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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풍 부는 부산 신발산업] 중국으로 떠났던 신발업체 ‘돌아왔소, 부산항에~’ 

 

부산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물류비, 생산성, FTA 관세 효과 따지면 부산이 경쟁력 ... 인프라 개선, 스마트공장, 지자체 지원도 유턴 요인

부산 신발산업이 다시 운동화 끈을 조이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신발업체들이 하나 둘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기면서 공동화되다시피 했던 부산 신발산업이 제2의 르네상스를 준비하고 있다. 사양산업이라는 낙인에도 신발산업을 포기하지 않은 기업과 지자체의 끈기가 이룬 결과다. 낮은 인건비를 따라 중국 등 저개발국으로 갔던 업체들도 속속 부산으로 몰리고 있다. 산업 인프라나 물류비·생산성, FTA 관세 효과, 지자체 지원 등을 따지면 부산이 더 경쟁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발업체들의 ‘이유 있는 부산행’을 취재했다.


▎부산 신발산업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50~1980년대 수출 효자였던 부산진구 부암동 옛 진양고무 신발공장 자리에 설치된 높이 2.7m의 신발모형 조형물.
부산 신발산업에 훈풍이 불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중국 등지로 떠났던 국내 기업들이 속속 부산으로 유턴하면서다. 최근 아웃도어 신발업체인 트렉스타는 중국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22년 만에 부산으로 돌아온다고 밝혔다. 내년에 스마트 자동화 공장을 녹산국가산업단지에 짓고 ‘메이드 인 코리아’ 신발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부산시가 조성 중인 강서구 국제산업물류단지 신발산업 집적화 단지에는 애초 목표로 삼은 10개사 입주가 모두 결정됐다. 중국에서 돌아온 업체 2곳, 개성공단에서 돌아온 업체 3곳, 경기도와 경남 양산에서 이전한 업체 1곳씩이고 확장 이전한 업체가 3곳이다. 지역에선 이들 신발업체들의 ‘부산행’이 지역 신발산업을 되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트렉스타, 22년 만에 부산으로 유턴


▎부산진구 범천동에 자리한 신발 소공인특화지원센터 ‘슈플레이스 범천’은 공동전시홍보관과 공동비즈(BIZ)지원관으로 구성돼 있다. / 사진 : 슈플레이스 범천
지표에서도 부활의 청신호가 켜졌다. 부산경제진흥원 경제동향분석센터가 발표한 ‘부산 신발산업 성과 수준 분석 자료’에 따르면 부산지역 10명 이상 신발제조업체 출하액이 2008년 6000억원에서 2014년 9400억원으로 증가했다. 연평균 7.7%의 성장세를 보이며 전국 신발제조업체 평균 출하액 신장률(2%)의 3배 이상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부산의 출하액 전국 비중은 2008년 30.4%에서 2014년에는 42%로 높아졌다. 이상엽 경제동향분석센터 선임연구위원은 “부가가치 역시 같은 기간 연평균 8.5%씩 증가해 전국 신발업의 0.2%를 크게 웃돌았다”며 “부산의 신발제조업은 지역의 다른 주력 제조업과 비교하더라도 성장세나 부가가치 창출에 있어 양호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1970~80년대만 해도 신발산업은 섬유·가전·합판 등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 효자산업이었다. 특히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생산기지로 부상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임금 상승으로 채산성이 떨어지면서 생산기지는 중국과 베트남 등으로 옮겨 갔다. 1990년 43억 달러에 달했던 신발 수출액은 2000년엔 7억9000만 달러로 줄었다. 이처럼 크게 위축된 신발산업이 최근 들어 부산을 중심으로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부산 신발제조업의 연평균 출하액 증가율 7.7%는 부산 지역 제조업(1.4%)의 5.5배에 이르고, 전국 제조업 평균(4.9%)보다도 높다. 국내 최대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신발업체인 태광실업은 지난해 매출액 1조3200억원을 기록했고, 창신INC도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신발기업들이 부산을 떠났던 이유가 다시 돌아오는 요인이 됐다. 중국의 외자기업 우대 정책이 축소된 반면 한국 정부의 유턴기업 지원이 이뤄진 게 촉매제였다. 게다가 임금은 가파르게 올랐지만 생산성은 그만큼 향상되지 않는 중국 노동력에 대한 메리트가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는 “한국과 중국의 인건비 차이는 여전하지만 물류비용과 생산성을 따지면 부산의 경쟁력이 훨씬 높다”며 “특히 한국은 다양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관세가 중국에 비해 현격히 낮다”고 말했다.

기업의 R&D, 지자체 지원이 효과 발휘


▎지난 3월30일 부산 롯데백화점 광복점에서 열린 ‘부산 대표 브랜드와 함께하는 상생 페스티벌’ 행사장을 찾은 고객들이 지역 업체가 생산한 신발 제품을 고르고 있다. / 사진 : 롯데백화점
부산 신발산업의 인프라 조성도 유턴의 이유다. 부산시는 집적화 단지 이외에 내년까지 382억원을 투입해 부산 사상구 감전동에 첨단신발융합허브센터를 조성한다. 신발 공장 50개사가 입주하는데 완제품 신발공장 20%, 부품소재 관련 공장 50%, 디자인 및 유통업체 30%의 비율로 구성된다. 또 예산 199억원이 투입된 K-슈즈 비즈센터가 오는 11월 부산진구 개금동에서 문을 열 예정이다. 이곳에선 한국 신발산업의 역사관과 체험관을 비롯하여 많은 기업을 소개하는 홍보관을 운영하고,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부산이 가진 풍부한 신발 인프라는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가며 소량으로 재빨리 생산하는 이른바 ‘반응생산’ 공정을 가능케 한다. 이 때문에 수도권에서 부산으로 이전한 업체도 있다. 부산경제진흥원 신발산업진흥센터 관계자는 “신발 생산에서 기능이 중요해진 반면 비용 부분은 감소했다”며 “특히 한국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기호가 급격히 변화해 생산 단계에서 이를 빨리 파악하고 만드는 게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해외 기업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골프웨어 먼싱웨어, 르꼬끄 스포르티브 등 7개의 스포츠 관련 의류·신발을 제조·판매하는 일본의 데상트는 부산진해경제구역에 내년 4월을 목표로 글로벌 신발 R&D센터를 짓고 있다. 총 35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신발제조 관련 실내외 테스트 시설과 재료분석실, 디자인실, 시제품실 등을 구축될 계획이다. 데상트 그룹이 최초의 글로벌 R&D센터를 부산에 짓는 것도 원·부자재 공장 밀집 등 인프라 때문이다.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던 신발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부산 지역 업체들의 노력도 ‘훈풍’의 큰 원동력이다. 부산의 신발업체들은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로 중국이나 베트남 제품이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했다. 삼덕통상의 경우 국내 직원 350명 가운데 R&D 인력이 100명을 넘는다. ‘친환경 그린 탄성 소재 아웃솔’ 등 첨단 신소재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으며, 제조공정 프로그램을 단축해 고용 원활성과 경영 효율성을 확보하고 있다.

대기업·소공인 ‘상생 생태계’ 만들어야


자체 브랜드를 앞세워 해외 시장을 개척한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메이드 인 부산’ 제품인 나르지오 워킹화는 지난 2월 미국 뉴욕에 단독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바닥창이 2개로 분리되는 것이 특징으로, 신발 바닥창이 체중을 앞뒤로 분산시키면서 피로감을 줄여준다. 국내는 물론 미국·일본·중국 특허까지 획득했다. 미 식품의약품청(FDA)에 ‘의료용 교정신발’로도 등록됐다. 나르지오 관계자는 “미국인은 체구가 커 발목이나 무릎 질환 등을 많이 겪지만 기능성 신발 시장은 아직 발달하지 않았다”며 “잠재시장은 넓고 경쟁사는 많지 않다는 판단에서 진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르지오는 중국과 일본에도 현지 법인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부산시가 2006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우리브랜드 신발 명품화 사업’도 빛을 보고 있다. 특수기능화, 첨단소재·부품 등 기술개발 분야와 홍보·마케팅, 브랜드 스토리화 등을 지원하는 사업화 분야로 구분해 기업의 특성에 맞춰 지원하고 있다. 2014년 8월 브랜드를 론칭한 마이프코리아의 치스윅은 2015년 지원 첫 해 매출 18억원을 달성하고 지난해에는 매출 40억원 이상을 기록했다. 해외 유명브랜드의 OEM 전문생산기업인 씨엔케이무역도 해운대 바다와 동백섬, 오륙도 등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브랜드 부기베어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아동화 브랜드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상엽 부산경제진흥원 경제동향분석센터 선임연구위원은 “부산 신발산업이 과거 저생산성·저부가가치 산업에서 서서히 탈피하고 있는 것은 기능성 신발시장의 성장과 기술경쟁력 우위 지속,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신발산업 육성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앞으로 제2의 신발산업 부흥기를 맞기 위해서는 정보기술(IT)과의 융·복합화 등 신발산업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적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 신발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지역 소공인들의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동향 분석센터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부산의 신발제조업체는 1040개로, 전국의 39%에 달한다. 종사자 수는 8911명으로 45.9%를 차지하고 있다. 1인 이상 신발산업 제조업체 수는 증가 추세지만 종사자 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공정단축 및 자동화, 인건비 부담에 따른 구조조정 등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부산진구 범천동에 있는 신발 소공인특화지원센터 ‘슈플레이스(SHOEPLACE) 범천’에서 만난 목혜은 센터장은 “대기업 유턴 흐름이나 성과 지표와 달리 지역 소공인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여전히 낮다”며 “봄·가을 비수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출이 중요한데 소공인은 개별적으로 수출하기가 쉽지 않다. 판로 개척 전문가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슈플레이스에선 브랜드의 중요성을 각인한 몇몇 소공인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고 ‘슈플레이스’라는 공동브랜드를 만들기도 했다. 목 센터장은 “부산 신발산업이 지속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 소공인들의 기술과 신발 대기업의 자동화 시설, 마케팅을 결합한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스기사] 세계의 신발 공장은 어디? - 최대 생산국은 여전히 중국, 베트남은 급부상


세계 신발산업은 안정적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스포츠·레저 인구의 증가와 신흥국가들의 소득 수준 향상에 따른 신발 수요 증가 등의 주 원동력이다. 2015년 기준 세계 신발 생산량은 약 230억 족으로 2010년 이후 연평균 2.2% 성장하고 있다. 소비량은 약 206억 족으로 2.9% 성장 추세다. 금액으로 보면 2014년 기준 신발시장 규모는 약 2100억 달러 수준이다.

신발 최대 생산국은 아직까지는 중국이다. 그러나 인건비 상승에 따른 신발 생산기지의 ‘탈 중국화’로 중국의 신발 생산과 수출은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2015년 중국의 신발 생산량은 약 136억 족으로 2010년 이후 연평균성장률 1.3%에 머물며, 점유율이 62.4%에서 59.1%로 감소했다. 신발수출량은 약 99억 족으로 연평균 -0.1%의 성장률 기록하고 있으며 점유율도 73.6%에서 69.1%로 감소했다.

반면 베트남이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5년 신발생산량 약 11억 족으로 연평균 7% 성장하면서 점유율도 3.8%에서 5%로 증가했다.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 생산국이다. 수출량 역시 연평균 25.4% 성장하면서 약 10억 족으로 세계 2위, 점유율도 2%에서 7.2%로 증가했다.

1389호 (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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