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원 이상 배임죄면 살인죄 수준 처벌
2014년 헌재, 배임죄 합헌 결정재계를 중심으로 배임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진 2014년, 결국 배임죄는 헌법재판의 대상이 됐다. 당시 배임죄로 징역과 벌금을 선고 받은 신현규 전 토마토저축은행 회장과 채규철 전 도민저축은행 회장이 헌법소원을 냈다. 이들은 배임죄의 모호성과 과도한 처벌 규정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민사적 문제인 배임에 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또 ‘손해’나 ‘이득액’에 따라 배임죄를 적용하게 되는데 무엇을 ‘손해’나 ‘이득액’이라고 볼지 의미가 모호하고, 아울러 범인의 성행, 전과 유무, 범행의 동기, 범행 후의 정황 같은 다른 구성요소 없이 금액의 크기에 따라 양형을 달리하고 있는 것 자체도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를 요구하는 책임주의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그러나 헌재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법과 특정경제범죄특별법의 배임죄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결정문에서 헌재는 “배임죄 조항이 ‘손해’와 ‘이득액’의 개념에 대해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의미와 내용은 법관이 충분히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므로 명확성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처벌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헌재는 “오늘날 경제 규모의 확대로 업무상 배임죄가 발생하는 경우 그 피해 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국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며 “특별법 배임조항이 배임행위로 취득한 이득액에 따라 업무상 배임죄를 단계적으로 가중처벌하는 것은 그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이 이미 ‘경영상의 판단’에 관한 법리를 수용하여 기업 경영인의 업무상 배임의 고의 판단을 할 때 엄격한 해석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국가형벌권 행사에 관한 입법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과잉입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헌재의 합헌 결정은 법적으로는 배임죄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헌재가 밝힌 합헌 이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헌재의 설명을 요약하면 ‘법원이 꼼꼼하게 해석하고 있고, 적절한 수준의 형벌을 적용하고 있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해석만 잘하면 된다고 답한 동문서답이라는 지적이다.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다른 생각도 있었다. 합헌 결정문에서 당시 이정미 재판관은 가중처벌 규정에 대해 “법 위반 행위에 대한 판단은 다양한 요소로 이뤄진다”면서 “배임 규모만을 기준으로 차등 처벌하는 것은 형벌 체계상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이 재판관은 또 “그 법정형이 형법상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를 침해하는 범죄의 법정형과 비슷해 책임과 형벌 사이 비례원칙에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주주·이사의 책임 분명하지 않아 법원 재량에 맡겨야”‘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하는 문제를 두고도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헌재는 합헌 근거로 경영판단 원칙을 실제 판결에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법원이 기업경영상 판단을 감안해 배임죄 조항을 엄격히 적용하는 ‘경영판단의 원칙’에 관한 법리를 수용하고 있어 배임조항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법원 판결에서 경영판단 원칙이 항상 똑같이 적용되기는 어렵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경영판단의 원칙 적용 여부에 따라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유·무죄 판단이 엇갈린 판례도 많다. 재계에서 보완 방안으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조건 경영판단이었다고 우기는 것이 배임죄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배임죄 개정 반대론 측에서는 “한국은 선진국과 달리 주주나 이사의 책임과 의무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 법원의 판단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 많은 것”이라며 “한국에서 배임죄를 완화하면 재벌 총수의 전횡이나 방만경영이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배임죄 논쟁의 당사자가 재벌 총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처음의 A씨 사건과 인천지법의 위헌법률심판으로 돌아가보자. 첫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이 사건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취지는 배임죄의 주요 논쟁인 ‘경영적 판단’과는 방향이 다소 다르다. 하지만 그 원인은 비슷하다. 적용을 하기 위한 조건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조문의 모호성을 판단하는 것도 모호하다. 이에 대한 고민은 헌재의 합헌 결정문에서도 드러난다. “헌법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요구한다. 법규의 내용이 애매모호하거나 추상적이면 국민들이 법을 지키기 어려워서다. 그러나 내용이 다소 광범위해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무조건 위헌이라고 볼 수는 없다. 법규가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정형적이면 빠르게 변하는 사회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결국 배임죄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약효는 있는데, 독소가 있다. 약효를 위해 독소를 참아야 할까. 독소를 없애기 위해 약효도 줄여야 할까. 바꿔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 또 법 조문의 모호함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법은 얼마나 포괄적이고, 얼마나 구체적이어야 하는 것일까. 망이 성글어 치어는 빠져 나갈 수 있게 할 것인가, 촘촘히 짜 최대한 많은 물고기를 잡아야 옳은 것일까, 아니면 낚시꾼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