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남비콰라족에서 보는 공동체의 원형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덕분에 문명권의 인류가 까맣게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문명 이전 우리 인류가 어떻게 공동체를 유지해왔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원형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레비-스트로스의 표현대로 하자면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환원되어 있는 사회”였던 까닭이다. 무엇보다 족장이라는 지위로 나타나는, 리더라는 존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기원을 추정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레비-스트로스의 책에는 군데군데 이 족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중에는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 있다. 이들이 갖고 있는 공동체와 족장의 관계가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닐 수 있는 까닭이다.소규모 무리를 이끄는 족장의 권한은 막대했다. 그는 무리가 언제 어떻게 이동해야 하고, 어느 곳으로 가야 하며 얼마나 그곳에서 지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어디로 사냥을 나가야 하며, 이웃 부족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까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 거의 전권에 가까운 힘을 갖고 있으니 무리의 지속이 그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족장은 어떻게 이 ‘높은 자리’에 오를까? 문명 국가의 왕처럼 세습을 할까, 아니면 힘 센 자끼리 경쟁으로 결정할까? 그것도 아니면 승진으로? 답은 승진이다. 전임 족장이 후임을 지명하니 일종의 발탁 승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능력이 있고 사람들의 호감을 얻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를 선택한다.그러면 이 족장이라는 자리, 좋은 자리일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자리는 아니다.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이다. 앞에 언급했던 것처럼 무리가 언제 어디로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고, 생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냥을 진두지휘해야 한다. 그냥 ‘가즈아!’ 하면서 앞장 서면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이동했는데 좋은 곳이 아니라든지, 엉뚱한 곳을 헤매다 빈털터리로 돌아오는 날이 늘어나면 신임은 떨어지고 불만은 커진다. 구성원을 잘 먹여 살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불만이 생겨나는 것이다.이런 불만이 쌓이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도 ‘쿠데타’ 같은 사태가 일어날까? 레비-스트로스는 그런 사례까지는 관찰하지 못한 듯한데, 대체로 이런 일이 일어나면 하나 둘 그 집단을 떠나버린다. 수십 명 규모의 무리에서 구성원이 그렇게 떠나버리면 무리는 금방 형편 없이 축소되고 만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족장이라는 역할도 사라진다. 사냥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숫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족장의 자리를 버리고 다른 무리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무리 자체가 소멸된다. 리더라는 자리는 구성원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데 구성원이 사라지니 그 자리도, 지위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그러니 ‘평소’ 잘 해야 한다. 부족원은 족장이 “이동하자”고 할 때 가라고 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사냥하러 가자”고 하면 따라 나서면 된다. 하지만 족장은 부족원들이 쉬거나 놀 때 끊임없이 정찰을 해야 한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나중에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사냥하기 좋은 곳은 어딘지 보아 두어야 한다. 혹시 적대적인 부족이 근처에 있다면 그들의 동향에 대해서도 눈여겨봐야 한다. 우호적인 부족이 있으면 정보를 교환해야 한다. 훌륭한 족장이 되려면 이런 걸 상세히 파악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건 그가 해야 하는 일의 일부다. “화살의 독을 준비하는 사람은 족장이다. 족장은 유희에 사용되는 야생의 고무로 만든 공도 만든다. 무리들이 단조로운 일상생활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출 줄 아는 쾌활성을 지녀야 한다. 자연히 샤머니즘과 연관을 갖게 되는데, 실제로 몇몇 족장은 치료사와 주술사의 역할을 겸하기도 한다.” 훌륭한 족장은 솔선수범해야 하며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뿐인가? 그는 또 부족원에게 관대해야 한다.레비-스트로스는 그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족장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주 선물을 하곤 했다. 도끼·칼·진주 같은, 그들에게는 아주 귀한 것이다. 그런데 족장은 이런 귀한 물건을 하루나 이틀 이상 갖고 있는 일이 없었다. 며칠 지나고 보면 대부분 다른 사람이 그걸 갖고 있었다. 족장이 그들에게 주었거나 아니면 달라고 하니 아낌 없이 준 것이다. 족장은 그렇게 베푸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어야 했다. 족장의 권위는 자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권위는 그의 능력과 관대함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레비-스트로스도 이렇게 말했다. “그가 가진 가장 주요한 수단은 관대함이다.”
리더의 권위는 능력과 관대함에서 나와족장은 그런 물건이 탐나지 않았을까?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면 족장이 그런 물건에 욕심을 부리거나, 부족원에게 과한 요구를 하면 어떻게 될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 둘 빠져 나가 무리가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니 족장은 관대함으로 무리를 이끌어야 한다.언젠가 한 무리가 이동할 때였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그런지 길을 잃었다. 사냥거리가 있을 줄 알고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아 먹을 것도 없었다. 아침이 되자 구성원들은 노골적으로 족장에게 불만스럽다는 태도를 나타냈다. 뭔가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대신 모두 나무 그늘 밑에 드러누워 있었다. 빨리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하는, 일종의 태업을 통해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족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족장은 아내 중 한 명을 데리고 사라졌다가 저녁 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바구니에는 온종일 그들이 채집한 메뚜기가 가득 들어있었다.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그걸 채집해 온 것이다. 맛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허기를 누그러뜨릴 수는 있는 양이었다. 모두들 맛있게 먹고 기분을 돌린 덕분에 다음날 아침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족장은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전임 족장이 후임 족장을 지명하면 거부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너무 힘든 걸 아니 사양하는 것이다.그러면 도대체 이 어렵고 힘들고 골치 아픈 족장이라는 자리를 왜 할까? 이유가 있다. 리더라는 역할을 즐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물질적 특혜 또한 분명히 있었다. 그들은 유랑생활을 했기에 아이를 많이 낳을 수가 없었다. 아니 더 나아가 대단히 조심스런 출산 문화를 갖고 있었다. 아이가 많으면 이동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일부일처제를 이루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예외를 누리는 사람이 족장이었다. 족장은 무리 내에서 가장 예쁜 여성과 두 번째, 세 번째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유전자 측면에서 보면 자신의 후손을 훨씬 더 많이 남길 수 있는, 특혜라면 대단한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특혜는 공동체를 지배하면서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죽도록 고생하는 대가로’ 공동체가 부여해준 특혜였다. “족장이 그의 책무를 완수하도록 집단이 족장에게 부여한 수단”이었다.
늑대 우두머리도 상당히 민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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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의 진심어린 협력 구해야요즘 권력을 남용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자신의 자리와 역할을 헌신으로 보지 않고 지위에서 오는 힘으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데 쓴 결과다. 그 자리를 헌신의 수단이 아니라 지배의 수단으로 여겼다. 전 근대적 방식이다.세상은 이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있다. ‘나를 따르라!’라고 하는 것보다는 구성원 모두의 진심 어린 협력이 필요한 시대다. 지배가 아니라 공존하는 구조에서 이런 협력이 나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여러 집단이 같은 사회구조를 선택한 건 그런 환경에는 그런 사회구조가 최적이라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또한 그런 환경이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 조직구조를 갖고 있을까?※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