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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미 5개국 FTA 정식 서명 의미는] 한류 콘텐트 지적재산권 보호까지 가능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상품·원산지·서비스·투자·지재권·정부조달 포함한 포괄적 협정 … 각국 국회 인준까지 시간 걸릴 듯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코스타리카를 비롯한 중미 통상 장관들이 2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중미 FTA 정식 서명식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코스타리카·엘살바도르·온두라스·니카라과·파나마 등 중미 5개국의 통상장관은 2월 21일 서울에서 한·중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정식 서명했다. 중미 국가가 아시아 국가와 FTA를 체결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양측은 지난 2015년 6월 협상 개시 이후 2년 8개월여 만에 협상 관련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협정이 발효되면 양측 간 상품과 서비스 품목의 95% 이상에 대한 관세가 철폐된다고 밝혔다.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02% 증가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번 협정은 각국 의회의 비준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발효 시점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국가와 중미 국가와 첫 FTA

앞서 지난해 11월 16일 산업통상자원부 주형환 장관은 니카라과 수도인 마나과에서 5개국에 과테말라를 더한 6개국 통상장관과 한·중미 FTA 협상이 실질적으로 타결됐다고 선언했다. 과테말라는 시장 접근, 원산지 등 일부 민감한 분야를 이번 타결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국과 양측은 상품시장 부문에서 95% 이상의 높은 자율화율에 합의했다. 개방 정도는 기존의 한·콜롬비아, 한·페루 FTA 수준이다.

한국은 커피, 원당(설탕)과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 열대과일을 비롯한 중미 측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해 즉시 또는 단계적 관세 철폐를 약속했다. 중미 지역은 세계 바나나 시장점유율 2위, 파인애플 시장점유율 1위 국가다. 중미 측은 자동차·철강·합성수지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에 대한 장벽을 크게 낮췄다. 기어 박스, 클러치, 서스펜션 등 자동차 부품과 화장품, 의약품, 알로에 음료, 섬유 등 한국의 중소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품목에 대해서도 즉시·단계적 관세 철폐에 합의했다. 서비스·투자 분야는 엔터테인먼트·유통·건설 등 우리 측 관심 분야에 대한 시장 접근성도 높였다. 특히 중미 국가의 정부조달 시장이 개방돼 우리 기업이 에너지·인프라·건설 관련 주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눈에 띄는 점은 한류 확산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불법 유통을 방지해 중미 지역 내 한류 콘텐트를 보호할 수 있게 한 점은 주요 소득이다. 온라인으로 전송되는 디지털 콘텐트에 대한 내국민 대우에 합의해 콘텐트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2월 21일의 서명은 그간 기술 협의, 법률 검토, 가서명, 협정문 공개, 국내 의견 수렴 등의 후속 절차를 진행한 후 이뤄졌다.

이번 FTA는 상품·원산지·서비스·투자·지재권·정부조달 등을 포함하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 협정으로 평가된다. 양측 간 경제협력의 제도적 틀이 완성된 만큼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공유하고 우리 기업의 진출 기회로 삼는 등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확대할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제는 이들 나라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아 최종 국회 인준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점이다. 코스타리카는 4월 1일 대통령 결선투표를 앞두고 있다. 지난 2월 4일의 1차 투표에서 야당인 우파 국민복원당의 파브리시오 알바라도 후보(24.91%)가 집권 중도좌파 시민행동당의 카를로스 알바라도 후보(21.66%)를 근소하게 앞섰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대선 결선투표에서 정권 교체 조짐이 보인다. 이번 선거의 최대 현안은 집권당의 부패다. 2014년 5월 취임한 현 루이스 기예르모 대통령은 아프리카계 카리브인과 중국계 혼혈 혈통으로 국민 통합을 강조해왔다. 중도좌파 시민행동당 출신으론 첫 대통령이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중국산 시멘트 수입사인 시노시멘트의 후안 카를로스 놀라뇨스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아 현재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를 계기로 코스타리카에선 이를 시멘트와 부패를 합성한 ‘세멘타조’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코스타리카는 중남미에선 드물게 오랫동안 정치적 안정을 누려왔다. 여기에 식민지 시대 때 조성된 커피와 바나나 플랜테이션을 바탕으로 농산품 수출국가로 자리를 잡아왔다. 코스타리카 커피와 바나나는 국제시장에서도 브랜드 가치가 높다. 사탕수수·파인애플·멜론도 주요 수출 농산물이다. 1960년대 이후 외자를 도입해 산업화를 시도했다. 그 결과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발전해 2017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명목금액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1856달러로 세계 59위에 올랐다. 다만 1990년대 이후 남미의 마약이 북미와 유럽으로 건너가는 중계지역이 되면서 치안 악화와 마약, 특히 콜롬비아산 코카인 중독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485만 명의 인구 중 20만 명 이상이 마약 중독자라는 통계도 있다. 중미에서는 1만4409달러의 파나마 다음으로 1인당 GDP가 높은 나라로 자리 잡았다.

코스타리카, 4월 1일 대통령 결선투표


파나마는 파나마 운하지대에 자리 잡은 ‘콜론 자유무역지대’를 바탕으로 한 중남미의 교역 중심지다. 77km 길이의 파나마 운하는 1914년 개통된 이래 파나마에 경제적 이익과 국제 정치적 구속을 동시에 가져왔다. 현재는 파나마가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이 자유무역지대는 중남미 각국에서 각종 생필품을 면세로 구입하려고 찾아오는 보따리상으로 넘친다. 심지어 공산국가 쿠바에서도 건너온다. 쿠바의 주요 생필품 공급지가 파나마다. 쿠바의 아바나와 파나미시티를 잇는 직항 항공편도 하루 6편 이상 운항되고 있다. 파나마시티는 중남미의 항공 허브 역할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파나마는 중남미의 물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를 통해 중남미의 교역 중심지 입지도 확실히 굳히고 있다. 파나마는 발보아라는 독자 화폐가 있는데 미국 달러화와 1:1의 고정환율로 운영된다. 이와 함께 실질적으로 달러화가 통용된다. 이에 따라 파나마와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은 중남미의 여러 국가와 동시에 협정을 맺는 것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문제는 니카라과다. 이 나라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아나스타시오 소모사(1896~1956년)가 1937년 대통령에 오른 이래 그의 장남 루이스 소모사(1922~1967년), 차남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1925~1980년)에 이르기까지 세 명의 가족이 1979년까지 50년 이상 족벌통치를 해왔다. 소모사 친미 족벌정권은 1979년 니카라과 혁명으로 무너졌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NL)의 게릴라 지도자 다니엘 오르테가가 혁명을 이끌었다. 오르테가는 쿠바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게릴라 교육을 받은 후 정글에서 게릴라전을 벌여왔다. 오르테가는 1979~85년 국가재건위원회 의장을 거쳐 1985~90년 합법적인 선거로 대통령을 지냈다. 하지만 국제기구 감시 하의 공정한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한 후 17년간 야당 지도자로 있다가 2007년 다시 권좌를 탈환했다. 그사이 그는 일당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포기하고 다당제 민주사회주의자로 정치적 입장을 바꿨다. 2007년 1월 재집권한 오르테가는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민층을 위해 의료·교육·대출·사회복지 접근성을 확대하는 정책으로 주목받았다. 이를 통해 국내에 탄탄한 지지층을 확보했다. 2006년 대선에서 우파 후보의 난립 탓에 38.07%의 지지율로 간신히 승리를 거둔 오르테가는 2011년 대선에서 62.46%, 2016년 대선에선 72.44%의 지지율로 갈수록 높은 득표율을 얻고 있다.

니카라과 오르테가, 장기 족벌정치 전철 밟아


문제는 그런 그가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장기 집권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1월 의회에서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임기 제한을 폐지했다. 2017년 4기 취임 후에는 과거 산디니스타 게릴라 활동을 함께했던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67)를 부통령에 앉히고 권한을 몰아주고 있다. 좌파 게릴라 운동으로 족벌정치를 무너뜨렸던 오르테가가 이젠 권력을 사유화하며 ‘붉은 족벌정치’를 확대하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남미 반독재의 아이콘이 권력욕의 화신으로 변질된 셈이다. 이런 상황은 오르테가에 대한 저항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 니카라과의 정치가 다시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상존하는 셈이다. 그는 반미정책을 추구하는 중남미 지도자와의 연대도 강화하고 있다. 중남미에 다시 붉은 바람이 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르테가가 특히 가까이 지내는 지도자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있다. 마두로는 노동운동가 출신의 베네수엘라 포퓰리즘 좌파 정치인으로 1999~2013년 대통령을 지냈던 우고 차베스(1954~2013년)의 후계자다. 차베스는 재임 중 석유·알루미늄 산업 등을 국유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빈곤 퇴치와 복지·교육 확대 정책을 폈다. 차베스는 그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장기 집권 의도를 드러냈다. 2007년 연임 제한 철폐 개헌안이 부결되자 2년 후 다시 국민 투표에 부쳐 기어이 통과시켰다. 통과될 때까지 계속 연임 제한 철폐 개헌안을 내놓겠다며 국민을 압박했다. 이를 바탕으로 개헌에 성공하고 2012년 10월 4선에 성공했지만 암으로 취임식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차베스 이은 마두로도 좌파 독재

차베스의 뒤를 이어 마두로가 2013년 대통령에 올랐지만 제헌의회를 구성해 야당이 지배하는 의회의 무력화에 앞장서는 등 민주주의 파괴 행위에 나서고 있다. 짧은 집권 기간 동안 국가경제를 파탄 냈다. 국민은 생필품 품귀에 시달리는데, 정작 자신의 권력만 강화하려 든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017년 경제 성적은 충격적이다. 인플레이션 2600%, 국가 채무(국영기업 포함) 1300억 달러로 사실상 재정이 거덜난 상황이다. 중국은 이런 틈을 놓치지 않았다. 620억 달러의 인프라 조성비를 미끼로 베네수엘라에 진출했다. 러시아는 31억500만 달러의 채무를 지불 유예하며 마두로의 반미 정권을 돕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틸러슨 국무장관은 군부 쿠데타를 부추기는 발언을 하고 석유금수조치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거칠게 접근하고 있다.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중남미 국가의 에너지 공급원에서 골칫덩이로 변하고 있다.

그런 베네수엘라에서 4월 22일 대선이 열린다. 이번 대선은 독재 정권으로 변한 포퓰리즘 좌파 정권의 실체를 잘 드러낸다. 베네수엘라 대선은 애초 12월이었지만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앞당겨 치른다. 누가 봐도 정략적인 시기 변경이다. 영국 BBC방송은 마두로가 지난해 12월 지자체 선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야당 후보를 체포하거나 출마를 금지해 벌써 부정 선거 시비를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대선 이후 베네수엘라에서 혼란이 올 가능성을 키운다. 베네수엘라의 에너지 지원에 의존하는 중남미 국가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중남미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한국이 잘 살펴봐야 하는 중남미의 정치경제학이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점이 경제대국 브라질과 멕시코도 올해 대선이라는 점이다. 두 나라 모두 전·현직 대통령의 극심한 부패로 국민이 희망을 상실하고 경제가 활력을 잃어간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5위인 멕시코는 7월 1일, 세계 8위인 브라질은 10월 7일 각각 대선을 치른다. 멕시코는 6년 단임제다. 이에 따라 현 집권 중도연합의 엔리케 페냐 대통령이 재출마할 수 없다. 집권 중도연합에선 안토니오 메아데 후보가 나와 좌파연합의 마누엘 로페스 후보와 맞서고 있다. 페냐는 이번 대선에서 최대 이슈다. 개혁정책으로 지지율이 한때 50%를 넘나들었지만 부부가 부패 혐의를 받은 데다 살인율이 급증하는 등 치안에도 무능함을 드러내면서 지지율이 23%로 하락했다. 국민의 지탄을 한몸에 받는다. 로페스 후보가 이런 상황을 이용해 부당이득 근절과 빈곤 추방을 약속하면서 메아데보다 5~15%포인트 앞서고 있다.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브라질 국민은 대선을 앞두고 아노미 상태다. 중도우파인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은 부패 혐의를 받으면서 지지율이 3%로 추락했다. 실제로 간신히 탄핵을 면하기도 했다. 야당 유력 후보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지난 1월 24일 지역연방법원에서 열린 뇌물수수 혐의 2심 재판에서 징역 12년 1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출마가 불투명하다. 아직 36%의 지지율을 유지하지만 퇴임 당시 지지율 87%였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은 ‘추락하는 영웅’ 신세나 다름없다. 이 틈을 타서 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 후보가 15%의 반사 지지를 확보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보우소나루 후보는 군부독재를 찬양하고 동성애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면서 극우층을 끌어 모으고 있다.

브라질·멕시코도 대선 정국으로 혼란

중남미는 브라질을 제외하곤 모두 스페인어로 사용하는 동일 언어권이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도 서로 배우기 어렵지 않다. 배우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이해도 된다. 이에 따라 넓게 보면 중남미 시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개방 시장이다. 이런 중남미에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하려면 이런 정치상황과 문화상황, 그리고 정보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중남미 FTA를 계기로 이 지역에 대한 좀 더 정밀한 연구와 접근 전략을 세워야 한다.

1424호 (20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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