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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13) 씨앗의 생존전략] 美 항공우주국이 왜 씨앗 연구에 매달릴까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환경에 적응하는 뛰어난 번식능력 보유 … 개체 유지에 필요한 휴면·방어능력도 탁월

▎피마자라고 불리는 아주까리 씨앗의 리신(Ricin)이라는 단백질 성분의 독은 사람도 죽일 수 있다. 씨앗 속에 있을 때는 성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동물의 몸 속으로 들어가면 세포를 파괴하는 기능을 한다. / 사진:ⓒgetty images bank
현재 거래 금액을 기준으로 무역량이 가장 많은 상품은 뭘까? 석유다. 그러면 두 번째로 많은 상품은? 의외로 많은 사람이 커피라고 대답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말하고 다니는 데다 듣는 이들도 ‘그 정도야?’ 하면서 이내 수긍한다. 석유가 산업의 필수품이듯 커피가 생활 필수품이라는 걸 어디서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라는 책을 쓴 커피 전문가 마크 펜더그라스트는 자신도 그렇게 알고 강연 때마다 그렇게 말하고 다녔으며 책에도 그렇게 썼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어서 서둘러 낸 개정판에 자신의 실수를 밝힌 적이 있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혹한 나머지 한 번도 확인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정확한 사실은 유엔의 세계 무역량 통계정보 사이트(www.uncomtrade.org)에 있다. 이 사이트엔 수출량을 기준으로 한 2015년 수치가 나와 있다. 1위는 명실공히 석유다(7886억 달러). 하지만 아쉽게도 2위는 커피가 아니다. 3위도 아니다. 사실 한참 밀린다. 식품에서도 밀(386억 달러)보다 적고 과자류를 제외한 설탕(331억 달러)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379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긴 하다. 아무런 영양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커피가 우리가 주식으로 하고 있는 쌀 교역량(228억 달러)보다 많다.

커피 카페인은 균류·애벌레 퇴치용 독극물

사람들은 왜 커피를 찾을까? 맛과 향기가 좋아서? 여유를 즐기기 위해? 그럴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커피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카페인일 것이다. 알다시피 카페인은 우리의 혈액 속으로 들어가 우리가 지치거나 졸지 않게끔 해주고 더 나아가 나른한 몸에 생기를 돌게 한다. 보약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작용을 할까? 우리 몸은 지치고 피곤해서 쉴 때가 됐을 때 이를 알리는 물질을 만든다.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이다. 이게 세포막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하면 세포 활동이 둔해져 피곤하고 졸리게 된다. 지쳤으니 쉬라는 몸의 신호다. 그래서 쉬거나 자게 되면 아데노신은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액 공급을 늘려 몸을 회복시킨다.

이 과정에 카페인이 끼어 든다. 아데노신과 구조가 비슷한 점을 이용해 아데노신보다 먼저 수용체와 결합해 버리는 것이다. 지금 쉬어야 한다는 전령이 도달하지 못하니 우리는 지치고 피곤하다는 걸 느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카페인은 교감신경을 자극, 혈압을 높여 혈당을 분비한다. 피로가 가시면서 기운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다. 이러니 마시지 않을 수 있을까. 기운을 생성해 주는 피로 회복이 아니라 피로를 못 느끼게 하는 피로 차단일 뿐인데, 우리는 기운이 난다고 믿으며 열심히, 더 열심히 일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열심히 살라고 보낸 신의 선물일까? 이 또한 아쉽게도 아니다. 사실 커피 속 카페인은 원래 독극물로 개발된 것이다. 물론 인간을 향한 게 아니라 온갖 균류와 애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커피 나무가 만든 일종의 화학무기이지만 말이다. 연구에 따르면 커피 씨앗에서 자라나는 부드러운 싹을 좋아하는 달팽이에게 카페인을 주입하면 심장박동이 느려지거나 온몸을 비튼다. 당연히 더 작은 균류에게는 치명적이다. 독으로 작용하지 못하더라도 성장을 느리게 한다. 커피 나무를 괴롭히는 생물체가 900여종이나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걸 보면 왜 이런 걸 만들어 냈는지 수긍할 만하다. 그러니까 커피 나무가 자신들의 소중한 씨앗과 싹을 먹어 치우려고 달려드는 균류와 애벌레를 퇴치하려고 만든 독을 우리는 피곤 퇴치용으로 애용하고 있는 것이다.

커피 나무만이 아니라 많은 식물은 씨앗이 잘 자라도록 갖가지 장치와 방법을 씨앗에 넣어 준다. 우리가 자녀에게 그렇게 하듯 지극 정성을 기울인다. 자신들의 미래인 까닭이다. 그래서 씨앗에는 보기와는 달리 치밀하고도 놀라운 생존전략이 가득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커피는 말 그대로 콩알 만한 열매를 만드는데, 카페인이라는 같은 생존무기를 만든 카카오는 어른이 두 손으로 잡아도 넘쳐날 만큼 큰 열매를 만든다. 크게 만들면 더 많은 적이 몰려들 텐데 왜 이렇게 만들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카카오가 사는 곳은 제 아무리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도 2%만이 숲 바닥에 도달하는 열대 우림의 정글이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 씨앗을 만들었다고 해도 땅에 떨어진 씨앗은 햇빛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다. ‘노오력’이 아니라 그 제곱을 해도 마찬가지다. 방법은 하나,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이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충분히 큰 생존 배낭’이 필요하다. 요즘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아보카도 씨앗이 큼지막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만드는 게 아니라 살아갈 환경에 맞게 만든다. 치밀하고도 의도적으로. 사람들은 씨앗을 별 생각 없이 대하지만 사실 씨앗은 식물이 3억여년 전 만든 혁신적인 번식 전략의 산물이었다. 이전의 포자는 이런 능력이 없었다. 바람에 날려 떨어진 곳이 살기에 적합하지 못하면 말라 죽어야 했다. 고사리 같은 양치류는 지금도 이렇게 살아간다. 이런 포자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어디서든 견딜 수 있는 휴대 가능한 ‘생존배낭’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적절한 때가 오기를 기다릴 수 있는 휴면 능력 덕분에 씨앗은 번성을 누리고 있다.

일제히 싹 틔우지 않는 위험분산 전략


▎제비꽃은 씨앗을 만들 때 엘라이오좀이라는 기름기 많고 단백질이 풍부한 작은 덩어리를 붙인다. 먹이를 찾아 다니는 개미는 이걸 갖고 집으로 돌아가 덩어리만 떼낸 후 씨앗을 버린다.
지난 2009년 경남 함안에서 성터를 발굴하던 중 700여년이나 된 연꽃 씨앗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700여년 전이면 고려 말에 맺힌 것인데, 혹시 싹이 날까 싶어 심어보았더니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싹이 트고 꽃까지 피었다. 지금은 아라홍련 연꽃 단지가 되어 개화 때마다 장관을 이루고 있는 그 연꽃이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다. 1953년 일본에서는 신석기 시대인 2000여년 전 연꽃 씨앗 3개가 당시 카누에서 발굴됐는데, 이 씨앗 역시 3개 중 2개가 보란 듯이 싹을 틔웠다. 2011년에는 러시아 연구팀이 시베리아에서 3만1800년이나 된 열매를 발견해 여기서 추출한 세포를 배양, 싹을 틔운 적도 있다. 그 전에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영하 7도에 땅속 40m나 되는 곳에서 3만 1800년 동안 살아있었던 것이다. 끈질기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때가 오면 그 기회를 최대한 살리는 능력, 미 항공우주국(NASA)이 씨앗을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이유다.

이상한 건 온 세상에 봄이 왔는데도 싹을 틔우지 않는 씨앗이 있다는 것이다. 죽은 걸까? 아니다. 이 또한 세상을 오래 살아본 경험에서 나온 전략이다. 고대하던 좋은 날이 왔으니 기회는 이 때다, 하면서 일제히 싹을 틔울 수 있지만 세상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 좋은 날이 왔다 싶어 지난해에 맺은 씨앗들 모두 싹을 틔웠는데 만의 하나 냉해 같은 천재지변이 생겨 몰살 당하는 일이 생기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멸종은 시간 문제다. 그래서 씨앗들은 한 곳에서 나왔더라도 다른 두께를 가지고 있다. 다음 해 바로 싹을 틔울 수 있는 씨앗은 얇은 껍질을, 그리고 나중에 틔울 씨앗은 두꺼운 껍질을 갖고 있다. 두꺼운 껍질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세파에 씻겨 얇아지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싹을 틔운다. 위험분산 전략, 좋은 기회가 왔다고 그 기회를 한 번에 다 써버리지 않는다.

물론 때를 기다려 싹을 틔웠다고 해도 모든 게 끝난 게 아니다. 커피나무에 달려드는 수많은 삶의 훼방꾼처럼 발목 잡는 게 어디 한둘인가. 움직일 수 없으니 도망칠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강력한 한 방을 가진 방어무기를 마련해 다시는 범접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커피가 카페인을 만들고, 고추가 캡사이신을 만드는 것처럼 독을 만드는 것이다. 마늘의 알리신(allicin)도 같은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중에서도 피마자라고 불리는 아주까리 씨앗의 독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리신(Ricin)이라는 단백질 성분의 독은 사람도 죽일 수 있다. 놀라운 건 씨앗 속에 있을 때는 성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동물의 몸 속으로 들어가면 세포를 파괴하는, 완전히 반대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보존생물학자인 소어 핸슨에 따르면 냉전 시절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은 이런 기능을 이용해 리신을 정제해 만든 독으로 서구로 망명한 이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호기심을 가진 과학자들이 돼지에게 정제한 리신을 주사해봤다. 어떻게 됐을까? 26시간 만에 숨이 멎었다. 그러니까 아주까리 씨앗을 함부로 먹은 아생의 사냥꾼은 어딘가로 가서 자기도 모르게 죽는 것이다. 아주까리가 있는 곳은 미궁에 묻히고 말이다. 자신을 지키는 힘이 강할수록 잘 살아가는 건 자연의 순리, 그래서인지 아주까리는 아프리카 원산인데도 전 세계에 살고 있다.

최고 난이도의 동기부여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독기를 내뿜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상대를 가려야 한다. 특히 자신을 도와 줄 파트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 씨앗을 바람에 날리지 않고 동물에게 맡기는 씨앗들이 그렇다. 예를 들어 도심 곳곳에서 꽃을 피우는 제비꽃은 씨앗을 만들 때 파트너를 위한 작은 선물을 붙여 놓는다. 엘라이오좀이라고 하는, 기름기 많고 단백질이 풍부한 작은 덩어리다. 먹이를 찾아 다니는 개미는 이걸 갖고 집으로 돌아가 덩어리만 떼낸 후 씨앗을 집 근처 쓰레기장에 미련 없이 버린다(개미들은 쓰레기장을 만든다!). 선물까지 줬는데 버린다고? 괘씸해 할 일이 아니다. 바라던 바니까. 이렇게 해야 씨앗이 멀리 이동할 수 있는 데다, 쓰레기장은 다른 곳보다 영양분이 풍부한 곳 아닌가. 그래서 제비꽃이 줄줄이 난 곳을 자세히 보면 개미가 많다.

왜 가을에 열리는 과일이 하나같이 탐스러울까? 이 과일들은 맛있는 과육을 줄 테니 씨앗을 멀리 가져가 확산시켜 달라는 식물의 치밀하고도 달콤한 제안이다. 탐스럽게 보여야 멀리서도 눈에 띌 것이고, 향기로워야 저 너머에서도 냄새를 맡고 찾아올 것 아닌가. 맛이 있어야 많이 먹을 것이고, 누구나 와서 먹어야 여기저기 많이 뿌려질 것 아닌가. 세상 모든 과일은 사실 유혹의 수단이다(에덴동산의 사과도 유혹의 수단으로 쓰였다!). 대단한 건 식물은 자신의 파트너에게 친절을 요구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억지로 시키지도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걸 제공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발적으로 하게끔 한다. 경영학에서 강조하는 최고 난이도의 동기부여를 이미 실현하고 있다.

누구나 더 나은 미래를 바라고 꿈꾼다. 하지만 바라고 꿈꾸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이 만만하지 않는 까닭이다. 별 볼 일 없을 것 같은 씨앗이 어떻게 이런 다양하고도 놀라운 생존전략을 개발했을까?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미래의 씨앗을 만들고 있을까? 진한 커피 한 잔이 필요한 물음이다.

[박스기사] 목화 씨앗이 바꾼 세계 역사


▎사진:ⓒgetty images bank
중세 때까지만 해도 유럽은 별로 좋은 땅이 아니었던 것 같다. 고기를 주식으로 하고 있는 데도 후추 같은 향신료가 없어 쩔쩔 맸고, 보드라운 실크는 물론 따뜻한 옷을 해 입을 목화도 없었다. 아라비아를 통해 인도로부터 수입하던 것도 오스만투르크가 중간에 들어서자 막혀 버렸다. 바스코다가마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간 것도,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것도 이런 걸 직접 구하기 위해서였다. 간난신고 끝에 서인도 제도에 닿은 콜럼버스는 그러나 실망했다. 고대하던 후추가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목화는 있었다. 그때까지 목화는 아시아에서만 나는 것이었기에 그는 그곳이 인도일 것이라고 철석 같이 믿었다. 14세기 영국의 여행가 존 맨더빌은 아시아에는 작고 어린 양이 열매로 열리는 식물이 있다고 했을 정도로 유럽인들에게 목화는 미지의 대륙에 있는 상상의 식물이었다. 그런데 콜럼버스가 본 목화는 찾던 것과 달랐다. 보존생물학자 소어 핸슨이 쓴 [씨앗의 승리]에 따르면 씨앗을 품고 있는 다래 속 솜털(실)들이 더 길긴 했지만 훨씬 끈적거려 손질하기가 너무 힘든, 종이 다른 아메리카 목화였다. 이 때문에 200년 동안 별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1793년 엘리 휘트니가 그 유명한 조면기(목화 다래에서 섬유를 분리해 내는 기계)를 만들면서 미국 남부의 대농장은 세계 면화의 4분의 3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산지로 발전할 수 있었다. 당시 방적기 혁신을 통해 면직물 수출 대국이던 인도 경제를 무너뜨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던 영국은 이 기회를 기민하게 활용했다. 악명 높은 삼각무역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싣고 가 노동력 부족에 허덕이는 미국에 내려 놓은 다음, 미국에서 생산한 면직물 재료를 영국으로 싣고 가 완성품을 만들어 남미 대륙을 포함한 신세계에 팔았다. 덕분에 영국은 농업경제를 공장경제로 바꾸었고 대영제국을 이룰 수 있었지만 이들이 뿌린 문제들은 두고두고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다.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미국 남북전쟁의 근원도 여기서 시작한다. 고려시대 중국 원나라에 간 문익점이 들여 온 목화 씨앗은 이후 들어 선 조선에게 국가적 부를 가져다 주는 것에 그쳤지만, 대서양을 오고 간 목화는 세계 역사를 바꿨다. 제국주의에게는 번영의 씨앗이었지만, 노예들에겐 불행의 씨앗이었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405호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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