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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메이커페어의 현실은] 창업과 연결하는 중국, 교육 측면 강한 한국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2006년 미국에서 메이커페어 첫 등장 … 스타트업이 아이디어 펼치는 장 돼야

▎메이커 페어 서울 2017 행사장 앞에 설치된 대형 로봇. / 사진:블로터
#1. “한국에서나 제2의 마윈을 찾는다. 우리는 뜻이 맞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다. 수십 번 망해도 밥 먹고 살 걱정은 안 한다.” 지난해 중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메이커 이벤트 ‘2017 메이커페어 선전’에서 이 행사를 찾은 한 한국인 참석자가 심천대학 학생에게 들은 말이다. 패스트팔로워가 아닌 프런티어의 길을 가겠다는 중국 제조업 정책의 핵심이 이 말에 담겨 있다. 선전 메이커페어는 올해로 7회째를 맞는다. 그간 선전의 메이커들은 짝퉁 왕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제조업의 성지를 일군 주역으로 거듭났다. 그 이면에는 제조업을 선도한다는 자신감이 배어있다. 선전 메이커페어는 이미 2015년 세계 최대 행사가 됐다. 메이커페어가 시작된 미국보다 관람객·참가자가 많다. 지난해 행사에는 세계에서 20만 명이 모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엑설러레이터 HAX는 3년 전 본사를 선전으로 옮기기까지 했다. 메이커로부터 하드웨어 스타트업 창업으로 가는 생태계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2. “회사 개발자들 몇 명이 모여서 재미로 만들었다. 고객이 생긴다면? 무조건 사업화 할 생각이다.” 지난해 10월 21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메이커 페어 서울 2017’에서 만난 일본 기업 피알타임스의 길형두씨는 동료 개발자인 야마다 카즈히로, 오키무라 토모키씨에게 기자와의 대화를 통역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길형두씨와 일본인 동료 개발자 두 명은 퇴근 후 한달 동안 수시로 모여 ‘얼굴 인식 출퇴근 기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들은 구글이 후원하는 ‘핵페어’ 팀으로 선정돼 항공권 등을 후원 받았다. 길형두씨는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좋아해 근무시간 이후에 취미로 만들었지만, 앞으로 감정이나 스트레스 지수까지 인식할 수 있게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보도자료 자동 배포 플랫폼을 만든 피알 타임스는 일본 증시 3부 리그 격인 도쿄 마자스에 상장된 회사로 직원 35명이 연매출 2000억원을 만들어내는 내실 있는 기업이다. 이 회사 대표는 이들에게 얼굴 인식 출퇴근 기록 시스템이 잘 팔리면 회사 신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메이커)’의 축제인 메이커페어가 세계 곳곳에서 제조 업계의 풀뿌리 운동이 돼가고 있다. 메이커페어에서 아이디어를 낸 제품을 실제로 소비자에게 선보이고, 중국의 경우 대기업들이 이들 메이커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메이커페어에서 엑셀러레이터나 벤처캐피털을 만나 창업을 하기도 하고, 뚝심 있게 자생하는 소기업이 생겨나기도 한다.

중국 대기업은 메이커 아이디어 적극 활용

메이커페어는 미국의 DIY 잡지인 [메이크]가 2006년 독자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행사다. 처음에는 창업을 염두에 둔 참가자들보다는 물로 가는 자동차처럼 기상천외한 자신만의 작품을 가지고 행사장을 찾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12년이 지나면서 메이커페어는 한국을 포함해서 세계 40여개 국에서 매년 열리는 인기 행사가 됐다. 메이커페어는 이제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를 펼치는 장이다. 청소년 교육용 프로그램도 크게 늘었다. IT 미디어 블로터는 “선전 메이커페어는 ‘대중의 창업, 만인의 혁신’으로 대변되는 정부 기조와 맞물려 2014년 행사를 기점으로 선전을 상징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며 “중국에서 메이커와 촹커(창업자)는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고 보도했다. 인구 2000만 명인 선전에는 메이커스페이스 등 창업을 지원하는 시설만 500개가 넘는다.

메이커가 창업자가 되는 일은 선전에서만 벌어지고 있지 않다. 중국 가전 업체 하이얼은 난징에 위치한 메이커스페이스 회원들을 대상으로 몇 년 전 하드웨어 해커톤 경연을 열고 자사 제품 개선 아이디어를 제안토록 했다. 한 해커톤 참가자는 하이얼의 신형 세탁기 내부와 외부 드럼 사이에 완충볼을 넣어 세탁기를 청소하고 내구성도 높여주는 ‘스마트 볼’이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하이얼은 이 아이디어를 실제 자사 제품에 적용했고, 제안자에게도 충분한 대가를 지불했다.

중국 폭스콘의 경우는 회사 내부에 자사 직원들을 위한 메이커스페이스를 설치했다. 폭스콘은 직원들이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실제 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의 창조성이 길러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조 대기업들이 메이커페어나 메이커들을 대하는 것은 물론 아직 실험적인 단계다. 그렇지만 기업들이 제품 연구개발(R&D)을 여러 혁신 그룹과 함께 진행하려는 시도는 국내에서도 LG전자 등이 하고 있다.

올해로 7년째를 맞는 ‘메이커페어 서울’에서는 지난해에도 3D 프린팅, 드론, 로봇, 전기자동차, 가상현실(VR), 로켓, 악기, 스마트 토이, 수공예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과 예술이 결합한 제품이 등장했다. 지난해엔 120팀 400여 명의 메이커가 전시자로 참가했다. 일부 메이커들은 부스에서 직접 제품을 팔기도 했다. 지난해 메이커페어 서울에서 만난 정다운씨는 가천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미디어아트 작품을 구상하던 중 메이커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씨는 고양이 모양 LED 기판 브로치인 ‘테크노 냥’을 출품했다. 혁신센터 미래청 2층에 마련된 작은 매대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고양이 모양의 이 브로치엔 센서가 달려있어서 어두워지면 저절로 LED 등이 들어와 반짝거린다. 정씨는 미리 준비한 브로치 45개를 이틀 간 모두 팔아 매출 80만원을 기록했다. 정다운씨는 행사장에서 만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 직원으로부터 사업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정씨는 “하드웨어는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서 쉽게 창업하기 힘들기 때문에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메이커 문화는 1인 제조 스타트업 탄생의 기반

서울 메이커페어는 자동차를 개조하거나 복잡한 설계를 구현한 마니아적인 작품을 주로 내놓는 미국 메이커페어나, 제조 업체와 협업하고 스타트업이 대거 참여하는 중국 메이커 페어와는 달랐다. 한국에선 교육적인 측면이 강했다. 교사들이 중고등학생 수십 명씩을 데리고 단체 관람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지난 서울 메이커페어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메이커는 로보메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김명국씨였다. 김명국씨는 뇌파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선보였다. 무언가에 집중할 때 발생하는 뇌파를 이용해 모형 자동차를 움직이는 작품이다. 체험을 해보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김명국씨는 이 아이템으로 사업을 할 생각은 없다. 김명국씨는 “뇌파로 가는 자동차는 정말 재미로 만든 거라 양산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메이커 문화는 큰 자본이 필요 없는 1인 제조 스타트업이 탄생하기 위한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이 자본 위주의 하드웨어 양산을 하기가 쉽지도 않고 자칫 생계가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1424호 (20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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