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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기업 세계에서 친구는 있다? 없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전략적 제휴의 조건은 상호이익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왼쪽)과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는 지난 7월 두 회사의 전략적 제휴를 발표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1980년대 중반 국내외 유명 배우 사진과 좋은 글귀는 코팅 책받침의 단골 소재였다. 그 한자리를 차지했던 글귀가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다.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나며,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그 시절, 이렇게 끝나는 글을 나눠 읽으면서 영원한 우정을 약속했던 청소년들이 많았다. 마지막 한 문장은 아직 죽음이 뭔지 모를 그 나이에도 제법 찡한 구석이 있었다.

[지란지교를 꿈꾸며]는 에세이면서 시다. 1986년 이향하·신달자와 함께 펴낸 동명의 에세이집에 실렸는데 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란지교(芝蘭之交)란 지초와 난초의 사귐이다.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두 꽃이 만날 때처럼 맑고, 깨끗하며, 두텁고, 변치않는 우정을 나누는 친구관계를 뜻한다. [명심보감]의 교우(交友)편에 나온다.

지초와 난초의 사귐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이 생각하는 지란지교는 어떤 사람일까.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내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서도 말이 날까 걱정이 되지 않는 친구다.

친구는 꼭 여성이 아니어도 된다. 나이도 상관없다. 잘생기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친구는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이해해 줄 수 있고, 반대로 내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내가 평온해 질 때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는 사려 깊은 사람이다.

지란지교는 많을 필요가 없다고 유안진은 생각한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이라도 충분하다. 끊어지지 않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는 친구라면 말이다. 그렇다고 그가 완벽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내가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그도 성현 같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을 뿐이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에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하고 바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회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이 사회적 활동을 지속하는 한 친구라는 존재는 피할 수 없다. 친구(親舊)란 친하게(親) 예전부터(舊) 사귀어온 사람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모여 사회적 관계가 이뤄진다.

사업을 할 때도 친구가 있다. 경영학에서 친구는 파트너로, 친구관계는 파트너십으로 부른다. 기업들은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파트너십을 맺는다. 이를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라 부른다. 전략적 제휴란 기업 간 상호협력 관계를 유지해 다른 기업에 대해 경쟁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경영전략을 말한다. 특히 기술혁신 속도가 빠른 전기·전자·정보기술(IT) 등 첨단산업에서 신기술을 습득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가 잦다. 전략적 제휴는 기술뿐 아니라 생산과 자본 분야에서도 이뤄진다. 과잉 생산설비를 공유하거나 출자 등을 통해 부족한 자본을 메워주기도 한다. 전략적 제휴는 두 기업 모두에게 이득이 되야 한다는 점이다. 한쪽이 손해를 보는 딜이라면 파트너십은 맺어지기 힘들다.

최근 카카오그룹은 중국 알리바바의 금융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카카오페이 계좌로 알리페이를 이용할 수 있고, 중국인은 알리바바의 즈푸바오(온라인결제시스템)로 카카오페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모바일결제시장을 키우고 싶어하는 카카오페이와 한국 진출을 꾀하는 앤트파이낸셜의 이익이 맞아떨어졌다.

포털계의 공룡 네이버와 증권 공룡 미래에셋대우의 전략적 제휴는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네이버는 미래에셋대우의 해외 네트워크를 이용해 글로벌 진출을 하고 싶어했다. 미래에셋대우는 네이버를 통해 핀테크(금융과 IT를 결합한 서비스) 기술을 확보하려 했다. 양측은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해 각 사가 보유한 5000억원의 규모의 자사주를 서로 매입했다. 이로써 네이버는 미래에셋대우의 지분 7.11%를, 미래에셋대우는 네이버지분 1.71%를 각각 보유하게 됐다. 앞서 신한금융지주는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과 ‘디지털 혁신을 위한 전략적 협력 계약’을 맺었다. 금융과 IT는 핀테크뿐 아니라 블록체인·인공지능(AI) 등 협력을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시장이 급변하면서 친구와 적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다. 친구가 됐다가 적이되기도 하고, 적이었다가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프레너미(frienemy)’다. ‘프렌드(friend)’와 적을 뜻하는 ‘에너미(enemy)’의 합성어로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전략적 협력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경쟁을 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친구도 되고 적도 되는 ‘프레너미’

삼성과 구글의 관계를 보자.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자 삼성과 구글은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었다. 애플이 독자개발한 단말기와 운영체제 iOS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삼성은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운영체제로 채택했고, 구글은 삼성의 갤럭시에 안드로이드를 공급해 각각 시장점유율을 키웠다. 이후 삼성전자는 인텔과 함께 독자적인 운영체제인 ‘타이젠’ 개발에 나섰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인수해 스마트폰 ‘아라’의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렇다고 삼성과 애플 관계를 단순한 적(enemy)으로 규정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애플 아이폰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주요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삼성에게 애플은 최고의 고객이자 협력해야 할 친구다. 그러니 프레너미다.

프레너미 관계는 ‘코피티션’이라는 새로운 경영형태도 만들어냈다. 코피티션은 협동(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로 협력하면서 경쟁하는 관계를 말한다. 예일대 배리네일버프와 하버드대 애덤 브란덴버거 교수가 제안한 비즈니스 전략이다. 고객·납품업자·경쟁자 등 사업에 연결된 수많은 주체는 경쟁자가 되기도, 협력자가 되기도 하지만 상대와 협력할 때 최대의 수확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고 이들은 밝혔다.

하지만 프레너미는 ‘지란지교’가 될 수 없다. 이해타산을 가져서는 깊고 향기나는 우정을 쌓기 어렵다. 유안진은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되, 미친 듯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어느 날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가을 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보고 싶어지는 친구가 있는가. 혹시나 그런 벗이 있다면 잠시 짬을 내 전화를 한번 걸어보자. “어떻게 사냐”는 인사말과 함께. 어느새 중년으로 향하는 그를 통해 나를 볼지 모른다. 인생, 참 빠르다.

1397호 (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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