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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의 차이나 인사이드] 입김 세지는 중국 ‘경제권력’ 

 

김재현 zorba00@gmail.com
전통적으로 정치권력 영향력 강해 ... 경제발전 없이는 정치권력 입지 좁아져

▎정부 정책에 맞춰 전통 산업에 인터넷을 접목하는 인터넷 플러스를 선도하면서 성장한 텐센트는 위챗을 통한 정부 비방이나 허위사실 유포를 검열하려는 중국 정부에 적극 협조 중이다. 사진은 마화텅 텐센트 회장.
중국은 정치가 주도하는 사회다. 기업가도 예민한 정치적 후각을 가져야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이 좋은 예다. 시장 하락을 용인할 수 없는 중국 정부의 의도를 꿰뚫어보고 부동산 규제에도 아랑곳없이 아파트를 건설하고 팔았던 부동산 개발업체가 가장 많이 성장했다.

중국에서 가장 ‘핫’한 기업으로 부상한 텐센트도 마찬가지다. 마화텅 텐센트 회장은 2015년부터 중국 정부가 주창한 인터넷 플러스 정책의 아이디어 제공자로 통한다. 당시 중국은 리커창 총리가 ‘대중창업(大衆創業)’ ‘만인창신(萬人創新)’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창업과 혁신을 통한 신성장동력을 찾기 시작하면서 창업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중국 정부의 혁신경제 추구와 일자리 창출 의지를 꿰뚫어본 텐센트는 정부 정책에 맞춰 전통 산업에 인터넷을 접목하는 인터넷 플러스를 선도하면서 순풍에 돛을 단 듯 성장을 지속했다.

정부의 비위 거슬리면 사업 위험해질 수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텐센트가 운영하는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의 사용자 수가 9억8000만 명에 달할 만큼 텐센트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하지만 텐센트는 위챗을 통한 정부 비방이나 허위사실 유포를 검열하려는 중국 정부에 적극 협조 중이다. 중국 정부의 비위를 거슬렸다가는 사업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챗에는 수많은 단체 채팅방이 있으며 여기서 많은 수많은 자료 유포와 의견 교환이 이루어진다. 위챗이 의견 교환의 주요 채널로 떠오르자 중국 정부는 위챗에 대한 검열을 대폭 강화했다. 얼마 전 필자가 참여 중인 단체 채팅방에 국가와 당에 관한 불리한 정보나 위법적인 정보를 올린 단체 채팅방이나 개인은 법률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한 참여자가 올렸다. 특히 100명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단체 채팅방에서는 민감한 정치 문제를 언급하거나 유언비어를 올려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정치는 부의 축적을 돕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기업가는 자신이 쌓은 부와 명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때로는 일부러라도 어리석게 보여야 했다. 중국에는 이를 비꼰 ‘난더후투(難得糊塗)’, 즉 총명하면서도 어수룩하게 행동하기는 어렵다는 성어도 있다. 중국의 수많은 갑부 중에는 성공에 도취해 정치 권력에 밉보였다가 한 방에 훅 가버린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국을 이해하려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간의 상호작용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중국이 성장해온 과정을 돌이켜보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힘겨루기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1949년 신중국 성립 후부터 1978년까지다. 이때는 정치권력이 압도적으로 경제권력을 지배한 시기였다. 마오쩌둥이 집권한 시기로 중국이 정체된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우리나라가 중국을 본격적으로 앞서기 시작한 것도 1960년대 초반부터다. 우리가 20년 동안 경제개발에 매진하는 동안 중국은 문화대혁명과 노선투쟁을 겪으며 뒷걸음질쳤다. 우리의 경제 개발과 발전 과정이 중국보다 약 20년 빨랐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두 번째 단계는 1979년부터 2012년까지다. 이때 덩샤오핑은 실용노선을 채택한 후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개발에 몰두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이 덩샤오핑의 생각을 잘 나타낸다. 덩샤오핑은 국내 경제 발전에 치중하며 대외관계에서는 재능을 감추고 은밀히 힘을 기르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주장했다.

덩샤오핑의 뒤를 이은 장쩌민·후진타오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통한 대외개방과 국제 분업구조로의 편입을 활용한 경제개발에 진력하면서 덩샤오핑의 노선을 따랐다. 이 시기에 중국은 30년 이상 두 자릿수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49년부터 79년까지 중국 경제가 30년 동안 정체돼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는 여지도 컸다.

이 시기는 성장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위해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에게 많은 것을 양보해준 시기였다. 더 이상 시간을 놓쳤다가는 정치권력 역시 경제권력과 공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쩌민은 ‘3개 대표 사상’을 통해서 공산당이 노동자, 농민뿐 아니라 자본가, 지식인의 이익도 대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권력을 공산당의 품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중국은 경제적으로 우리를 바짝 추격했다.

세 번째 단계는 2012년 11월 시진핑 주석의 집권과 함께 시작했다. 정치권력이 우세해지기 시작한 시기다. 시진핑은 이전 중국 지도자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덩샤오핑이 만든 집단지도체제를 깨고 1인지도체제를 구축한 시진핑은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휘둘렀다. 국제정치에서도 ‘화평굴기’ 대신 ‘대국굴기(大國堀起)’가 노골화되는 단계였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경제력이 중국이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사드 보복 역시 마찬가지다.

시진핑 집권 1기(2013~2017년)는 중국 정치권력이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시기였다. 이 시기의 핵심 키워드는 반부패 사정으로 대표되는 정치개혁이었고 반대·부패세력의 축출과 시진핑 측근 세력의 권력 장악이 이루어졌다. 특히 시진핑의 권력 장악이 어떻게, 어디까지 진행될지가 세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시진핑 집권 2기(2018~2022년)가 시작되는 올해부터는 중국의 무게중심이 정치에서 경제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여전히 정치권력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경제권력도 막강해졌다. 신경제의 대표주자인 마윈(알리바바)·마화텅(텐센트)은 중국의 파워 피플로 거듭났다.

중국 정치권력의 핵심기구이며 전국인민대표대회와 함께 양회를 구성하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에도 기업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마화텅·리옌홍(바이두) 그리고 부동산 재벌인 쉬자인(헝다그룹)도 정협위원이다.

정협위원에 다수의 기업가 포진

중국은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의 들러리 역할을 해왔지만, 경제권력의 파워가 점점 커지고 있다. 시진핑도 마냥 경제권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직접선거가 없는 중국에서 중국 지도자가 중국인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발전과 이를 통한 부의 창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권력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지금은 중국 기업가들이 정치권력의 힘에 바짝 엎드려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권력 균형이 경제권력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중국인은 뼈 속부터 실리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북한 문제에서 중국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중국 정치권력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하지만 앞으로는 중국 경제권력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중국의 정치권력도 경제권력의 도움 없이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 김재현 zorba00@gmail.com - 머니투데이 이코노미스트다.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에서 MBA를, 상하이교통대에서 금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중국 도대체 왜 한국을 오해하나] [파워 위안화: 벨 것인가 베일 것인가](공저) 등이 있다.

1431호 (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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