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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 화학·디스플레이 호황 ... 스마트폰도 바통 이어받을까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잘 만들어도 안 팔리는 딜레마...구본준 부회장이 경영승계 징검다리 역할

LG그룹의 최근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실적이 개선됐고, 정부와의 관계도 비교적 매끄러운 편이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LG그룹의 10개 상장사는 올해 총 12조9054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 8조997억원보다 60%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예상치가 맞는다면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 10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하게 된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한 발 앞서온 LG그룹은 정부의 ‘모범생’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LG는 지난 1월 9일 오너 일가가 최대주주로 있는 LG상사를 지주사인 ㈜LG의 자회사로 편입했다. ㈜LG가 오너 일가의 주식을 경영권 프리미엄 없이 인수하는 방식이다. LG상사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26.2%에 이른다. 일감몰아주기 표적이 되기 쉬웠지만 이번 결정으로 리스크를 제거하게 됐다. 정부의 재벌 개혁 압박에 선제 대응한 성격으로 해석된다.

실적이나 정부와의 관계 등에서는 걱정이 없어 보이는 LG그룹이지만 고민도 적지 않다. 속앓이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스마트폰 사업이다. LG전자의 가전이나 TV 사업본부는 역대 최대 이익을 내면서 순항하고 있지만,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본부는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LG전자 MC사업본부는 2015년 3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17년 4분기 실적도 2132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애플·삼성 이어 차이나폰에도 밀려

LG 스마트폰은 평판은 좋은데 실질적인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업계에서는 LG전자의 스마트폰 신제품이 발표될 때마다 대부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디스플레이·카메라 등의 하드웨어 측면에서 경쟁사의 제품을 앞선다는 분석도 많았다. 그러나 막상 시장에서는 잘 팔리지 않았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LG전자가 야심차게 내놓았던 프리미엄 스마트폰 모델 G시리즈와 V시리즈도 시장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LG그룹 내에서는 실적 부진 이유를 브랜드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무섭게 치고 오는 중국 스마트폰도 걱정이다. 초창기 중국산 스마트폰은 ‘짝퉁’이나 ‘싸구려’ 이미지를 벗지 못했으나 최근 기술의 상향 평준화로 디자인과 성능이 애플과 삼성전자의 최신 프리미엄폰에 필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화웨이·오포·비보 등 중국 빅3 제조사의 스마트폰 합계 판매량은 애플을 넘어섰다. 화웨이는 출하량 기준 시장점유율 2위 자리도 넘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2강(삼성·애플), 4중(화웨이·오포·샤오미·비보)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LG 입장에서는 프리미엄 제품은 애플·삼성에, 중저가 제품은 중국에 밀리는 신세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스마트폰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말처럼 쉽게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할 수도 없다.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여전히 큰 시장이다. 통신 인프라의 발달과 더불어 사실상 필수품에 가까운 지위를 갖게 됐고, 가전에 비해 수익성도 좋다. 다른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LG는 스마트 가전, 자동차 전자(전자장비)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스마트폰은 이런 사물인터넷(IoT) 기반 기기를 제어하는 데 필수적인 제품이다.

그렇다고 지속되는 수천억원대 적자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 LG전자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갖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1월 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8’ 현장에서 “G시리즈와 V시리즈를 대신할 새로운 브랜드를 도입하는 방안, 출시 시기를 완전히 바꾸는 방안, 만족할 만한 제품이 나올 때까지 신제품 출시를 미루는 방안 등을 모두 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2016년 말 조 부회장이 운전대를 잡으면서 전략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인사에서 2015년 1월부터 스마트폰 사업을 맡았던 조준호 MC사업본부장이 LG인화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이 이유였다. 이 자리에는 MC단말사업부장을 맡았던 황정환 부사장이 올랐다. 전자 업계는 조 부회장이 직접 스마트폰 사업을 챙기겠다고 나선 만큼 프리미엄 전략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 부회장은 한계에 달한 가전사업에 초고가 프리미엄 브랜드인 ‘LG시그니처’를 론칭하며 수익성을 크게 개선시켰다.

구광모 상무로의 경영승계 시기·방법에 관심


한편 4세로의 승계 문제도 LG그룹의 현안이다. LG는 현 3세대 경영진이 고령에 접어들었다. 구본무 회장은 1945년생으로 올해 만 73세, 동생 구본준 부회장은 만 66세다. 70세를 훌쩍 넘긴 다른 그룹의 총수와 비교할 때 경영에 지장이 없는 나이다. 다만, 구자경 명예회장이 70세에 그룹 회장직을 아들 구본무 회장에게 넘기고 용퇴했다. 현재 대외 행사에 구 부회장이 주로 참석하는 가운데 구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 상무로의 승계 작업이 언제 이뤄질지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LG그룹은 속도조절을 하는 모습이다. 구 부회장은 1월 3일 2018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구 회장의 건강에 대해 “괜찮다”며 건강 이상설을 일축했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질문에는 “아직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연말 인사에서도 구 상무는 보직만 바뀐 채 승진 대상에서 빠졌다. 재계 관계자는 “구 상무가 1978년생으로 아직 젊은 데다 경영 수업 기간도 짧은 편이라 당장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재계에서는 구 부회장이 당분간 구 회장과 구 상무 사이에서 경영권 승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의 관건은 구 상무가 지주사인 ㈜LG 지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현재 ㈜LG 지분율은 구 회장이 11.06%, 구 부회장이 7.57%, 구 상무가 6.12%를 보유하고 있다.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더 많은 지분이 필요하다. 구 회장이나 친아버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는 데만 1조원에 가까운 증여세가 필요하다. 증권가에서는 구 상무가 7.5%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물류회사 범한판토스 기업공개(IPO)로 증여세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정부가 재벌개혁 일환으로 일감몰아주기 기업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이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1421호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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