명’이 일본으로서는 한국에 대해 마지막 사과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윤병세 장관에게 거듭 확인시켰었다.

또한 2015년 말의 위안부 합의는 당시 국제사회로부터 일정한 평가를 얻었고, 올 2월 12일 아베 총리가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회동을 가졌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해결된 (위안부)문제를 다시 문제 삼는 일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고, 일본 측은 주장하고 있다. 17일 저녁 일본 외무성 청사에서 열린 기시다 후미오 외상과 문희상 특사의 회담에서도 겉치레 인사와 판에 박힌 말들만 오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의 입장 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 문제는 결국 지금이 아닌, 후대·후손의 지혜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한일 관계 전문가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에 이어 또 하나의 중요한 현안은 북한의 핵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첫날인 5월 10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미 동맹, 한미 양국 간 협력, 북핵문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대북 온건파인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파인 트럼프 대통령의 충돌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장면도 있었다. 문 대통령의 대북 기본정책은 남북대화와 대북 유화 정책이다. 5월 16일 오전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한국 측 실무자들과 벌인 회의에서도 미국 측은 남북대화는 여건이 갖춰질 때, 즉 북한이 핵 폐기로 나올 때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북한은 5월 14일 ‘화성(火星) 12형’이라 불리는 중장거리 미사일(IRBM)을 고도 2000km가 넘는 로프티드 궤적으로 발사, 먼 동해 쪽에 떨어뜨림으로써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중국 등을 자극했다. 전문가들 중에는 이 미사일이 통상 궤도로 발사됐다면 미국 괌 기지는 물론 알래스카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근접한 것이었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목적은 첫째, 남북대화는 나중 문제로 돌리면서 문재인 정권을 우선 흔들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던 것, 둘째 미국과의 비공식 접촉(최근 북한의 최선희 북미국장이 미국의 전 정부 관료와 노르웨이에서 만난 일)에는 만족하지 않겠다, 그리고 우리(북한)도 이제 이렇게 미국 본토를 노릴 만큼 멀리 미사일을 쏠 수 있게 됐으니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미국에의 메시지 전달, 셋째 중국이 미국과 협력하여 북한 포위망을 좁히고 있는 것에 대한 불쾌감의 표시 등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일대일로(一帶一路) 포럼'이라는 중국의 일대 이벤트가 열리는 날 북한이 이 신형 미사일을 날린 것은 최근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와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북한의 의지의 표현처럼 보인다.

14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이 어떤 군사행동을 펼칠지 의향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금방 알게 될 것(You're gonna soon find out)”이라고 답했다. 트럼프의 예상 행동으로는 지금 동해에서 활동하고 있는 원자력 항모 칼빈슨함을 속초 방향으로 전진 배치하고, 또 한 척의 원자력 항모를 서해안 쪽(될 수 있으면 평택 앞바다)으로 진입시켜 북한에 대한 압박을 최고 수위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이는 여차하면 모든 폭탄을 북한을 향해 쏟아 부을 것이라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표현할 수 있어 북한으로서는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 항모에서 평양을 향해 순항미사일을 쏘게 되면 저고도로 날아가는 이 미사일을 북한은 요격하기 쉽지 않다. 이 경우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이래도 버틸래?” 그런데 일본 요코스카항에 기항하고 있던 미 원자력 항모 로날드 레이건이 5월 16일 어딘가를 향해 출항했다. 미 해군 측은 행선지와 임무 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또 한편으로 트럼프는 UN안보리에서 결의된 북한제재를 더욱 충실히 이행해 줄 것을 세계 각국에 촉구하면서, 중국에는 북한으로 들어가는 송유관까지 끊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이렇게 다각도의 북한 포위망을 더욱 압박해 들어가면서 북한의 도발을 막고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폐기(포기)케 한다는 게 트럼프의 생각이다. 트럼프로서는 북한이 보채면서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는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리 되면 한국, 일본, 대만 등도 핵무장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그럴 경우, 미국은 동북아시아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도래한다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의 차원을 넘어 차라리 ‘마지막 선택지’로서 북한을 군사 공격(폭격)하는 방식을 택할지도 모른다. 이때는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연합하여 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북한을 궤멸시켜 완전히 끝장낼 수 있다면, 일본은 최소한의 희생은 감수하면서 미국의 대(對)북한 폭격에 동참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이 상황에서 중국은 나서기 곤란할 것이다. 4월 6~7일 시진핑과 트럼프의 플로리다 회담 후, 중국은 상당 기간 동안은 미국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과 연합해 북한 정권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일본은 국제사회의 키 플레이어(key player)로서 ‘화려하게 컴백’할 수 있는 계기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군(軍)도 없고 전쟁도 수행할 수 없는 ‘비정상국가’였던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부터 벗어나 보통국가·정상국가로 부활할 수 있다면 일본은 약간의 희생 정도는 치를 수도 있다는 입장인 것 같다. 즉 일본이 정상국가로 발돋움하여 날개를 펴는 대가를 얻을 수만 있다면, 북한 폭격의 와중에서 북한으로부터 일반 미사일 몇 발 정도는 얻어맞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다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본은 북한이 아직은 대형 핵탄두를 장착할 정도로 미사일 기술이 발전하여 있다고는 보지 않는 것 같다. 북한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도 아직은 미지수다. 지금 단계, 그리고 앞으로 2~3년간은 일본 열도가 북한으로부터 얻어맞더라도 핵미사일이 아닌 일반 미사일 몇 발 정도라고 일본은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희생은 각오하겠다는 뜻이다.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를 사용하므로 발사 지점의 탐지가 어려워 북한이 쏘는 처음 몇 발은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조기경보시스템을 띄워 놓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몇 발 미사일을 쏘면 그 발사지점을 바로 탐지하여 해상·항공자위대로부터 집중포격을 가하면 북한 미사일 기지를 초토화시켜 버릴 수 있다는 계산인 듯하다.

난제 많아 양국 관계 험로 예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14일 신형 지대지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시험 발사를 참관했다.
물론 미일 연합군에 의한 북한 폭격 시나리오는 결코 쉽지 않은 ‘최후의 시나리오’이고, 이 시나리오대로 추진될 확률은 지극히 낮은 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과 아베 정권을 구별하는 데에 있어 큰 시사점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미국은 어떤 형태든지 간에 북한과의 충돌 국면이 발생한다면, 북한 정권과의 대화를 중시하고 대북한 유화정책을 펴려는 문재인 정권과는 거리를 두려고 할 것이다. 이른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다.

문희상 특사가 5월 17일 기시다 외상과 만나며 “한국과 일본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 “한일관계에 봄바람이 불어오게 하고 싶다”는 등 서로 덕담을 나누었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아베 정권과 문재인 정권은 대북한 전략과 정책 등에 있어 엄청난 차이가 있다. 위안부 문제와 북핵 문제 이외에도 한일 간에는 독도 문제, 역사 교과서 문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등에서 인식의 차와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한일 간에 풀어야할 여러 현안들이 가로놓여 있는 가운데 앞으로도 두 나라는 험로를 내달려야할 것으로 예상된다.

1385호 (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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