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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도체의 마지막 자존심, 르네사스의 미래는]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는 게 부활의 핵심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르네사스, 잇따른 개혁 실패로 입지 흔들... 철치부심 끝 흑자로 돌아서며 자립경영 시동

“5~7년 페이션트 머니(patient money: 인내심을 갖고 중장기적으로 투자하는 리스크머니)를 제공하겠다”(산업혁신기구의 노미 키미카즈 전 사장). 2012년 12월 자동차용 반도체 대형회사인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관민펀드인 산업 혁신기구로부터 출자를 받는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애초 공약대로 5년이 지난 2017년, 르네사스의 주식 매각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산업혁신기구가 2할 가량을 시장에 방출해 폭넓은 투자가에게 매각할 것으로 보인다. “특정 업체의 산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기관투자가 등 폭넓은 주주 구성이 우리의 성장 전략 방식이다”(르네사스의 구레 분세이 사장).

현재 산업혁신기구는 르네사스 주식의 69%를 보유한 대주주다. 르네사스는 산업혁신기구가 주식을 매각한 후, 증자를 실시해 기존의 주식을 희석시키려는 방안도 부상했다. 이 경우 산업혁신기구가 소유하는 주식은 과반이 되지 않아 르네사스는 실질적으로 국유기업에서 제외된다. 히타치제작소, 미쓰비시전기, NEC의 반도체 부문이 통합해 2010년 탄생한 르네사스. 설립 당시부터 남아도는 설비와 인원을 안고 있어 대담한 구조개혁이 과제였다. 하지만 초대 사장인 아카오 야스시 씨는 모체 중 하나인 히타치 출신이다. 사내와의 인연을 끊어내지 못하고 개혁은 실패했다.

길었던 재편까지의 여정, 꿈으로 끝난 일·독 연합

르네사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주력 공장인 나카 공장이 재해를 입어 세계 1위였던 자동차용 마이크로 컴퓨터가 생산 중지되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유례없는 엔화 상승까지 겹쳐 발족 3년 만에 누계 3451억 엔이라는 적자를 봤다. 자기자본비율은 약 10%로 저하해 채무초과 직전 상태까지 몰린다. 이러한 위기에 최대 고객인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한 자동차 업계는 초조해졌다. 일본 내 자동차 업체들은 르네사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외자계 펀드의 르네사스 매수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공급 불안정이나 기술유출 등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자동차 업계 간부들이 르네사스 구제를 위해 경제산업성을 비롯한 관계 각 처로 동분서주했다”(산업혁신기구 관계자).

결과적으로 경제산업성 소관인 산업혁신기구가 1383억 엔을 출자해 도요타, 닛산자동차, 캐논 등 르네사스 고객 8사가 기부금 형식으로 출자기업 명부에 올랐다. 2013년에 오무론(OMRON)의 전 회장인 사쿠다 히사오 씨가 CEO에 취임해 개혁 움직임이 일었다. 이후 개혁은 빠르게 진행됐다. 종업원 수를 기존 4만6630명에서 약 2만 명으로 축소했다. 채산이 맞지 않는 사업은 철퇴가 추진되어 2015년 3월, 발족 이후 처음으로 823억 엔의 최종 흑자를 달성했다. 구조개혁이 일정 목표를 달성했다고 여겨지며 리더는 일본 오라클의 전 사장인 엔도 타카오 씨로 교체됐다. ‘성장을 향한 기어 체인지’라는 목표를 내걸고 소프트웨어 분야에 정통한 엔도 씨의 수완에 기대가 모아졌다.

자동운전의 개발경쟁에 ‘거인’ 인텔도 참전


▎일본 르네사스의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그러나 취임 반년 만에 엔도 사장이 사임을 발표했다. “일신상의 이유로 자신의 의사로 그만뒀다.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다”. 자택으로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엔도 씨는 그렇게 반복했다. 사임 당일, 엔도 씨는 이사회에서 ‘어떤 결의’를 앞두고 있었다.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르네사스와 경합하는 세계 점유율 2위인 독일 인피니온 테크놀로지와의 자본 제휴를 꾀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엔도 씨는 사임한다. 그로부터 3개월 전인 2015년 9월 말에는 산업혁신기구의 르네사스 주식에 대한 록업(lock-up: 매각금지)이 해제되어 주식 인수처에 대한 관심이 모아졌다. 엔도 씨는 사임하기 며칠 전, “인피니온과의 자본 제휴는 선택지 중 하나다. 양사가 손을 잡는다면 강력한 연합이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었다. 일·독 연합으로 글로벌한 경합에 대치해나가려는 엔도 씨의 성장전략에 르네사스 간부들은 ‘노(NO)’를 외쳤다. 당시 이사회 5명 중, 과반수 3명이 산업혁신기구 출신이었다. 해외로의 기술유출을 꺼리는 자동차 업계의 뜻에 따라 산업혁신기구가 엔도 씨에게 사임을 종용한 듯하다.

이어 히타치 출신의 쓰루마루 테츠야 씨가 취임해 2016년에는 일본 대형 모터회사인 일본전산(日本電産)의 르네사스 매수 소문이 항간에 떠돈다. 차재용 모터를 주력분야로 하는 일본 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 겸 사장은 의욕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실제로 M&A를 위해서는 ‘시세가 비쌀 때 사지 않는다’는 것이 철칙이다. 르네사스의 주가가 높은 동안에 매수를 미룬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흑자화에 정착한 르네사스지만 일본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동안에 업계를 둘러싼 환경은 격변했다. 지금까지 반도체 업계의 성장을 이끈 것은 PC나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였다. 하지만 미국 애플의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 시장은 출하 대수의 신장률이 둔화하면서 반도체 각 사는 스마트폰의 차세대 시장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이에 업계 거인들은 자동차에 주목했다.

현재 자동차 업계에서는 장래 자율운행 실현을 위해 개발경쟁이 치열하다. 기존에 ‘달리고, 멈추고, (방향을) 트는’ 제어 중심의 자동차용 반도체는 자동운전으로 인해 크게 바뀌려 하고 있다. 주변 상황을 인식하는 센서, 다른 자동차와 통신하기 위한 통신용 반도체, 수집한 정보를 처리하는 고기능 프로세서 등 다량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지금 자동차는 ‘달리는 컴퓨터’로 변화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대형 반도체 업체들도 거액 매수를 통한 자동차 분야 참여에 의욕적이다. 2015년에는 자동차용 반도체 업체인 NXP 세미컨덕트가 미국 프리스케일을 118억 달러에 인수해 르네사스를 앞지르고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반도체 업계 세계 4위인 미국의 퀄컴이 NXP를 470억 달러에 매수한다고 발표했다. 스마트폰 대상으로 급성장을 일군 퀄컴이 풍부한 현금을 무기로 자동차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올해 반도체 업계의 절대 왕자인 미국 인텔도 움직였다. 차재 카메라 등의 선진 운전지원 시스템을 다루는 이스라엘의 모빌아이를 153억 달러에 인수했다. “대부분의 자동차 메이커에 모빌아이의 자동차의 전방카메라가 채용된다. 인텔이 능력 발휘에 나섰다”(업계 애널리스트). 인피니온도 매수로 점유율을 늘려, 오랜 기간 1위를 지켜온 르네사스의 점유율은 3위로 떨어졌다. 각 사가 자율주행차를 주력 분야로 자리매김하는 가운데, 르네사스의 연구개발 규모는 상당히 뒤처진 상태다.

르네사스도 가만히 보고 있을 리는 없다. 올해 세계 최대 규모인 국제가전박람회(CES)에서 르네사스는 완전 자율주행차를 전시했다. 관계자들이 “이렇게까지 가능하다니”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의 변화였다. 르네사스는 고객의 요구에 맞춘 반도체를 제조하는 하청업체로 자체적으로 자율주행차를 조립하는 일은 금기시되었다. 르네사스의 구레 사장은 “일본 계열뿐 아니라 구미 메이커와도 교류가 확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르네사스 최대 고객인 도요타는 미국 엔비디아와 제휴

2017년에는 아날로그 반도체 회사인 미국의 인터실(Intersil)을 약 3219억 엔에 인수했다. 제품 상의 시너지효과에 그치지 않고 기업문화 흡수에도 기대를 모은다. “이번 사안은 다음 경영회의에서 결정하는 편이 낫다. 다음 회의는 판단을 내리기까지 누구도 회의실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지지부진 결론이 나지 않는 르네사스의 경영회의에 지쳐버린 인터실의 네십 사이네르 CEO는 구레 사장을 비롯한 일본인 간부들에게 이와 같이 제안했다고 한다.

인터실은 반도체의 거인들에게 둘러싸인 미국 시장에서 ‘비상하고 재빠른 기업문화’가 몸에 배었다(사이네스 CEO). 메가급 재편이 진행 중인 반도체 업계에서 인터실의 인수는 소소해 보이지만, 르네사스 입장에서는 재무적으로나 기업문화적으로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히타치, 미쓰비시, NEC의 굴레에서 겨우 벗어난 지금, 현장 글로벌화도 한창이다. 사내 회의자료는 모두 영어로 바꿨다. 신규 졸업자 채용은 많을 때에는 3분의 1이 외국인이다.

구레 사장은 “첨단을 지향하는 고객과 장래 로드맵을 공유하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큰 강점이다”라고 자사의 성장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고객과의 유대감을 단번에 흔들 만한 변화가 업계에서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5월에는 최대 고객인 도요타가 미국의 엔비디아와 자동운전 시스템 개발을 위해 협업하기로 발표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기술이 급속도로 융합해가는 가운데, 업계 세력도는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르네사스는 국가나 자동차 업계의 의향에 휘둘리며 옴짝달싹 못했다. 국가의 영향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날 것이다.

1388호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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